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생각, 당돌한 질문 ③] 학교에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 왜 그럴까?

1910년 8월 29일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1945년 8월 15일 해방되었으니, 그 세월이 35년이다. 그리고 자주독립국가의 국민으로 우리는 70년을 보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게으르다고 말하는 이가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있고, 우리의 20년, 30년 이후를 보여 주는 학교마저도 혁신되지 않고 있다.

지금도 많은 학교들이 ‘충효’, ‘근면’, ‘성실’, ‘정숙’ 같은 판에 박힌 교훈을 사용하고 있고, 세계 경제 몇 위라고 할 때는 언제고 구차한 이유를 들어 교복 입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으며, 학생들의 중앙 현관 출입 금지, 불시 용의검사 등 일제 때 학교에서 시작한 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수업시간마다 하는 ‘선생님께 구령 붙여 인사하기’도 마찬가지다.

▲ 체육대회. 체육대회와 소풍도 일제 때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일제의 잔재라고 없애자고 하지는 않는다. Ⓒ 조은준

“차렷, 경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반장 : 차렷, 경례.
학생들 : 안녕하십니까.
교사 : 인사하는 태도가 이게 뭐야? 다시!
반장 : (목소리를 한껏 높여) 쉬어! 차렷! 선생님께 경례!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단어 풀이가 이렇다.
쉬어 [군사] 제식훈련에서, 열중쉬어의 자세보다 편한 자세를 가지라는 구령.
차렷 [군사] 제식 훈련에서, 몸과 정신을 바로 차리어 부동자세를 취하라는 구령.
경례 [군사] 상급자나 국기 등에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고개를 숙이거나 오른손을 이마 또는 가슴에 대라는 구령.
우리의 교실이 군대 병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차렷경례는 일본이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만든 교육 방식이다. 1874년 발행된 교사용 교재 《상하소학교수업법 세기》에 따르면, 당시 일본에서는 ‘리쓰레이[立禮]’라 하여 교사가 학급에 들어오면 ‘하나, 둘, 셋’의 구령에 따라 학생들이 ‘일어서’, ‘경례’, ‘앉아’의 집단행동을 요구받았다. (지금도 법정에서 재판장이 들어오면 구령에 따라 모두 벌떡 일어서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그러다가 ‘하나, 둘, 셋’ 하는 구령이 ‘차렷, 경례’로 변용되어, 해방된 지 70년이 다 된 우리 교실에 아직도 남아 있다.

▲ 지금은 수업 중. 수업을 하고 있는데도 자기도 하고 딴 짓을 하기도 한다. 차렷경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받게도 생겼다. 하지만. Ⓒ 조은준

“일제의 잔재라며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있나?”

선생님들이 ‘차렷, 경례’를 하지 않는다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 그래서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물었다. 상당히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교사와 학생의 수업 전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는, ‘구령으로 하는 인사’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몇몇 학생만 데리고 하는 반쪽짜리 수업을 진행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차렷, 경례를 일제의 잔재라고 하지만, 공동체 집단을 묶는 효율적인 방식인 것 같다.”(ㅅ교사, 40대), “수업하기 전에 자는 학생들이나 수업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학생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식이다. 딱히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ㅎ교사, 50대),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 존중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ㄱ교사, 40대)라는 게 선생님들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정작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반응은 달랐다. “시간마다 하는 차렷 경례, 너무 형식적이다. 그냥 자유롭게 인사했으면 좋겠다.”(곽희원, 여수여고 2년), “질서를 잡는 것은 좋다. 그렇다고 굳이 일제시대의 방식을 써야 할까.”(김혜빈, 여수여고 2년),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 그게 인사한다고 생기나?”(ㅈ학생, ㅊ고 2년).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류였다.

▲ 새싹. 작은 듯이 보이지만, 변화에는 힘이 있다. 초등학교의 이런 수업 풍경에 어찌 ‘차렷 경례’가 끼어들 수 있겠는가. Ⓒ 김나경

“차렷 경례? 그런 인사 우리는 안 해요.”

<연속 인터뷰1> 부영초등학교 임선주 선생님
“내가 교직생활이 30년 정도 됐는데 ‘차렷 경례’ 하고 수업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차렷 경례는 흔히 알기로 일제의 잔재인데, 그리 알면서 따라할 수는 없잖아요. 더욱이 차렷경례는 수업 분위기를 강압적이고 딱딱하게 만들어요. 우리 학교에서는 수업 시작 전 그렇게 인사하는 선생님들은 안 계세요.”

