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진학지도기>는 2014학년도 서울대학교 수시모집 기회균형선발전형 인문(광역)계열 합격생 진학지도 수기로 서울대학교 입학본부 웹진 아로리(http://snuarori.snu.ac.kr/) 2호에 실린 글입니다.

경사

▲ 한경호 여남고등학교 교사
경사가 났다. 전교생 45명, 3학년 11명인 섬마을 학교에서 서울대학교 합격생이 나왔으니 그것은 경사였다. 2014학년도 서울대학교 수시모집 인문계열(광역)에 우리 반 J군이 합격한 것이다. 합격자 발표가 뜬 것 같은데, 호환성의 문제로 홈페이지가 잘 열리지 않았다.

30여분이 흘렀고 스마트폰이 생각났다. 다행히 연결되었고 마지막 클릭이 남았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상태로 버튼을 눌렀다. 합격! 꿈만 같았다. 그동안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하늘에 감사했다. J군에게 전화했다. 정작 본인은 합격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선생님, 정말 제가 서울대생이 된 거에요!”라는 기쁨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울린다. 마치 홍수환 선수가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했던 것처럼.

사실 경사는 그 이전에 또 있었다. 1학기를 마무리할 즈음 <추석특집 KBS 도전 골든벨>을 우리 학교에서 녹화하고 싶다고 PD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생수가 100명이 안되어서 어렵겠다고 하니, 특집이니 졸업생과 지역주민까지 넣어서 하면 된다고 설득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포함 학생 60명, 졸업생 20명, 지역주민 20명을 어렵게 선발했다. 하지만 준비해야 할 일이 만만치 않았다.

도시 학교 같으면 학생 100명만 선발하면 될 것인데 지역주민 동원과 식사 문제, 오고가는 배편 문제 등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8월 23일 야외녹화를 하려는데 전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체육관이 좁아서 실내 녹화를 할 수도 없었다.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오전까지 내리던 비가 촬영을 하기로 한 오후부터 그쳤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한 녹화가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95대 골든벨 주인공의 탄생과 함께… 이번에 서울대에 합격한 J군이 그 주인공이었다.

폐교
우리 학교는 여수에서 배를 타고 1시간 이상 가야하는 금오도라는 섬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2012년 3월 전교생이 30명인 본교로 3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신입생이 5명밖에 되지 않았다. 더불어 정부의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에 따라 학생들과 지역사회에 학교 폐교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었다. 2년 연속 신입생이 10명을 넘기지 못하는 학교는 폐교한다는 도교육청 방침 때문이었다.

교육은 살리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고, 학교를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이유에서든지 학교를 없애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학교는 지역사회 공동체의 구심점이다. 학교가 없어지면 학교가 없어지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자녀를 교육할 학교가 없으니 젊은 사람들이 섬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머지않아 이 섬도 노인들만 남을 것이고 결국에는 무인도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학교를 살려보자고 뜻을 모았다. 섬에 있는 중학교 자원만으로는 10명을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육지에 나가서 도서지역 소규모학교인 우리 학교만의 장점을 홍보하기 시작하였다. 기적처럼 신입생 정원 28명을 모두 채웠다.

만남
2012년 학교에 부임하자마자 3학년 담임을 맡았다. 우리 반은 13명이었다. 우리 섬에서 최고의 바람은 교육감추천 전형으로 교육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다. 전라남도 도서지역 13개 고등학교에서 4명씩 추천을 받아 최종 10명을 선발하는 특별전형이다. 각 학교에서 1명씩 합격해도 나머지 3개의 학교는 교대 진학을 못하는데, 우리 반에서 3명이나 합격했으니 우리 학교는 서울대학교에 3명이나 합격한 셈이다.

190센티가 넘는 키의 J군을 문학시간에 만났다. 기존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부를 잘한다고 했다. 섬 아이답지 않게 모의고사도 1~2등급을 받는다고 했다. 담임은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다. 자아가 매우 강한 아이였고, 해양대에 진학해서 배를 탈 것이라고 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면담과 관찰을 계속했다.

해가 바뀌고 2013학년도가 되었다. 교무부장을 하면서 3학년 담임을 맡기에는 다른 선생님들께도 미안하고 버거울 것 같아서 숫자가 적은 2학년 담임을 원했다. 지난 해 교대 3명 합격이라는 실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요(?)에 의해 3학년 담임을 또 맡았다. J군과 함께 우리 반 11명을 만났다.

진주
진주를 보았다. 그것도 흙 속에 묻혀있는 진주를…
2학년 때 만났을 때부터 내 눈에 그 아이는 진주로 보였다. 학원하나 없는 섬에서 오직 자기주도적 학습만으로 국,영,수 모두 1등급을 받는 것도 그렇지만 특히 독서능력이 돋보였다.

