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크고도 질긴 인연을 왜 우리는 외면하는가=



(가칭)매영문화재단 설립추진위원 심 재 수



-1592년 6월의 여수-

1592년 6월 10일(임진년 5월 1일) 하늘은 잔뜩 흐려있고, 마파람도 거세계 불어 좌수영 앞바다에 결진해있는 85척의 크고 작은 군선과 전투를 준비하는 군사들의 마음도 바람에 이는 파도와 함께 울렁이고 있다.



이미 부산포와 경상우수영마저 함락되었다는 원균의 급보를 받은 터라 진해루에 앉아 작전회의를 하고 있는 이순신장군과 휘하 장수들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역력하다. “이제 우리 모두 한번 죽을 것을 기약하고, 요망한 적을 소탕하여 나라의 수치를 만분의 일이라도 씻도록 하자”는 이순신장군의 진지한 당부에 모든 장수들도 결연한 마음으로 한목숨 바칠 것을 결의한다.



6월 13일(음 5월 4일)먼동이 틀 때에 기치와 창검으로 위용을 갖춘 85척의 전선과 5천여 좌수영 수군은 우렁찬 북소리와 나팔을 울리며 여수앞바다를 출발한다.이날 아침, 여수앞바다는 북소리와 나팔소리, 결의에 찬 군사들의 함성으로 사기가 충천하여 전선이 오동도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두려운 마음으로 환송하는 영민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6월 16일(음 5월 7일)정오에 옥포만에 도착한 좌수영 군은 적선 30여척을 발견하고 모든 장졸들이 일심으로 분발하여 바람처럼, 우뢰처럼 총통과 활을 쏘며 대적하자 적들이 혼비백산하여 일시에 무너지고, 흩어져 화살에 맞아죽은 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고, 모두 두려움에 떨며 헤엄치거나 바위언덕을 기어올라 도망하기에 바쁠 뿐이었다.



이 전투에서 좌수영군은 적선 26척을 총통으로 쏘아 깨뜨리고 불태우니, 옥포만에는 불꽃과 연기가 하늘을 덮었고 육지로 도망친 왜적은 숲속으로 기어들어가 엎드려 두려움에 떨지 않는 자가 없었다. 또한 오후 4시경 합포(진해시 웅천 2동)앞바다에 이르러 적선 5척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하고 모두 깨뜨리고 불태웠으며 왜적은 대적도 못하고 배를 버리고 도망치고 말았다.



6월 17일(음 5월 8일)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적진포(통영시 적덕동)에서 왜선 13척을 발견하고 일시에 11척을 총통을 쏘아 깨뜨리고 불태웠다. 다음날 정오경 좌수영군은 취타와 군악을 요란하게 울리며 황포 돛을 높이 달고 승전가를 부르며 여수 앞바다에 돌아온다. 이 전투가 조선군의 첫 승전이며 좌수영군의 제1차 출동인 옥포해전이다.



-이순신, 옥포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다시 여수로-



전쟁은 지든 이기든 피해가 있기 마련이다. 해전에서는 전사자도 발생하고, 군기도 파손되고, 전함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좌수영군은 단 1명의 전사자도 없고, 단 한척의 전함의 손실도 없이 모두 무사히 돌아온 것이다. 적선 42척을 침몰시키고 수많은 왜적을 수장시킨 대 전투를 수행했음에도 단 1명의 전사자나 소선 1척도 잃지 않고 그야말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것이다.



가슴 졸이며 애타게 기다리던 영민들의 기쁨이 오죽했을까. 연등천에서 종포에 이르는 좌수영성 바닷가 백사장은 5천여 군사들과 그 가족들의 기쁨으로 가득 했을 것이다. 이 광경을 그윽이 내려다보던 종고산은 또 얼마나 대견해 했을까. 이튿날 이순신 장군은 지금까지의 전황을 임금께 보고하는 장계를 써서 올린다.