<연속 인터뷰2> 여도초등학교 정선주 선생님
“우리 학교에서 차렷 경례가 사라진 지가 3, 4년 됐네요. 수업 시작할 때 교사가 ‘사랑합니다’ 하면, 학생들도 ‘사랑합니다’ 하고 인사하지요. 교내에서 애들을 마주쳐도 ‘사랑합니다’ 인사하며 지나가지요. 모든 인사가 그래요. 애들과 친밀도를 높이는 데 ‘사랑한다’는 말보다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연속 인터뷰3> 신기초등학교 장유순 선생님
“초등학교는 담임제라 중고등학교와는 조금 다를 거예요. 어떤 선생님은 자세를 바르게 해 놓고 ‘열심히 배우겠습니다’로 시작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차렷 절’ 이렇게 하시는 분도 계세요. 그리고 끝날 때에는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는 경우도 있고요. 선생님들마다 다르죠. 실질적으로 학생들 마음에 가 닿는 말씀을 하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아요.”

경례는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다. 질서를 잡는다며 하급자에게 경례를 명령하는 것은 폭력을 관리하는 집단인 군대에서는 필요하다. 하지만 학교는 군대가 아니다. 교사가 교육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성숙한 인격자이듯, 학생 또한 미성숙하지만 예의를 갖추어 대해야 하는 존엄한 인격자이다. 교사가 상급자가 아니듯이 학생도 하급자가 아니다.

▲ 조까치 권위는 필요하다. 하지만 교사가 권위를 버릴 때 진정한 권위가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그 위에서 ‘민주’는 자라나지 않을까. Ⓒ 고은비

별명이 ‘까치’다. 그런데 성과 함께 별명을 부르면 듣기 뭐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별명을 통해 오히려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분이다. 권위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 여수여자고등학교 조성훈 선생님을 만났다.

- 수업하기 전에 하는 ‘차렷 경례’, 어떻게 생각하세요?
“차렷 경례는 학생들을 획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방편이지요. 일제시대의 잔재였던 것이 군사독재정권에서 쓰이다가, 아직까지 쓰이고 있네요.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민주화되어서인지 차렷 경례보다는 조금씩 변화를 보이던데요. 예를 들어 ‘바르게 합시다’ 그러고 나서 반장이 ‘다함께 인사’ 하면 나름 독특한 인사말을 주고받기도 하더라고요.”

- 선생님은 수업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 인사하세요?
“교실에 들어가면 제가 먼저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합니다. 그럼 친구들도 다 같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사랑한다고 하트를 그리면 아이들도 같이 하트를 그려 주던데요.(웃음)”

- 하지만 수업 시간에 잠자는 아이들도 깨워야 하고, 한눈파는 아이들도 챙기는 게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그래서 어떤 선생님은 이렇게 하시대요. 반장이 일어나서 ‘바른 자세’ 하고 주의를 집중시킨 다음 ‘인사’ 하고 말하면,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하고 예의를 갖추고 교사도 ‘저도 열심히 가르치겠습니다’ 하고 답례를 하더라고요. 물론 주고받는 인사말은 ‘선생님 존경합니다.’ ‘선생님 최고입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이렇게 인사하면, 교사는 그에 맞추어 ‘여러분 존경합니다.’ ‘여러분 최고입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로 답례하는 등, 다양하게 변화를 주기도 하지만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곳곳에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너무 깊게 박혀있다는 이유로 청산을 머뭇거리거나,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한 채 혁신을 귀찮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과감하게 청산해야 하지 않을까. 8․15가 얼마 남지 않았다.

▲ 대한민국의 학생들. 가끔은 고통스럽지만 기억할 것은 꼭 기억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학생들. Ⓒ 고은비

(기사 작성 : 동아리 <사랑해여수> 5기 고은비, 조은준, 김나경, 김혜연 기자)

취재 후기 : 이번 취재를 하면서 학교 곳곳에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에 깜짝 놀랐다. 우리가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훈에도 황국신민을 만들려는 일제의 간교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말을 듣고 경악하였다. 해방된 지 수십 년이 흘렀는데도, 학교는 변화에 둔감하다. ‘차렷, 경례’를 가지고 참으로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만나면서 실망도 하였지만, 작지만 귀한 변화를 뵐 적에는 많이 감사했다. 그분들에게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인사드리고 싶다. (팀장 : 고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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