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외벽 대형 현수막…옥외광고물법 위반
시 “신고 사항…여러 차례 자진 철거 요청”
​​​​​​​행정 무력화…공공질서 유지 ‘적극 행정’ 필요

▲ 도심 건물 외벽에 걸린 정치인들 현수막. /마재일 기자
▲ 도심 건물 외벽에 걸린 정치인들 현수막. /마재일 기자

도심 중심부의 대형건물 외벽에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가 유력한 여수시장 후보자들의 현수막이 불법으로 설치돼 논란이다. 행정기관의 여러 차례 자진 정비 요청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불법 광고물로 단속되던 방식이 정당에만 허용되면서 무분별한 난립으로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도심에 대형 현수막까지 여기저기 등장하면서 시민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누구보다 솔선수범해 법을 지켜야 할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위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2일 확인 결과 여수시 웅천 메가박스 영화관 건물 외벽에는 이광일 전남도의회 부의장의 얼굴의 새겨진 대형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학동 세제백화점 건물과 둔덕동 11호광장교차로 인근 건물에도 각각 전남도의회 주종섭 의원과 백인숙 여수시의회 의장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이들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여수시장 후보로 출마를 준비 중이다.

▲ 12일 여수시 웅천 메가박스 영화관 건물 외벽에 걸린 이광일 전남도의회 부의장 현수막. /마재일 기자
▲ 12일 여수시 웅천 메가박스 영화관 건물 외벽에 걸린 이광일 전남도의회 부의장 현수막. /마재일 기자

문제는 이들 현수막이 모두 여수시에 신고하지 않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입간판, 현수막, 벽보, 전단 등의 광고물을 설치하려면 크기 등에 따라 행정기관에 신고하거나 허가받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철거는 물론, 크기에 따라 1장당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나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 고발 조치도 가능하다. 

공직선거법은 정치인 후원회 사무소가 있는 건물에는 규격 제한 없는 현수막을 언제든 걸 수 있지만 옥외광고물법에서는 현수막은 지자체 신고 대상이다. 여수시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현재 설치된 건물 외벽 대형 현수막은 시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원들은 여수시의 여러 차례 자진 정비 요청에도 철거하지 않고 있다. 시는 의원들에게 1차로 9월 11일~24일까지, 2차로 10월 15일~30일까지 자진 철거하라고 계고장을 발송했다. 그래도 정비하지 않자 시는 최근 시민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는 내용으로 자진 정비 요청 공문을 추가로 보냈다. 시 관계자는 “민원이 많이 들어와 명절 전후로 자진 철거해달라고 안내 공문도 발송하고 연락도 드렸는데 아직 정비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자진 철거 불응에 따른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행정대집행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 자발적으로 철거하면 민원 해소도 되고 위험 요소도 없어진다”며 자진 정비를 촉구했다. 

▲ 12일 학동 세제백화점 건물 외벽에 걸린 전남도의회 주종섭 의원 현수막. /마재일 기자
▲ 12일 학동 세제백화점 건물 외벽에 걸린 전남도의회 주종섭 의원 현수막. /마재일 기자

불법 대형 현수막이 도심 경관을 해칠뿐더러 자칫 시민 안전사고도 우려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온다. 40대 시민 조모 씨는 “현수막 규모가 크고 후보자의 얼굴이 새겨져 있어 주변과 어울리지 않고 너무 눈에 띄는 것 같다”며 “한눈에 보여 정치인들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운전할 때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50대 시민은 “정치인들이 자기 이름 알리려 걸어놓은 현수막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며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법을 어기면서 시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겨울철이 다가오는 만큼 화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광고물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수막은 불이 나면 불길을 더 크게 번지게 할 수 있다. 국내 대형 화재 사례를 보면 불길이 외벽을 타고 번진 경우도 많아 외벽 부착물이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12일 둔덕 11호광장교차로 인근 건물에 걸린 백인숙 여수시의회 의장 현수막. /마재일 기자
▲ 12일 둔덕 11호광장교차로 인근 건물에 걸린 백인숙 여수시의회 의장 현수막. /마재일 기자

‘정치인 현수막 난립’ 근절되지 않는 이유

정당·정치인 현수막이 도심 곳곳에 난립하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큰 상황이다. 현수막 줄에 넘어지거나 시야 방해로 인한 교통사고 위험, 도시 미관 훼손은 물론 현수막 처리도 환경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바람으로 노끈이 풀어지면서 현수막에 설치된 각목이 머리를 치거나 줄에 걸려 넘어지는 사례가 발생한다. 시민들을 괴롭히고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현행법상 정당은 정치 활동의 하나로 일정 요건을 갖추면 현수막 게시가 가능하다. 정당 활동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요즘 유익한 정책 홍보나 공익적 메시지보다는 경쟁 정당과 특정 세력을 향한 비방성 문구가 담긴 경우가 많아 제도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을 개정해 정당 현수막의 개수를 ‘읍·면·동별 2개 이내’로 제한하고, 어린이 보호구역 등 특정 장소 설치를 금지하며 설치 높이를 규정하는 등 최소한의 규제를 마련했다. 현수막 철거도 정당이 직접 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대부분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현장 단속 공백을 틈타 현수막을 장기간 게시하거나, 철거를 미루는 사례도 있다. 기자가 실제 확인해 보니 일부 정당 현수막은 게시 기간이 지났는데도 걸려 있었다. 결국 현장에서 현수막을 철거하는 업무는 여수시 공무원들이 하게 되면서 행정력 낭비로 이어진다.

▲ 지난 10월 추석 명절 때 도심에 걸린 정치인 인사 현수막. /마재일 기자
▲ 지난 10월 추석 명절 때 도심에 걸린 정치인 인사 현수막. /마재일 기자

단속과 처벌도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수시는 정치인들이 명절 등에 내건 현수막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대신 계도를 통해 자진 철거를 유도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여수시의 자진 정비 요청을 모르쇠로 일관하기 일쑤다. 불법 현수막을 설치한 개인이나 업체, 단체 등은 여수시가 자진 철거를 요청하면 대부분 즉시 수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 관계자는 “옥외광고물법은 과태료 부과 목적보다는 도시미관 저해, 안전 예방 등을 위한 자진 정비 유도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수막 등 광고물 관련 규정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계도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공직선거법과 옥외광고물법 적용은 다른 만큼 후보자들이 사전에 규정을 점검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행정기관의 여러 차례의 자진 정비 요청에도 막무가내로 버티는 정치인들의 막무가내 버티기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법과 조례는 사회적 합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데, 정치인들이 무력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백번 양보해  사전에 불법인지 몰랐다면 계고장을 통해 불법임을 인지하고서도 후속 조치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여수시의 자진 철거 요청(명령)은 공공의 질서를 위한 정당한 조치이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 도시 공간을 어지럽히고 시민 일상을 침해하거나 법을 위반하는 형태로 변질할 때, 행정은 이를 바로잡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예외가 특혜로 변질하는 만큼 여수시의 적극적인 행정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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