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생각, 당돌한 질문 ④] 급식에 목매는 학생, 그 겉과 속

학교에서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은 무엇일까요? ……. 그러니까,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시간? 삐, 체육시간. 에이, 아니에요, 남학교에서나 그렇지 여학교는 어디 그런가요. 남자애건 여자애건 다들 기다리는 시간, 정말 열망하는 시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삐, 점심시간! 예, 정답입니다.

믿기지 않으시면 아무 학교나 가 보세요. 점심시간이면 우사인 볼트, 그 빛의 속도로 달리는 아이들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남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밥을 먹으려고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 그 왕성한 식욕에 웃음이 나올 거예요. 그런데 학생들은, 왜 '조잔하게' 먹는 것에 그리도 목을 맬까요?

▲ 오늘 급식 대박. 칠판에 적혀 있는 급식 메뉴를 보고 환호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먹는 것이 남는 것이여! Ⓒ 조민희

“군대에서 먹었던 건빵 생각나세요?”

삼촌이 그러시더라고요. 가장 무서운 꿈은 다시 군대 가는 꿈이라고. 얼마나 군 생활이 힘들었으면 군대 가는 것이 악몽이 될까요? 2년 동안 집 떠나 사는 것도 끔찍한데, 거기다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 그러지 않으면 폭력적 징벌이 뒤따른다는 것, 가끔 '관심병사'로 살다 죽기도 한다는 것. …이해해요.

스트레스 엄청날 거예요. 그래서 그걸 어떻게든 풀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별 희한한 짓도 다 한다더군요. 냄새 나는 변소에 쪼그려 앉아 초코파이 혼자 먹었다는 얘기, 건빵만 먹고 별사탕 따로 남겨서 반합에다 가루로 만들어 우유에 타먹었다는 얘기, 그런 전설 같은 얘기. 전부 이해해요. …대한민국 남자들, 장해요.

바로 그 군대와 비슷한 규율이 존재하는 곳이 어딘지 아세요? 바로 학교예요. 군대에서 외출증 없이 밖에 나가면 죽음이라던데, 학교도 그래요. 군대로 말하자면 탈영병 취급받죠. 무릎 꿇고, 얻어맞고, 반성문 쓰고, 부모님 호출당하고. 그래서 꾹 참는 거죠. 아침 7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군대는 2년인데, 우리는 3년 동안이나.

▲ 해방구. 급식 시간은 밥만 먹는 시간이 아니지요. 쌓인 스트레스를 쏟아내는 시간이기도 하니까요. ⓒ 박상욱

“우리에게 급식은 그냥 밥이 아니에요.”

학교생활? 힘들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15시간 가까이를 담장 안에 갇혀 있다는 것, 생각보다 힘들어요. 날마다 우리 일과가 이래요. 영어듣기 30분, 정규수업 7시간, 보충수업 2시간, 청소시간 30분, 자율학습 3시간, 이렇게 하고 남는 시간이 2시간인데, 그게 바로 점심 저녁 먹는 시간이에요.

그 시간은 밥만 먹는 게 아니에요. 하루 종일 성적으로 한 줄 세우기 당하면 스트레스 왕창 쌓이는데, 그 시간만은 그게 없어요. 선생님도 안 계시고. (따로 식사하시거든요) 우리끼리 밥 먹고 웃고 떠들면 스트레스 확 풀려요. 그러고 나서 매점에 가서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면, 그냥 돼요.

학급에 따라서는 칠판에 '오늘의 메뉴'가 적혀 있지 않으면, 주번 되게 까여요. 그래서 등교하자마자 점심과 저녁 식단을 적는 게 주번 일이에요. 학생들은 메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지요.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나오면 법석이다가도, 급식이 별로이면 성토장이 돼요. "우리가 뭐 염소 새낀가, 맨날 풀만 뜯게."

▲ 우리네 점심. 여수여고, 중앙여고, 여수고, 한영고 급식인데, 어때요? 남학교라고 해서 형편없는가요? Ⓒ 채지원

“남고보다 여고 급식이 맛있는 이유가 있다는데, 헉!”

다들 급식에 대한 불만들이 참 많죠. 그래서 한영고등학교 급식실을 찾아보았어요. 여고보다, 특히나 남고 급식이 맛이 없다고들 하는데,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지요. 설거지로 식판이 시끄럽게 부딪히는 급식실에서 황유미 영양사님과 인터뷰를 하였는데, 바쁜데도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답해 주셨어요.