교사추천서에도 썼지만 교직생활 28년 동안 만난 제자들 중에서 가장 독서다운 독서를 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독서토론수업이나 토론대회 때 보면 독서를 바탕으로 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상대를 논리적으로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논리적 사고와 더불어 철학적 주제에 매우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J군은 강적이었다. 여전히 해양대 진학을 원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배를 타는 것은 그 아이의 적성이 아니었다. 나는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5월이 되어서야 진심을 보였다. 사실 심리학과나 철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가정 형편 때문에 부모님이 해양대를 가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꿈을 잃어버렸으니 적당히 공부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 아이는 공부를 적당히 했다. 예를 들어 모의고사가 끝나고 나면 한 3일 동안은 공부와 관계된 책은 전혀 잡지 않고 책만 읽어댔다. 학생이 독서하는데 국어선생이 뭐라고 할 수는 없고, 책 그만 읽고 공부 좀 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집에 가면 컴퓨터 게임도 밤새워 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영원한 2인자일 것 같던 K군이 치고 올라왔다.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모의고사 점수가 50~70점 정도까지 차이가 나던 둘 사이가 조금씩 좁혀지더니만, 드디어 6월 모의고사에서 역전이 되어버렸다. 아마 J군이 충격을 받았으리라. 사실 K군도 서울대 원서를 냈지만 떨어졌다. 교직생활 28년 동안 이렇게 무섭게 성적이 향상된 아이는 처음 보았다. 3월 모의고사에서 322점을 받아 깜짝 놀라게 하더니 6월에 360점대, 수능에서는 370점대를 기록했다.

1학기가 끝나 가는데도 여전히 진주를 캘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던가? J군이 골든벨을 울리고 등록금 문제가 해결되면서 그의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들의 진로를 막아서 미안하다.’면서 이제는 아들이 원하는 인문학 쪽의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도전
시간이 부족했다. 국사공부도 다시 시작해야 하고, 자기소개서 준비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목표가 생기니 J군은 다시 무섭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9월 모의고사에서 다시 K군을 넘어섰다. 국,영,수 모두 1등급을 받았다. 1학기 때보다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도전 골든벨이 그 아이의 인생에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다. 9월이 지나고 10월이 되면서 혹시 최저 등급을 못 넘길까봐 조금씩 초조해지는 것 같았다. 국,영,수 모두 1등급을 받거나, 아니면 최소한 1,1,2 등급은 받을 거라며 격려했다. 11월이 되고 섬에서 배를 타고 나와서 수능시험을 치렀다. 가채점 결과 잘하면 올 1등급을 받을 것 같았다.

이제 다시 새로운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기회균형이기는 하지만 면접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전라남도 교육청에서 100명을 선발하여 모의면접 캠프를 실시하였다. 그런데 지원자가 많아 지역균형 학생들만 받고, 기회균형 학생들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캠프 당일 날 우리 반 2명의 학생을 데리고 무조건 캠프장으로 찾아갔다. 담당 장학사님께 사정 이야기를 드리고 캠프 참가를 허락받았다. 4박 5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교육 한 번 받을 수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면접에 대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학교로 돌아와서 다시 선생님들께 부탁해서 몇 번의 모의면접을 실시하였다. 그런데 J군만 2차 면접대상자가 되고, 아쉽게도 K군은 떨어졌다.

하지만 불안했다. J군의 내신 성적이 2.3정도였기 때문이다. 내신 성적은 13명부터 1등급이 나온다. 그런데 학급 인원이 11명이다보니 1등을 해도 내신은 2등급을 받는다. 거기에다가 2학년 2학기부터 K군이 치고 올라오면서부터 몇 과목은 3등급을 받기도 했다.

전 과목 1등급을 받고도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는데,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K대와 또 다른 S대의 경우에는 13명이 안 되는 고등학교의 경우 받은 내신 성적에서 -1을 시켜준다고 아예 입시요강에 명시해놓았는데, 서울대는 그런 기록이 없었다. 그렇지만 정량평가보다 정성평가를 한다고 하는 입학사정관제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비상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서정윤 시인의 <사랑한다는 것으로>라는 시이다.

우리 반 11명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이제 내 아이들이 금오도라는 작은 섬의 보금자리를 떠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 새로 돋아난 작은 날개를 가지고 더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거라!

넓은 세상 비행(飛行)하다가 지치거든 너희들의 보금자리를 기억하거라!
언제든지 지친 너희들의 날개를 쉬어 갈 수 있도록 마냥 기다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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