▲ 박완규 발행인.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사회에 진출한 아들 친구 녀석이 있습니다. 예의 바르고 싹싹한 아이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안정된 일자리 잡기가 힘든가 봅니다. 어제 밤에는 아들 녀석이 “아빠! 아빠가 00이 직장 좀 알아봐 주면 안 돼요?”하고 청탁(?)을 해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고졸이 점점 사회 밖으로 내몰리고 있는 사회입니다. 과거엔 고졸자도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대기업들도 고졸사원을 별도로 선발했기 때문에 고졸의 문은 충분히 열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때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일자리도 부족한 데다 학력 인플레까지 겹쳐서 예전에 고졸이 차지했던 많은 일자리들을 이제는 대졸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대학을 졸업해도, 석사학위를 받아도 직장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 된 것입니다.

80년대 90년대만 해도 금융권에서의 고졸사원 비율이 대졸사원보다 더 높았습니다. 창구의 직원 대부분은 상고를 졸업한 고졸 사원들이 맡았습니다. 집은 비록 가난했지만 우수한 학생들이라 업무를 수행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고졸은 아예 금융권의 채용 문턱을 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상고를 졸업한 여직원이 맡았던 창구의 업무도 이제는 그냥 대졸이 아니라 우수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이 공고를 졸업한 사람들은 한국전력이나 통신공사나 포항제철 등의 대기업과 공기업에도 자신이 열심히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포항제철과 GS칼텍스에 입사를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2000년대 이후 대졸과 고졸의 학력구분 없이 사원을 뽑으면서 고졸 입사는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너도나도 죽자살자 대학을 진학하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어중간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머리만 커지고 하찮은(?) 일에는 성에 차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도 과거에는 고졸사원이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지금은 절반 이상이 대졸이라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어지간한 공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학력제한의 철폐가 오히려 학력 인플레를 부추긴 부작용을 가져온 것입니다.

취업의 여건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인문계고 뿐만 아니라 공고나 상고 등의 특성화 고등학교 졸업생들조차도 대학 진학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보다 무조건 대학을 졸업해야 하는 사회구조 때문입니다.

독일은 현재 EU의 중추적인 국가임에도 대학진학률은 34%에 머물고 있고, 스위스는 30%, 일본은 54%이고, 세계 최강국이라 불리는 미국도 40% 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은 84%에 이릅니다.

그렇게 높은 대학진학률 뒤에는 배움보다 무서운 '사회적 편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결혼 때문에, 좁혀지지 않는 임금 격차 때문에, 남들 시선 때문에, 부모들은 대학에 등록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보험료를 내는 형국이 된 것입니다.

지금처럼 학력을 확실하게 구분해서 뽑지 않으면 양질의 일자리일수록 고학력자로 채워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고졸이 갈 수 있는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고, 온 국민의 등골을 휘게 하는 학력인플레는 절대로 개선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로 인한 국가적 낭비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게 대학 가는 비용으로 아이로 하여금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하면 오죽 좋겠습니까.

고졸로 입사하면 퇴직 때까지 임금과 직급 등에서 대졸과의 격차를 좁힐 수 없는 제도적 차별 또한 큰 문제입니다. 외국의 경우는 고졸로 입사해도 다양한 자기계발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들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그럴 기회들이 적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입법기관과 행정기관이 앞장 서서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할 것입니다. 전 국민이 문제인 것을 다 알고 있는데 그것을 고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민의 아픔을 보듬지 못하는 무능한 정치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개선되어야 평생을 아이 뒷바라지를 하다가 불행한 노후를 맞이해야 하는 한국의 부모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이고, 막대한 사교육비 때문에 출산을 주저하는 부모들에게 상당한 동기부여를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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