- 여고보다 남고 급식이 맛이 없다고들 하는데, 왜죠?
"여고보다 남고 급식이 맛이 없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글쎄요. 만약 그렇다면 쌀 소비량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마침, 얼마 전에 여수 시내 고등학교 쌀 소비량을 조사했는데요. 1000명을 기준으로 남자고는 한 끼에 100~120㎏ 정도, 여자고는 60~80㎏ 정도를 소비하더라고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1.5배 정도 더 먹는다는 얘기죠. 남고에서 반찬이 세 가지라면, 여고에서는 반찬 한 가지를 더 만들 수 있다는 얘기죠."

- 식비는 한 끼에 얼마 정도 하나요?
"점심은 2800원, 저녁은 3000원. 점심에는 시에서 친환경 급식 지원이 되니까 2800원, 저녁에는 지원이 안 돼서 3000원으로 책정하고 있어요."

- 학교 급식에 대해 왜 불만들이 그리 많을까요?
"중학교 때는 급식 한 끼만 먹다가 고등학교로 올라오면서 두 끼를 먹게 되고, 메뉴는 한정되어 있다 보니까, 반복되는 급식이 맛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아요. 요즘 정말 많이 좋아졌거든요. 아까 질문하신 남고와 여고의 차이도 그래요. 소문에 부영여고 급식이 맛있다고 해서 직접 답사도 가보고, 영양사 선생님들끼리 메뉴도 공유해 보았는데, 별 차이가 없더라고요."

▲ 그 때 그 맛집. 박선흠 교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포가토와 하트가 그려진 라떼를 직접 만들어 주시며 유쾌한 입담과 온화한 미소로 인터뷰에 응해 주셨지요. 그 맛, 정말 끝내 줬어요. ⓒ 하지우

학교급식은 교육이라고들 하지요. 학교에서 이루어지니까 그런가 봐요. 그래서인지 영양사도 조리사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급식이 학생의 심신 발달이라는 교육적 목적에 걸맞게 이루어지는지 묻고 싶을 때가 많아요. 학교급식은 날이 갈수록 학생들 하자는 대로 하는 것 같거든요. '엄마 밥상'에서 점차 멀어지는 것 같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뵌 분이 한영대학교 호텔조리학과 박선흠 교수님이지요.

- 요즘 급식, 좋아졌어요. 하지만 민원 때문인지,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식단을 짜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맛있다고 좋은 건 아닐 텐데요.
"설마요. 학교에는 영양사가 있어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 무기질, 칼슘 등 필수영양소가 고루 들어 있는 식단을 짤 거예요. 물론, 개선할 점도 있겠지요. 친환경급식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인스턴트식품이 식단에 오르기도 할 것이고, 학생들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 선호하는 식자재를 사용하기도 할 것이며, 식품첨가물인 MSG를 넣기도 할 테니까요. 하지만 학생들에게도 문제는 있어요. 그 좋은 나물 반찬 해 놓으면 투덜거리며 버린다면서요? 좋은 음식 제공하면 뭣해요? 안 먹는데."

- 뜨끔한 지적이신데, 친환경급식이나 무상급식이 선거에서 이슈로 떠오를 만큼, 학교 급식은 이제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가 되었는데요?
"맞아요. 학교 급식이 선거 공약이 될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지요. 여러분이 우리 사회의 미래인데 건강한 먹거리를 먹고 자라야, 우리의 미래도 건강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의술로도 치료할 수 없다고 했어요. 내가 먹는 음식이 지금 당장 반응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5년, 10년이 지난 뒤에 나타날 수도 있거든요. 요즘 젊은이들 인스턴트 음식 많이 먹어 정자수가 줄어든다는 말 들어봤을 거예요. 급식은 오늘 한 끼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에요. 모두들 급식도 교육이라는 생각을 한시도 잊지 않았으면 해요."

▲ 대한민국의 학생들.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가 결정하며 우리가 행동한다! 이게 4․16 이후, 우리의 달라진 모습이에요. Ⓒ 백형민
(기사 작성 : 동아리 <사랑해여수> 5기 박상욱, 백형민, 하지우, 채지원, 조민희 기자)

취재 후기 : 한때는 급식이 안 좋으면 “행정실장과 교장선생님이 친하면 이리 되는 거야.”라고 비웃고 말았지요. 하지만 4월 16일 이후, 우리는 달라져야 함을 깨달았어요. 그렇게 방관자로 살아서는 안 될 것 같아, 한 번 추적해 보았지요. 이제야 뭔가를 알 것 같아요. 좌충우돌 돌아다니면서 많은 분들을 괴롭혔는데, 감사합니다. 특히나 여수고 서혜경, 한영고 황유미, 여수여고 박진아, 중앙여고 이슬 영양사 선생님, 힘들게 해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박선흠 교수님께는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여수지역 고등학생 연합동아리 <사랑해여수> 5기, 팀장 : 박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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