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생각, 당돌한 질문 ②] ‘반티’에 관한 생각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점으로 기원전(B.C)과 기원후(A.D)를 나눈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학교의 기원전 기원후는 세월호 참사가 있던 4․16을 기점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애먼 학생들이 ‘가만히 있다’가 죽어 나가지 않을 것 같아서, 우리끼리는 그렇게 말합니다.

학교란 무엇일까요?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가 나온 게 1994년이니까,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노래를 ‘다시듣기’ 하고 있습니다. “됐어 됐어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그 학교를 우리가 다니고 있습니다.

▲ 세월호 여수거북선공원에 세월호 희생자 추모 합동분향소가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 발길도 뜸해지고 있네요. 또 이렇게 잊히는 걸까요? Ⓒ 김민정

“학교에서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범생이’가 누군지 아십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가만히 있는 학생들을 말합니다. 아침 7시 반에 학교에 와서, 밤 10시까지 무려 15시간 동안, 가만히 있는 학생입니다. 고작해야 점심이나 저녁시간에 잠깐 짬이 나지만, 그 틈에도 교실에 앉아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풉니다.

교복도 학교에서 정해준 대로 입고, 머리도 규정대로입니다. 이성 교제요? 공부에 묶인 몸인데 어찌 이성 교제 따위 하겠습니까? 가끔 부모님이 묶어 주시는 공부 과외에서 이성을 보기는 하지만, ‘엄마’가 보고 있는데 감히 꿈이라도 꾸겠습니까? 그럼 언제 노느냐고요? 시험 끝나는 날, 게임이나 한 시간 하다가, 화들짝 놀라 다시 책상에 앉습니다.

왜 이런 애기를 늘어놓느냐고요? 우리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그렇게 공부해도 서울대를 한 해에 한 명 갈까 말까 합니다. 그런데 그 서울대 나온 괴물 같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잘 알지도 못하는 나머지 99%의 아이들의 삶을 제멋대로 들었다 놨다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들이 그랬듯이 가만히 있으라 하면 가만히 있는 게 괜찮은지 안다는 말입니다.

▲ 낙서 옹벽을 시공할 때 물빠짐 구멍을 만듭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견고한 옹벽도 터져 버립니다. 말도 안 되는 이런 낙서들도, 그냥 웃고 지나가 주세요. 옹벽에 내놓은 구멍이려니 생각하시면서. Ⓒ 김윤영

“가만히 있었으면, 아직도 학교는 단발머리에 까까머리일 겁니다.”

범생이들이 책상에서 열공하는 사이에, 문제아들이 학교를 이만큼이라도 만들었다고들 하지요. “머리 1센티미터 더 길게 하는 사이에 문제아들이 얼마나 맞고, 치마 길이 1센티미터 짧게 하는 사이에 그 문제아들이 얼마나 쥐어뜯겼겠느냐”(김진섭, 여수고 2년)면서요. 정말 그래요. 다들 가만히 있었으면, 아직도 학교는 단발머리에 까까머리일 거예요. 지금 괜찮은 거라면 그때도 괜찮았을 텐데, 왜들 그때는 그리 야단법석을 떨었을까요?

반티도 그래요. 처음에는 체육대회 날 반을 구분하기 위해서 입기 시작한 반티가 어느덧 반 친구들을 하나로 모으게 되었어요. 진화한 거지요. 그래서인지 1학기의 반은 반티를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며 보내고, 나머지 반은 그 반티를 입고 서로 부대끼면서 보냅니다. 길거리 인터뷰를 해 보니, 학교에서 이렇게 된 게 한 10년 되었더라고요. 이제 반티는 학교문화의 일부를 이루게 되었어요.

물론 반티 뒤에 쓰고 다니는 이니셜이 좀 껄끄러운 게 있긴 해요. 박은옥(52세, 여서동)씨에 따르면 “부모 세대는 반티에 단합심을 보여줄 이니셜을 새기기 바랐지만 자식들은 욕설이나 은어 등을 써 넣었다.”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하였어요. 야구 선수나 축구 선수, 연예인 이름을 새기는 것은 그래도 넘어가 줄 수 있는데, 가끔 거친 비어나 은어가 민낯을 드러내면 좀 그렇기는 해요. 하지만 학교라는 답답한 공간에서 그 정도는 웃고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무조건 ‘금지’까지 할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 금지공문 걷다 보면 넘어지기도 하고, 뛰다 보면 다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라는 게 아닐까요? Ⓒ 박해지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으라니까.”

