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요일에는 가을을 줍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제가 집을 나서서 어딘가 아름다운 곳을 찾을 때마다 늘 물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림 같은 남도 풍경이야기’라는 블러그를 운영하고 있는 최근영님입니다. 이분에게 전화를 하면 계절별로 남도의 가장 아름다운 곳을 소개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나주의 은행나무 길과 담양의 은행나무 길을 소개받았습니다. 지금 그곳에 가면 풍경이 참 곱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아내와 친구부부와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언제나처럼 가을을 만나러 가는 길은 늘 설레는 길입니다.

집을 출발해서 두 시간여 만에 노란 단풍잎이 긴 터널을 이룬 단풍길을 만났습니다. 노릇노릇한 햇살이 잎을 노랗게 물들인 그 길을 걸으면서 “아! 좋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죽녹원의 대숲을 걸으면서 소슬바람에 사각거리는 댓잎의 소리도 들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식당들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돼지갈비 숯불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어느 식당은 하루 매출만 수천 만 원이라 했습니다. 어림짐작으로 그러한 집이 주변에 수두룩 했습니다. 담양은 이렇게 대나무 하나로 지역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죽녹원이라 해보았자 민둥산에 대나무들로 빽빽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죽녹원뿐만 아니라 은행나무 길도 마찬가지였고 메타세콰이어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래 전에 누군가 거기에 나무를 심은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나무를 왜 심어?”하는 핀잔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 일이 비록 당대에는 결실을 볼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 그분들의 후세들이 그 덕분에 작은 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지역의 지도자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수억 원을 들이는 낭비성 행사나 일회성 행사에 들어가는 돈을 아껴서 우리의 후세들을 위한 조림에 신경 좀 썼으면 좋겠습니다.

잡목 숲으로 우거진 어느 산에는 단풍나무를 심고, 어느 산에는 은행나무를 심고, 어느 산에는 편백나무를 심고, 어느 산에는 삼나무를 심고, 어느 산에는 산벚나무를 심고, 그렇게 나무를 심고 30년 40년을 기다릴 줄 아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그 일이 비록 우리 당대에는 결실을 맺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 자식의 세대에는 그들이 우리가 조성해 준 편백나무 숲과 삼나무 숲을 감동어린 시선과 호흡으로 마주하면서 지치고 힘든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낭비성 예산을 줄여서 매년마다 한두 개의 산을 꾸준히 가꿀 수 있다면 앞으로 30년 후에, 40년 후에, 우리의 자식들과 우리의 손자들이 지금처럼 가을이 되면 가을을 줍겠다며 멀리 길을 떠나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저의 어렸을 때 기억에 집 주변에 있던 거의 대부분의 산은 벌거숭이 민둥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어른들이 이곳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마을마다 학교마다 나무를 심는 산림녹화는 구호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나무를 심었습니다.

30년 전, 40년 전 그때, 우리의 어른들은 곯은 배를 움켜쥐고 그렇게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부모, 형님 세대가 땀 흘려 심은 나무숲 사이에서 휴식을 취하고 등산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앞으로 30년, 40년 후에 우리를 대신할 후세들을 위해 왜 나무를 심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잡목 숲을 정리해서 삼나무를 심고 편백나무를 심고 30년 40년을 관리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그 숲이 새들을 모이게 하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지 않겠습니까.

먼 훗날 우리의 아이들이 잘 가꾸어진 숲에서,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에서, 꽃이 피는 산벚나무 아래에서, 손에 손을 잡고 뛰어놀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지역 발전의 잠재력을 높이고, 지역의 미래 가치를 높이는 또 다른 투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도시가 토목공사를 좋아하는 도시보다, 그리고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을 처리하기에 급급한 도시보다, 자연을 살려서 미래를 준비하는 그런 현명한 도시가 되면 좋겠습니다.

누가 뭐래도 도시는 우리가 우리의 후대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그러하기에 짜임새 있는 도시, 환경이 살아있는 도시, 지속적으로 발전 가능한 도시를 만들 책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미래에 대하여 어른인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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