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교사가 되면, 이런 꿈을 꿀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미당 서정주는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십대를 되돌아보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센터”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지역아동센터를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퇴소하였지만, 다시 센터 학생이 아닌 자원봉사자로 인연을 맺고 있으니, 이리 말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듯합니다.

초등학교 때 저는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센터로 와서, 친구들과 어울려 밥 먹고, 공부하고, 놀았습니다. 주말에는 가끔 영화도 보러 가고, 사물놀이도 배우고, 나로호 우주센터에 함께 가기도 하면서, 빛나는 추억을 만들었으니까요. 그곳에는 ‘엄마’도 있었고, ‘이모’도 있었고, ‘형’도 ‘누나’도 있었고, ‘동생’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곳에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왜 부족함이 없었겠습니까만, 저는 전혀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센터가 제게 준 선물이야 헤아리기 힘들지만, 가장 고마운 건 공부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거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이야 학원이다 과외다 다들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저야 센터가 있으니까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특히 그 어렵다는 수학을 개인과외처럼 지도받을 수 있는 센터는 제게 ‘공부하는 길’을 열어 준 고마운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공부 꽤 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 사랑스러운 우리 학교. 서울대학교에 두 명이나 합격했는데도, 그 흔한 현수막 하나 걸지 않은 학교가 우리 학교입니다. 그런 학교가 저는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이은성

“제 인생 최초의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와서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동아리활동이나 독서활동, 봉사활동 등 비교과활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야 대학 잘 간다니, 열심히 할 수밖에요. 그래서 찾아간 곳이 다시 센터입니다. 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글쎄요, ‘전교 1등’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어서 그랬는지, 모든 분들이 대환영이었습니다.

센터에서 제가 처음 한 일은 청소였습니다. 어제까지 센터 학생이었다가 ‘선생님’이 되어서 어색한 점도 많았지만, 저는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센터 곳곳을 정말 우리집처럼 깨끗하게 쓸고 닦았습니다. 학생일 때 하는 청소와 선생님일 때 하는 청소는 기분부터가 달랐습니다. 묘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제 인생 최초의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초등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보조 교사였기 때문에 주로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동생들과 함께 했지만, 제가 낯이 설지 않아서였겠지만, 저는 동생들에게 인기 강사였습니다. 동생들도 제 말을 정말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수학이었습니다. 수학은 이만저만한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가르치다 보면 속이 터졌고, 낯을 붉혔고, 소리를 질렀고, 급기야 동생들로부터 “형이 변했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 스토리텔링 수학. 수학이 재미있다고 하면 다들 이상하게 쳐다보는데, 아닙니다, 우리 동생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수학도 재미있다고 할 테니까요. Ⓒ이은성

“‘스토리텔링’에서 길을 찾았습니다.”
문제는 동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에게 있다는 것을 안 것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였습니다. 수학은 음미하며 배워야 하는데 무조건 외우고 계산하고 다그치는 수학만 하다 보니 수학이 재미있을 턱이 없었던 거였어요. 수학적인 사고력이란 스스로가 질문하고 스스로가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는데, 웬걸 저는 외울 것을 재빠르게 외우게 한 다음 문제풀이를 빨리빨리 하는 것만 강요하였습니다. ‘문제 푸는 기계’를 만들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혼자 그 생각을 깨쳤느냐고요? 물론 아닙니다. 2014년은 우리나라에서 세계수학자대회가 열렸고, 그러면서 수학교육의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신문에 보도되었고, 그러다가 학교에서 저는 수학반 동아리 친구들과 ‘스토리텔링’이라는 새로운 공부 방법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스토리텔링이란 ‘story’와 ‘telling’의 합성어로 재미나고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수학에 접근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동아리 지도 선생님의 도움이 매우 컸지요.