제목 : 교내 체육대회 관련 학급별 유니폼 구입 자제 안내
1. 관련 : 2014. 학교운영위원회 길라잡이
2. 일부 학교에서는 학교교육계획에 의거하여 운영되는 교내 체육대회 시 착용 목적으로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유니폼을 구입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는 신입생 체육복 구입과 중복되어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된다는 민원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3. 이에 각급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건전한 경제관념 형성과 바람직한 소비생활 지도 차원에서 교내체육대회 시 착용할 목적으로 학급별 유니폼을 구입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적 지도에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끝.

간단히 말하면, 돈 든다며 반티 입는 것 금하라는 전라남도교육청 공문(2014.4.10)입니다. 맞습니다. 돈 들지요. 위아래 한 벌 하면 2만원쯤 드니까요. 그러니 누군가가 교육청에 민원이라며 전화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렇다고 이렇게 공문 보내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되는 겁니까?

“그 정도 돈 들여서 살 수 있는 옷도 많지 않고, 싼티 나지만 그런 옷 입고 다니면서 그만큼 쪽팔리지 않는 옷도 없다.”는 손동현(여수고 2년)군의 푸념은 그래서 나옵니다. “만약 민원이 들어왔다면 금지 공문을 보낼 게 아니라 우리들에게 토론을 해 보고 결정하라고 하는 게 교육적이지 않을까요?”라는 김경민(여수고 학생회장, 3년)군의 항변도 그래서 나옵니다.


▲ 강영문 교수님 답답해서 찾아갔다. 그분도 우려는 하였지만, 그래도 우리를 이해해 주셨다. 교육에 보수나 진보는 없다. 이해와 몰이해가 있을 뿐이다. Ⓒ 강수현

우리는 궁금해하는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을 찾다가, 전남대학교 사회통상학부 강영문 교수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 흔히 청소년 문화를 하위 문화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화라는 것은 수직이 아니라 수평의 개념이에요. 그러니까 어느 문화는 우수하고 어느 문화는 열등하다는 건 잘못이에요. 어른 문화나 청소년 문화나 다 같은 문화이지, 청소년 문화라고 해서 반드시 어른들의 문화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건 옳지 않아요. 다만 청소년들은 자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른들의 지도가 필요하긴 해요.”

- 체육대회에 입는 반티는 이제 학교에서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독특한 청소년 문화라고나 할까요?
“반티라는 것은 영어로 뭐라 그래요. 유니폼(uniform)이라고 하죠. 유니폼이란 ‘일치된, 똑같은’ 그런 뜻이에요. 군인들이 입는 군복이 유니폼이죠. 그런데 왜 군복을 입힐까요? 일체감과 소속감을 주기 때문이죠. 물론 이런 게 지나치면 다른 집단에 대해 배타적으로 나올 수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많아요. 반티도 그럴 거예요. 반티를 입고 소속감도 느끼고 추억도 만드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 그런데 왜 어른들은 반티를 막으려고 하는 걸까요? 크게 비싸지도 않고, 들어간 돈에 비해서 활용 정도도 아주 큰데요. 사철 입잖아요.
“살 형편이 안 되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렇다고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것은 문제이지 싶어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둘 간의 접점을 찾으면 어떨까요. 그래도 여러분은 아직 고등학생이니까 어른들이 우려하는 부분을 생각하면서 접점을 찾는 거예요. 여러분이 자율적으로 어떤 대안을 제시하면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른들도 동의하지 않을까요. 그런 과정에서 여러분도 배우는 거고요.”

▲ 대한민국의 학생들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학교로 복귀하던 날, 그들 손목에 채워져 있던 를 우리도 기억합니다. 기억은 힘이 세지요. Ⓒ 강봉명

(기사 작성 : 동아리 <사랑해여수> 강봉명, 강수현, 김민정, 김윤영, 박해지 기자)

♣ 취재 후기 : 선생님이 그러시대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만약 그 상황이 되었다면 당신 성격으로도 도망치지 못하고 같이 죽었을 거라고. 그 말 들으니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어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우리가 제기하는 교육 문제도, 선생님들 미워서 그러는 것 아니라는 것, 알아 주셨으면 해요. 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들, 사랑해요! (팀장 : 강봉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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