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교학과를 진학하고 싶은 꿈을 접어야 할까요?

어릴 때부터 제 꿈은 정치였습니다. 어른들이 꿈이 뭐냐고 물으시면 정치가 꿈이라고 한결같이 대답했으니까요. 막연하기는 했지만 정치를 하면 뭔가 멋지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마 그런 생각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물론 어릴 때 꿈은 자고 나면 바뀌는 경우가 많지요. 꿈이 뭐냐면 어제는 축구선수, 오늘은 소방관, 내일은 과학자, 또 그 다음날은 또 그 무엇이 꿈이라고 대답하는 친구들도 제 주위에 여럿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왜 그랬는지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 평범한 우리 가족. 아침 일찍 일 나가시는 아빠, 아빠 일을 도우시고 오후에 다시 일터로 나가시는 엄마, 그리고 언제나 우리를 반겨주는 토리가 우리 가족입니다. Ⓒ강봉명

“평범한 아저씨는 그렇게 곁을 떠나셨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도 평범하지만 제가 사는 동네는 더욱 평범하였습니다. 어른들을 만나면 누구 아버지인지, 누구 어머니인지 금방 알아차리고 인사를 드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동네에서 살던 저는, 어른들 중에 시의원을 제일 좋아하였습니다.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시의원이 되어서 주민들을 위해 뭔가 봉사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너무 좋았으니까요.

한 번은 지각해서 학교로 뛰어가다가 제가 책을 떨어뜨렸는데, 그분이 손수 주워주시며 학교에 늦겠다고 걱정까지 해 주시는 거였습니다. 멋있는 아저씨였는데 아, 이제는 좋기까지 하였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저는 그 아저씨 유세에도 가 보곤 하였습니다. 저를 만나면 뭉툭한 손으로 제 손까지 잡아 주시는 모습에 저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제가 중학생이 되고 얼마 안 돼서,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고, 급기야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 출마한 시장님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겁니다. 에이, 말도 안 돼!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고 결국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 우리 동네 시의원. 지난 1월 20일, 우리 동네 시의원을 따라다녔습니다. 저보다 조금 나이 많은 아들이 있는 ‘좋은 아저씨’였습니다. Ⓒ강봉명

“깨끗한 정치가 그렇게 어려운가요?”
그 상처는 오래 갔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도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접은 적은 없지만, 대학 진학을 앞두어서인지 주위 어른들이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가 꿈이라고? 그러면 그냥 꿈으로 끝내.”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이모부와 잘 아는 동네 시의원을 다짜고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동네가 지역구인 김양효 의원(여수시 시전, 만덕, 둔덕, 미평)이지요. 그분도 역시 따뜻했습니다. 하지만 왠지 그 따뜻함이 예전에 초등학교 때 느꼈던 그 따뜻함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라고 허락하셨지만 그분도 적이 난처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Q. 정치를 정말로 깨끗하게 할 수는 없는 건가요?
“깨끗하게 한다? 물론 할 수는 있지요. 하지만 말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소신이 있다면 그러지 않겠지만, 하지만 이 문제를 ‘개인 문제’로만 보는 것은 뭔가 허전해요. 물론 개인이 부패해서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깊이 들어가 보면, 혼자만 깨끗하게 지내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가 더욱 근본적인 문제이지 않나 싶어요. 공천권을 쥐고 계신 분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게 현실이거든요.”

▲ 우리 반 친구들. 일반계 고등학교 쉬는 시간 풍경입니다. 소년이 자라 어른이 되는데, 이들은 20년 후 어떤 풍경을 또 연출해 낼까요? Ⓒ강봉명

“악은 평범한 일상 속에 그렇게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저는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그래도 정치를 계속 꿈으로 품어도 되는지,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게,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이 얼마나 잔혹한 일을 한지 알고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당연히 알고 있다고 답했지요. 그랬더니 들려주신 이야기는 이러했습니다.

“나는 단지 나치 정권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600만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 죽게 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에서 공개 재판을 받으며 외친 게 바로 이 말이랍니다. 시킨 대로 했으니까 자기는 잘못이 없다는 겁니다. 사실, 아이히만은 머리에 뿔 달린 괴물이 아니라 길을 가다보면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독일인이었다는 겁니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적인 인격 장애자가 아니라, 국가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며 자신의 행동은 보통이라고 여기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겁니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으로 규정했다고 했습니다.

▲ 시의회 발언대에 서다. 그분들은 따뜻했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고등학생이라고 하니 대견하게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김양효

양심이나 도덕성이 없는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이 악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억압하는 정치·사회적 구조에 대한 무저항’이 바로 악이라는 말에 저는 몸을 떨었습니다. 무엇인가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겨도, 친구들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그렇게 눈감아 버린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정치를 한다면 언제든지 저도 ‘중학교 때 만난 그분’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구조에 있지만, 그 구조에 저항하지 못하는 개인 또한 문제적이라는 점을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정치외교학과를 진학할 것인가? 문제는 다시 ‘저’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겠습니다. 설사 그 대답을 쉬 얻을 수 없다 할지라도.

(기사 작성 : 여수고등학교 2학년 강봉명 기자)

▲ 강봉명. 사람들의 길라잡이가 되고 싶어, 오늘도 길을 찾다. Ⓒ박용성
취재 후기 : 제 나이 열아홉이니, 앞으로 칠십년을 더 살아야 한다고들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인데, 그 고민을 기사에 담았습니다. 아직 확실하게 길은 보이지 않지만, 제가 헤쳐 나가는 게 길이 될 수 있도록 애를 써볼 생각입니다.

두 달 동안 진로와 관련하여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봤고 이런저런 책을 찾아 해답을 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산다는 게 그렇게 만만치 않음을 사무치게 깨달았습니다.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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