이 장계가 옥포파왜병장이며 임란발발 후 한 달 만에 한양을 함락당하고 의주로 몽진을 가던 임금이 받아본 최초의 승전보이다. 빗속에 의주로 몽진가다 길에서 이 장계를 받아본 선조임금과 대신들은 고마운 마음에 통곡을 하였다고 한다. 나라의 위기가 풍전등화와도 같은 때 한 가닥 희망을 안겨준 최초의 승전보를 접한 나라님과 대신들은 또 얼마나 기뻐했을까.



좌수영군의 1차 출동은 조선의 희망이 되어 나라의 모든 시선을 여수를 향하게 하였던 것이다. 당시 경상우수영은 30여개의 진을 거느리고 있어 병선 100여척에 수군 1만을 거느렸다 한다.

그런데 개전초기에 그 많은 전선과 군사를 모두 잃고 좌수영군이 도착했을 때는 판옥선 4척과 협선 2척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후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할 때 통제사를 맡은 원균은 단 한 번의 전투도 제대로 치루지 못하고 패전하여 경상우수영과 전라좌수영을 함락 당하고 제해권을 왜군에게 넘기고 만다.

그러나 백의종군에서 풀려난 이순신장군은 흩어진 좌수영군을 다시모아 군세를 일으키고 제해권을 되찾아 24전 전승의 기록을 세우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다. “만약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은 좌수영군과 흥국사 의승군과 호남의병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2008년 6월의 여수-

2006년도에 전라남도는 이충무공 관련 사업을 다음과 같이 선정하여 발표하고 현재 추진 중에 있다. 사업기간은 2006년부터 2011년까지이다.



1.전라우수영(해남)을 중심으로 한 사업(1.023억원)

-유적조사 및 복원계획, 명랑대첩행사

추진계획 등 748억원

-거북선 판옥선 등 8척 복원사업 170억원

-해남~진도 관광거북선 건조사업 40억원

-해남~진도 관광거북선 전용부두 건설사업 25억원

-명랑해전 기념관 건립 40억원

2.전라좌수영(여수)을 중심으로 한 사업(90억원)

-좌수영성 복원사업 61억원

-좌수영 성문, 성터, 정비 복원사업 29억원

-국내최대 높이(35M) 이순신장군 동상건립

(여수산단진입도로건설공사에 포함된 사업)

3.순천왜성 복원사업 175억원



-지금 경상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여수와 관련된 사업의 규모도 문제지만 예산자체가 해당사업을 시행할 수 없는 규모로 여수와 관련된 이순신사업자체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다음은 경상남도에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이순신 프로젝 를 살펴보자.



그 계획의치밀함과 실현가능성, 추진의지는 전남도와 여수시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 경남도는 2006년도에 임진왜란과 이순신장군 등에 대한 역사를 세계적인 문화콘텐츠로 승화시키기 위해 임란에 대한 역사 찾기 사업을 범 도민 운동으로 전개하여 수집된 자료는 사학과 교수 등 전문가로 구성된 고증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경남지역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역사로 집대성하여 후대의 역사사료로 활용하고 복원이나 활용이 가능한 사업은 2007 년부터 5개년 사업으로 책정하여 추진키로 하였다.



그 결과 3개 테마 26개 사업을 2007년부터 2011까지 5년간1.439억원을 투자하여 추진키로 하고 현재 상당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순신장군 리더십 국제센터 건립(97억 4천만원)

-임진왜란 뮤지컬제작 (55억원)

-임진왜란 사이버 체험관건립(15억원)

-한산대첩 병선마당(통영시 강구안 492억 5천만원)

-노량평화공원 조성사업(남해 고현 220억원)

-세계로봇함선 해전페스티벌(고성 당항포 12억 5천만원)

-한산대첩 420주년 세계축제개최(통영 남해안 50억원)

-거북선 판옥선 제작(170억원)

-진해 안골포~남해노량 해전 공원 조성(5억원)

-임란 수난사관 건립(사천 선진 28억 7천만원)

-칠천량 해전공원(거제 19억 1천만원)

-한산도 통제영 테마마을(통영 한산 20억 8천만원)

-백의 종군로 정비(진주~하동~합천~산청 42억 2천만원)

-정암 전적비 정비, 전투재현(의령 9억 3천만원)

-영남의병장 기념공원 조성(합천 가야 9억 9천만원)

-세계 이순신 축제(80억 5천만원)

