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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경 수필]가는 사람 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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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20  09: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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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옛날부터 흔히 들어온 말이다. 그러나 이는 말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의 집 청소나 빨래 등 허드렛일을 해주고 삯을 받는 일은 남모르게 숨어서 하던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수입도 좋을뿐더러 가정주부들의 남부끄럽지 않은 고정 아르바이트에 속하는 일이 되어 자녀들 학비 충당에도 상당한 몫을 차지하는 일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자리를 찾는 주부가 많아져서 요즘은 이런 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우리 내외도 나이가 고비를 넘고 보니 단 둘의 살림인데도 옛날처럼 몸이 자유롭지 않아 간신이 밥해 먹는 일에서 끝날 뿐, 집안 청소나 빨래는 세탁기에 넣어 전력으로 돌리는 일임에도 이제는 그것마저도 버겁다. 서울 살다가 우리 내외만 훌쩍 떠나 여기 남쪽 갯가로 내려와 살다 보니 딸, 며느리들은 멀리서 보고만 있을 뿐, 도울 방도가 없어 속을 앓고 있다.

그런데 지난 해 설날에 다니러 왔던 큰딸이 허리 굽은 노모의 힘겨워하는 양을 보고는 당장 직업소개소에 전화하여 민첩하고 젊은 가사도우미를 매주 한 번씩 와서 돕게 해주어서 이제는 힘 드는 일 없이 편하게 지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안 청소며 빨래 등은 심심풀이 정도의 가벼운 일이었지만, 나이에는 이길 재주가 없어 이제는 부득이 남의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나보다 나이가 셋이나 위인 작은처남은 성품은 온순하고 착하면서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꼿꼿한 성격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버릇 때문에 큰처남의 호된 꾸지람을 번번이 듣기도 하였는데, 술과 마작을 좋아하여 밤을 새우기를 예사로 했던 사람이다. 잦은 음주나 밤을 새우는 마작으로 피로가 쌓여 그런 병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간암에 걸려 수시로 병원 신세를 지다가 끝내는 온몸에 암 세포가 퍼져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면서 몰골이 형편없이 망가져 재차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끝이 났다.

입원하는 날 오후 나도 병원에 갔었는데, 입원실 맞은편에 또 한 사람의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환자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처남 가족과 친척은 이번이 마지막 입원임을 짐작했는지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지만, 저쪽은 간호하는 가족도 보이지 않고 조용했다. 입원실의 실내 분위기가 다소 안정이 되자 침대에 앉아 있던 환자가 작은처남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혹시 작년 겨울 하나병원 503호실에 함께 입원했던 분이 아니신가요?” 하며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예, 이제 보니 그러네요.” 하고 대답을 하는 작은처남도 이미 그분이 구면임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기차역 대합실이나 혹은 식당도 아닌 병원 입원실에서 환자의 몸으로 두 번씩이나 만나게 되는 해후(邂逅)의 운명도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서로가 반갑다는 표정이기보다 불길하다는, 씁쓸한 뒷맛으로 하룻밤을 지낸 다음날 오후 간호사들이 건너편 환자의 짐을 싸서 옮기고 있었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같은 입원실에서의 만남은 불길하다는 건너편 환자의 말이었으리라. 그분의 말도 맞는 말이다. 작은처남은 입원한 지 1주일 만에 그 병원 503호 입원실에서 숨을 거두었다.

도우미아줌마가 와서 집안 청소와 빨래를 하는 날엔 할 일이 있으나 없으나 자리를 피해 줘야 하기 때문에 나는 부득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런 날이 아니라도 나는 매일처럼 가는, 지정 운동코스인 종포 해양공원으로 행한다. 거기서 서너 시간을 노닥거리다 집으로 돌아와 보면, 아파트의 거실과 방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 젊은 도우미아줌마의 말이라며 집사람이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 도우미아줌마의 어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시고 삼남매가 교대로 부친을 모시고 살다가 8순이 넘으니 집에서 모시기가 힘이 들어 삼남매가 매월 생활비를 분담해 보내기로 하고 광주에 사는 큰오빠 집에서 가까운 양로원으로 옮겨 일단은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됐는데, 큰오빠의 직장을 갑자기 경남지방으로 옮겨가게 되는 바람에 부득이 막내딸인 자기가 사는 여수 양로원으로 옮기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도우미아줌마의 아버지는 한두 달이 지나자 광주 양로원 시절을 그리워하며 다시 그쪽으로 돌아갈 수 없느냐는 하소연이었다는 것이다. “막내딸 가까이에 사는 것이 안 좋으세요. 아버지는 왜 자꾸 그러세요?”하고 막내딸이 역정을 내자 하루는 딸에게 솔직히 고백을 하더라는 것이다.

“내가 광주 양로원에 있을 때 사귀던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 할머니가 꿈에까지 나타나서 보고 싶으니 어쩌면 좋겠냐?”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길함으로 입원실을 다른 방으로 옮겨가는 신경쇠약증 환자가 있는가 하면, 양로원에서 정이 든 어느 할머니를 못 잊어 그 양로원으로 다시 보내 달라고 막내딸에게 애원을 하는, ‘로맨스그레이’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그 젊은 도우미아줌마는 자꾸만 쓴웃음을 웃고 있더라는 것이다. 사랑과 죽음은 우리를 보다 순수하고 진실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토록 남부끄럽고 몰염치하게 만들고 있으니 급변하는 시대에 따른 각박한 세상인심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도 인생이 허탈했다.

이 세상에는 눈앞에 보이는 죽음이 두려워 다른 입원실로 자리를 옮겨가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늘그막의 사랑을 못 잊어 자녀들의 고단한 생활도 외면하고 먼 길을 찾아 애인 할머니가 있는 광주양로원으로 다시 보내 달라고 하는 백발 할아버지도 있으니 가는 사람, 오는 사람도 가지가지인 우리 인생이 참으로 즐거우면서도 서글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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