가르치는 방법을 바꾼 건 그 무렵입니다. 문제풀이에만 집중하여 100점 맞는 것을 목표로 삼던 제 생각을 우선 바꾸었습니다. 일반문제집에서 스토리텔링문제집으로 교재도 바꾸었습니다. 센터에서는 저를 믿고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생들이 저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니, 그 어렵던 수학에 동생들이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 가르치며 배우다. 한빈이와 현성이, 지태를 가르치며 저는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아갈 길도 찾았습니다. Ⓒ이현숙

“거기에는 ‘제가 살아갈 길’도 있었습니다.”
겨울을 지내며 저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센터에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여섯 명의 동생이 있는데, 그 중 세 명을 가르칠 기회가 제게 주어졌습니다. 나머지 세 명은 근로 장학생으로 오신 대학생 누나가 맡아서 평소처럼 일반 수학문제집으로 가르쳤는데, 저는 당돌하게도 스토리텔링 수학문제집으로 수업하겠다고 했습니다.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센터장님의 지원이 없었다면, 저의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중학교에 들어갈 동생들에게 저는 초등하교 5학년 수학부터 다시 하자고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수학이라고 하는 것도 초등학교 5학년 때 배운 내용에 약간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뿐이라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부터 심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귀찮더라도 동생들이 스스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진도를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학습을 시작한 후 한 달 간은 일반문제집으로 기존 방식으로 수업하던 동생들이 진도가 더 빨랐습니다. 겉으로는 아니다 아니다 했지만 속으로는 많이 움츠러들었습니다. 하지만 개념을 확실히 인지하고 하루에 다섯 문제씩 스스로 해결하는 수업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한 달이 조금 지나자 일반수학을 한 동생들과 스토리텔링 수학을 한 동생들이 조금씩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개념에 대한 이해도가 달랐습니다. 이야기로 개념에 접근하여서인지 수용하는 데 부담이 없었고 더 친근하게 느끼는 것만 같았습니다. 더 좋았던 것은, 질문이 적어지고 스스로 풀려고 최선을 다 한다는 것입니다. 걸핏하면 제게 물어오던 녀석들이 자기들끼리 머리 맞대고 이야기하다가 해결책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무엇보다도, 풀이과정이 다르지만 정답률이 높아졌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수학 공부를 하는 것 같다며 동생들이 좋아하는 모습에는 제가 더 즐거워졌습니다.

▲ 싫어요! 하지 마세요!. 우리 센터에서 지난 여름 특별한 선생님을 모시고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았습니다. “싫어요! 하지 마세요!”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은성

고3 진급을 앞두고 수학교사가 되겠다고 했더니 다들 저를 ‘철없는 아이’ 정도로 취급합니다. “교사가 천 원 벌 때 의사는 오천 원 번다”는 말도 그때 들었습니다. 지금 제 성적으로 의대는 충분히 갈 수 있다면서, 회심(回心)하기를 바라는 분도 계셨습니다. 제 집안 형편에서 제가 우뚝 일어나면 우리 엄마, 아빠 주름살도 크게 펴질 것이라면서요.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야채를 트럭에 싣고 식당에 배달하시는 아빠 모습을 보면, ‘그놈의 돈’ 좀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한번 여쭤 봤습니다. 그랬더니 아빠 엄마는 의외로 담담하셨습니다. 제가 행복하면 아빠도 행복하고 엄마도 행복하니, 제 생각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수포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학 포기자’를 줄인 말입니다. 그런데 이 수포자가 ‘공포자(공부 포기자)’가 되고 급기야 자기 인생을,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젊은이가 자기 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주변에 허다합니다. 제가 수학교사가 되어 꾸고 싶은 꿈은 수포자 없는 학교를 만드는 꿈입니다. 물론 공부 방법 좀 바꾼다고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생각은 않습니다. 터무니없이 많은 ‘교과서 내용’부터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수학 교사가 되어서, 제 가슴에 품고 있는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은데, 제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가요?

▲ 이은성. 친구들은 저를 ‘송아지’라 부르는데, 언제쯤 ‘소’라고 불러줄까요. Ⓒ박용성

(기사 작성 : 여수고등학교 2학년 이은성 기자)

취재 후기 : “주여, 저로 하여금 어린이에게 군림하는 폭군이 되지 않게 하시고, 자라나는 생명을 돌보아주는 어진 원정(園丁)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제가 좋아하는 ‘교사의 기도’라는 글의 일부입니다. 취재하면서 내내 가슴에 담았던 구절입니다.

첨부 : 선생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습니다. 학교 선생님들,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좋은 선생님이 되어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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