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 해를 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섰습니다. 살아온 한 해를 되돌아보니 그 어느 해보다도 부지런을 떨면서 살았던 것 같은데, 막상 이렇게 한 해를 갈무리하는 시점에 서고 보니 ‘올해 내가 무엇을 이루었나?’하는 생각이 팔짱을 끼고서 저의 앞을 막아서는 느낌입니다.

올 한해를 살아가면서 제가 늘 놓지 않았던 마음은 초심을 잃지 말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 더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하루의 삶일지라도 이 사회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정초에 한 이 결심들을 마음에서 놓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던 한해였습니다. 착하게 사는 것은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삶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는 더디고 무딘 삶처럼 보일지라도 그 삶이 오히려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삶이라 저는 믿고 삽니다.

이제 저의 나이도 오십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어느 선배님이 “그것도 나이냐?”하고 나무라는 분도 계셨습니다만, 앞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마음이 급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급해도 초심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초심을 버리면 그 사람의 본성이 변하고, 그 사람의 본성이 변하면 그 사람의 인생도 따라서 변하기 때문입니다.

초심이란 처음에 품는 고귀한 마음입니다. 학교에 입학하여 첫등교를 하던 날의 설레는 마음, 첫 출근하던 날의 두근거리는 마음, 최선을 다해야겠다며 신입사원 때 품었던 그 마음, 아내를 처음 만나던 날, 거울을 수십 번도 더 봤던 그 마음, 사업을 새로 시작했을 때의 굳은 결심, 첫 아이를 얻었을 때의 기쁜 마음, 좋은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굳은 결심들...

이렇게 무엇인가를 처음 맞이하고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나 어떤 다짐이나 결심이라는 것을 하기 마련인데 그 마음이 바로 초심입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지요. 그리고 그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열정을 갖게 하고 인내하는 마음도 갖게 합니다.

그런데 어리버리하던 신입사원이 세월이 지나 고위 임원이 되고, 직원들 월급날만 되면 돈을 빌리러 다니던 사장이 운전기사가 모는 차를 타게 되고,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던 사람이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러움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성공을 하게되면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마음이 바로 초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처음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그 귀한 마음을 잃게 되는 것이지요.

좋은 사람, 좋은 동료,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부모, 좋은 상사, 좋은 사장이 되고 싶었던 그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이, 인생의 종착역에 이르러 귀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경우를 저는 아직 보질 못했습니다.

마음에서 이러한 초심을 사라졌다는 것은 그 마음 안에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초심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 마음 안에 순수하고 깨뜻한 열정이 식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지금 내가 너무 편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뭔가 가슴에 허허로움이 느껴질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나의 초심'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초심이 기억나거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새로이 고치고 가지런한 몸과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정면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상처와 고통은 우리가 초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우리가 초심을 잃어버리니 과욕을 부리게 되고, 그 과욕이 결국은 나를 망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이면 날마다 이렇게 발버둥치면서 사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올라가고,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갖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높이 올라간다 해도, 우리가 아무리 많이 가진다 해도 결국에 빈손이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환절기가 되니 주변에서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제 주변에도 제법 이름을 날렸던 분도 세상을 떠났고, 고위직에 계셨던 분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떠나는 분들을 마지막 배웅하면서 느끼는 생각 하나가 있습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사는 그날까지 사람답게 살다가 가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떠나가신 분들 중에서 누구 한 사람도 조금 더 벌 것을... 조금 더 높이 올라갈 것을... 하고 말하는 분은 한 분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저 세상의 헛됨을 조용히 내려놓고 아쉬움과 후회로 눈물 짓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분들의 그 모습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미래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남에게 못할 짓하고, 바득바득 욕심내면서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선하고 선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시퍼렇게 날이 선 마음으로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보듬는 따뜻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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