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후 우연히 반갑고 고마우신 지인을 만나게 되었다.

인사를 드려야 하는 분이었는데 까마득히 잊고 넘긴지라 죄송하고 송구한 마음에 몸들 바를 몰라 하는데 마치 급한 일 때문에 잠깐 들러서 일을 볼 것이 있다 시며 잠시 기다려 차나 한잔 하자는 말을 남기고 어느 사무실로 들어가셨다.



자영업을 하시는 분이고 평소 부러울 것 없이 사시는 분이라 선물 그 두 글자가 주는 중압감이 마음을 짓눌렀지만 주변을 살피니 조그만 구멍가게만이 있을 뿐 선택의 여지는 나에겐 분명히 없다는 사실에 재빠른 걸음으로 가게로 들어섰다. 칠순은 족히 되어 보이시는 할머니가

“ 뭐 사게?” “네. 할머니 이것 얼마인가요?” “이 사과 말이여!! 이것 징허게 달고 꿀맛이여.” “이것은 3만원, 저것은 3만6천원이여. 대목보다 만원이나 내려 부렀네.“



사실 그 가게에서 사과가 제일 비싼 것이었고 사과 외에는 딱히 시야에 와 닿는 물건은 없었으며, 지난 명절 즈음 과일 값에 비하면 저렴하다는 판단에 “할머니” “그럼 3만6천원 짜리로 주세요.”하고 값을 치른 후 뒤도 안보고 나왔다.



혹시 그 분께서 일을 마치시고 먼저 기다리고 계실지 몰라서였다.

기다리길 5분여 반백의 머리를 휘날리며 나타나신 그분에게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아까 산 사과 한 상자를 그분의 차에 억지로 실어 드렸다.



주변에는 찻집이 없는지라 길 카페(자판기)에서 일명 밀크커피로 잠깐의 대화를 나누고 각자 바쁜 걸음으로 헤어지고 난 몇 일후 일이다.

그 선배님의 전화였다. “어이 동생 자네가 준 그 사과 정말 기똥차게 맛이 있었네. 내 생전에 그런 사과 처음이었어. 고맙네. 동생“ ”어디서 그런 사과를 사셨는가?“ 아이쿠 이런 황당한 경우가.....



평소에 정적인 행동과 말 수 또한 적은분인지라 호탕하신 표현에 적잖이 당황하였으며 그런 선배님의 표현과는 달리 사실 나는 과일 고르는 법을 전혀 모르는 과일에는 문외한이다.

그렇지만 물건을 살 때 나만의 철칙은 있다. 절대 허세를 부리는 과한 금액의 지출은 하지 않다는 것과 진열된 물건 중에서 가장 상위의 금액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는 동급의 물건인데 맛이 없는 것을 더 비싸게 파는 어리석은 이들은 없다는 결론과 그 가격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선물의 의미를 되새기는 오늘 비록 정성을 다한 선물은 아니었지만 감사의 말씀과 점잖으신 선배님께서 “기똥차다”라는 파격적인 표현에 웬 종일 미소로 보낸 하루였다.

“진정한 선물은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선물이어야 하고 또한 주는 이도 받는 이도 부담스럽지 않음이어야 한다.”

그리고 “주었으면 그것으로 끝”이어야한다.



주었기에 받으려는 마음 그것은 자기 마음에 서운한 마음을 심게 할 뿐이고 그분을 원망의 대상으로 여기게 될 수 있기에 선물은 글자 그대로 남에게 선사하는 것이어야 한다.

달고 아삭대는 좋은 선물을 보내고 나는 솜털처럼 팍팍한 사과를 씹는 듯 아까워하는 마음이 드는 선물이라면 애당초 마음을 접는 것이 나를 위해 이로운 생각이 든다.



하루를 접는 이 시간 그분의 미소 속에 담겨진 사과의 맛처럼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 기똥차게 좋은 이로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좋은 인연으로 자리하길 희망하며 백열등 환히 비추는 시골의 구멍가게에 들러 토실토실한 사과 한 조락을 사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

그대는 오늘 어떤 선물을 준비 하셨나요?

마음의 선물이면 어떤가요. 지금 바로 전해보세요.





윤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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