-임란체험 대장정(1억 3천만원)

-홍의장군 의병창의 체험장(의령 유곡 14억 4천만원)

-사명대사 평양성 탈환 체험장(밀양 무안 11억 6천만원)

-해전 체험전시관((고성 당항포 65억원)

-진주대첩 재현(진주성 일원 5억원)

-세계 전통 의장축제(진해 군항제 기간 5억원)

-노량해전기념 노젓기 대회(남해~하동 3억 5천만원)

-문화 역사 해설사 양성

그리고 금년 6월부터 해군의 지원을 받아 거북선 발굴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금 여수는 무엇을 준비하나-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이나 해전에 있어서는 그 장소가 어디든 왜군과의 전투에서 한 번도 지지 않고 승전한 당사자는 항상 이순신장군과 좌수영수군이었다. 여수반도와 그 부속도서, 고흥, 순천, 광양은 이순신장군의 발길이 닳지 않는 곳이 없고 관련 사연이 없는 곳이 없다.



여수는 지역 그 자체가 이순신장군의 박물관이자 임진왜란의 역사관이다. 찾아서 푯말만 세워도 역사관광지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지금 여수의 현실은 어떠한가.2천억 가까운 예산을 들여 바닷가에 불 쓰고 도심 복판에 1500평짜리 이순신 마당사업이 전부이다.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부각하는 문화 사업은 없다.



살펴보기 민망하고 선조들께 죄스러울 뿐이다.

보물을 보물인줄 모르고 방치해둔 사이 기선을 모두 빼앗길 형편에 있다. 필자는 정말 안타까운 심정으로 2005년 12월 14일 시정 질문을 통해(당시 여수시의원)

-이충무공 정신 계승사업.



-전라좌수영 거북선, 판옥전선의 연구

및 복원사업.

-좌수영성 및 임란전적지 발굴 복원사업.

-거북선대축제 국제화 사업 등을 연구하고 추진하기 위해 좌수영거북선 문화사업 추진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예산이 없어 할 수 없다는 고민이라고는 눈곱 만큼도 없는 간단한 답변만 듣고 말았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전남도와 경남도가 이순신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것을 보고 그때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 한 것이 몹시 아쉬웠었다.

2006년 3월 위의 경남도 이순신 프로젝트를 접한 한 시민이 여수시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 있다.



"이러다 우리 여수가 따라지 신세 될것 뻔하지 않겠습니까. 여수시도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러다가... 소잃고 외양간 고친거나 다를바 없을지도 몰라요" 2년 전 위 시민의 염려는 현재 우리 모두의 고민이 되어 있다.



-2012년 6월 여수-

2012년 5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여수세계박람회가 개최된다.예상참관객수800만명이다.

2012년 6월 여수는 내외국인의 홍수를 맞게 된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라면 정작 여수의 역사상징인 거북선과 판옥선은 해남이나 통영에서 빌려와 엑스포장에 전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천, 김해공항을 이용하거나 무안공항을 이용하는 외국인에게 공항과 가까운 통영이나 해남에 우리지역의 역사상징을 빼앗기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특히 위의 세 공항을 이용하는 외국인 관광객은 중국과 일본인일 것이며 이들은 이순신장군에대한 관심도 다른 외국인들보다 더 많다.



이충무공과 관련이 있는 각 지방자치단체는 이충무공과 거북선을 주제로 하는 문화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규모와 내용도 방대할뿐더러 모두 실현가능하고 문화관광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대단하다.



이충무공과 거북선의 가장 큰 연고지인 우리 여수는 이제라도 이충무공과 거북선 문화 사업을 시책의 가장 으뜸사업으로 선정하여 추진해야 한다.



타지자체에 뒤지기라도 한다면 그 원성과 수모는 어찌 감당할 것인가. 1592년 6월 조선의 모든 시선이 여수에 모였듯이 2012년 6월에는 세계의 모든 시선이 여수를 향하게 된다. 이들에게 여수의 흥미 있는 역사와 아름다운 문화전통을 홍보하여 다시 찾고 싶은 도시가 되도록 해야 한다.

2008년 여수의 6월은 그래서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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