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생각, 당돌한 질문 ①]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왜 그럴까?

#1 (남자 고등학교의 아주 낯익은 풍경)
아침부터 내리던 굵은 비가 더욱 거세진다. 운동장에서 수업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체육교사가 방송을 한다. “오늘은 비가 오는 관계로 교실에서 수업을 한다, 이상.” 그러자 학급 체육부장 셋이 우르르 달려온다. “쌤, 밖에서 축구하면 안 돼요?” 딱 잘라 거절을 하는데도, 아이들은 막무가내다. 그때 한 놈이 이렇게 애걸한다. “비가 와도 프리미어리그는 쉬지만 동네 축구는 쉬지 않는대요, 제발.” 결국, 교사는 공을 내 주고 만다.

#2 (여자 고등학교의 아주 오래된 풍경)
비가 점점 굵어진다. 기상청에 접속해서 날씨를 알아봐도, 비 그친다는 예보는 없다. 야외 소풍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학생부장이 방송을 한다. “내일은 비가 오는 관계로 학교에서 정상수업을 한다, 이상.” 그러자 아이들 몇이서 찾아온다. “태풍이 와도 좋으니, 소풍 가요.” 기가 막힌 교사가 묻는다. “왜 그러는 건데?” “쌤, 일주일 동안 다이어트 했단 말예요. 겨우 옷이 맞게 되었는데, 소풍 연기라니요. 쌤, 제발!” 결국, 비 맞고 소풍 갔다.

▲ ▲ 공은 둥글다 학교에 오는 재미가 뭐냐고?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공 차는 것! …이런 머스마들이 의외로 많다. Ⓒ 방현유

“남학생들은 왜 축구에 그렇게 열광할까?”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더니, 브라질 월드컵이 시작되면서 모든 이야기는 브라질로 이어진다. 어디라고 예외는 없겠지만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이란 축제 때문에 ‘미친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열광한다. 그중에 특히 남자 고등학교는 월드컵에 목숨을 거는 것 같다.

한국과 러시아의 경기가 열리는 시각이, 하필이면 아침 7시다. 등교가 7시 40분에, 50분부터 명상의 시간, 8시부터 20분간 영어듣기, 그리고 8시 30분부터 1교시 수업이 시작되는지라, 경기를 생중계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생들의 탄식이 길어졌다. 어떤 녀석들은 땅을 쳤다.

보다 못한 교장 선생님이 결단을 내렸다. 중지를 모으셨는가 보다. 러시아전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시간표를 조정하겠다는 발표를 한 것이다. 이에, 한 아이(김창환․여수고 2년)가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교장 선생님은 천사이시다. 무너져 가는 우리 학교를 구하고자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다.”

▲ ▲ 오빠는 삶의 낙이에요 ‘같은 오빠’를 같이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교감한다. 이게 여고 시절이다. Ⓒ 문소연

“여학생들은 축구선수에 열광한다고?”

손에 비해서 발은 아둔하고 둔탁하다. 그런데 축구 선수들의 발은 그렇지 않다. 발로 공을 차서 적진을 파고드는 원초적인 경기 모습이나, 쉬지 않고 집단적으로 몸싸움을 벌이는 박진감은 우리들을 집단적으로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그저 예술이다. 예술품이다.

어디 발뿐이랴. 축구선수의 몸놀림과 우람한 체격은 남자는 물론 여자들에게도 매력 그 자체다. 남자들에게 한없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여자들에게는 깊은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남학생은 축구에 열광하지만, 여학생은 축구선수에 열광한다.”고.

남학생들은 축구공만 주면 열광한다는 말은, 맞다. 시간만 나면 공을 찬다. 반면에, 여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뛰쳐나가지 않는다. 틈만 나면 텔레비전을 켜고 삼삼오오 모여 잘생긴 연예인을 보며 즐긴다. 축구를 하기보다는 잘생긴 축구선수에 열광한다는 말도, 어느 정도 사실이지 싶다. 하지만 뭔가 가시처럼 걸리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 ▲ 여수YWCA 한윤덕 소장 그는 호방했다. 그리고 진지했다. 두 번이나 찾아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물어봐도 한결같았다. 참 좋으신 분! ⓒ 방현유

“성별 차이보다 개인 차이로 보아야죠.”

…여수YWCA 한윤덕 소장님을 만나러 갔다. 짧은 커트 머리와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우리를 반겼다. 선한 눈매와 환한 미소가 엄마처럼 편안했다. 가끔 농담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며 진지하게 답변해 주셨다. 오랜만에 학생들을 만나 기쁘다며 행복해하시는 모습에 우리까지 덩달아 뿌듯해졌다.
 
- 남자들은 왜 하나같이 축구공만 주면 왜 미쳐 버릴까요? 남자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본능이라는 얘기도 있던데요.
“하하. 먼저 바로잡을 게 있어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모든 남자들’이 아닌 ‘대부분의 남자’, 이래야 되죠? ‘어떤 남자들’은 축구 싫어하거든요. 이에 비해, 축구 좋아하는 여자들도 꽤 있어요. 물론 남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지만 말이죠. 문제는 모든 것을 남녀의 성별 차이로 돌리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차로 봐야 한다는 거죠. 남자가 축구를 좋아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본능이라는 얘기도 그래서 위험해요.”

- 옛날부터 남자들이 목표물을 쫓아서 사냥을 했고, 그러는 동안 여자들은 집안에서 남자들을 기다렸다. 이런 생활 습관이 몸에 배서 남자는 축구를 좋아하고 여자는 축구선수를 좋아하는 행동 양식으로 나타났다고 하던데요.
“많이 공부했네요.(웃음)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남자는 여자보다 운동신경이 발달해 있고, 남자가 여자보다 공격성이 강하기도 하고요. 남녀의 신체 구조라든지 호르몬이 서로 다른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남자들은 공격적인 축구를 좋아하는지도 모르죠. 이에 비해, 여자는 관계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하죠. 연예인에게 관심을 표하는 것은 관계를 맺는 행위죠. 그들을 ‘오빠’라는 부르는 것은 그런 관계맺음의 한 표현이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연예인도 좋아하고, 축구선수도 좋아하고, 그럴 거예요.”

- 축구를 ‘남자의 전유물’로 여기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하지만, 여자가 축구를 하면 ‘무슨 여자가 축구를 하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맞아요. 성차별은 그런 편견에 의해 생기죠. 박은선 선수 아시죠? 아주 멋진 스트라이커 아닙니까? 남자이지만 여성성이 강한 이가 있을 수 있듯이, 여자이지만 남성성이 강한 이도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가슴이 이렇게 나오고 몸은 조금 가늘어야 여자답다는 그런 생각이 젖어 있어요.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이죠. 그 경계를 허물어야 해요.”

- 그렇다고 모두가 덩달아서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잖아요?
“바로 그 점이에요. 다름을 인정하고서부터 시작되는 게 양성 평등이거든요. 이게 아주 잘못되면 ‘여자도 군대 가야 돼!’ ‘그럼 남자도 애를 놔!’ 이런 막무가내 말싸움이 되거든요. 일반적으로 남자는 여자보다 힘이 세요. 그렇다고 무조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도 남자보고 하라는 건 옳지 않아요. 여자도 힘이 세면 100kg을 들고 남자도 힘이 약하면 60kg을 들게 하는 것,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회, 그게 이상적인 모습이에요.”

- 축구 이야기를 하다가 양성 평등으로 논의가 깊어지고 있는데,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더 있으시죠?
“많죠.(웃음) 요즘 군대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저도 아들 둘을 현역으로 군대 보냈어요. 그래서 그 심정 누구보다 잘 알아요. 제대할 때까지 하루하루가 긴장되더라고요. 그렇지만 군대 가산점에 찬성할 수는 없어요. 우리 큰애도 ‘아, 여자들은 벌써 취직해서 몇 년차인데 자기는 이제 제대해 가지고 어쩐다.’는 둥 불만을 얘기해요. 하지만 전체적인 것을 보면 그렇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양성평등까지 가려면 멀었거든요.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협력자가 되어 같이 가야 해요. 이게 모두를 위한 거니까. 양성평등은 결국 남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거든요? 동의하시죠? 하하.”

▲ ▲ 학생들에게 길을 묻다 여수의 네 군데 고등학교를 돌며 친구들에게 물었다. 남자는 어떻고 여자 또한 어떻더냐고? 대답은 의외!였다. ⓒ 방현유

우리는 여성과 남성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알고자 간단한 설문조사를 했다. ‘남자는 축구를 좋아하고, 여자는 축구선수를 좋아한다는 것이 당연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기로 한 것이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당연하다고 답변하리라 짐작했던 우리는, 사뭇 다른 결과에 당황했다.

우선 남학생 표본 집단으로 선정한 여수고등학교 1, 2학년 남학생 100명은 ‘당연하다’는 응답이 29명, ‘모르겠다’는 응답이 29명, ‘당연하지 않다’는 응답이 42명이었다. 의외였다.

그리고 여학생 표본 집단으로 선정한 여수충무고등학교, 여수중앙여자고등학교, 여수여자고등학교 1, 2학년 여학생 100명의 응답은 더 놀라웠다. ‘당연하다’에 7명, ‘모르겠다’에 15명이 응답한 반면, ‘당연하지 않다’에 78명이 응답하였다.

남학생의 42%와 여학생의 78%가 기존의 통념을 거부한 것이다. 설문결과를 보기 전에는 ‘당연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리라 생각했던 우리에게 일침을 놓는 결과였다.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야겠다는 다짐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 ▲ 남자와 여자 남자와 여자는 함께 살아갈 우리다. ⓒ 방현유

(기사 작성 : 동아리 <사랑해여수> 5기 방현유, 하재영, 문소연, 정시은, 박민기 기자)

♣ 취재 후기 : <사랑해여수>는 “발칙한 생각, 당돌한 질문”이라는 주제로 교육문제를 다시 생각하자며 나선 여수지역 고등학생들의 연합동아리입니다. 바쁜 시간을 내 주신 여수YWCA 한윤덕 소장님을 비롯한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저희를 위해 고군분투하신 박용성 선생님, 사랑합니다! (팀장 : 방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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