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의회, 국회 개정법률안 철회 촉구 건의안 추진 표결 끝에 부결
연 매출 30억 원 이상 사업장만 가맹점 등록 허용 ‘하나로마트 제외’
농·어촌 주민 불편 가중…농·어촌 한해 지역상품권 ‘하나로’ 이용 허용
“농·어촌 주민과 골목상권 충돌 ‘양면성’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신중
“식품 사막 해결 대안·소상공인 보호 장치 등 부족” 법률 개정 불필요
남면·화정면 ‘하나로’ 상품권 이용 가능한데 아직…시 “농협이 신청해야”
여수시의회 전체 의원이 찬성해 채택하려던 건의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되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졌다.
해당 건의안을 발의한 의원들이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안건을 상정했다는 지적과 함께 건의안에 서명하고도 부결시킨 것은 서명을 스스로 부정한 꼴이라는 망신을 사고 있다. 동료의원이 요청하면 의안 내용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발의 의안에 서명해주는 이른바 ‘품앗이 발의’의 전형적인 형태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법률 개정 여부와는 상관없이 식품 사막화를 겪는 여수 농어촌 지역 주민들의 불편을 일정 부분 해소할 방안이 있는데도 이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수시의회는 18일 오전 제252회 정례회 2차 본회의 열고 민덕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철회 촉구 건의안’을 상정해 심의했다. 건의안 발의에는 이찬기, 최정필, 김철민, 김채경 등 4명의 의원이 참여했으며, 나머지 21명의 의원도 찬성했다.
해당 안건은 국회에서 심의가 진행 중인 개정법률안 철회를 요구하는 건의안이다.
신정훈(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 의원이 대표 발의한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농협 하나로마트의 지역사랑상품권 사용 제한에 따른 농·어촌 주민들의 불편이 계속되자 하나로마트를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으로 등록할 수 있게 하는 안이다.
신정훈 의원은 “농·어촌 지역의 경우 지역사랑상품권의 사용처가 많지 않아 지역 주민들이 상품권을 활용해 식료품이나 생필품 또는 농업 및 어업 활동에 필요한 자재를 구매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농·어촌 지역 주민들의 상품권 사용처 확대 요구가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문제가 되는 농·어촌지역의 식품 사막 현상을 해소하자는 의미도 포함된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소상공인 지원과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를 높이기 위해 연 매출액 30억 원 이하인 사업장에만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 등록을 허용하도록 지침을 개정했다.
문제는 지역 농협이 운영하는 하나로마트가 가맹점 등록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농·어촌 주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여기에 농수산물을 생산해 하나로마트에 판매하는 소농과 영세농들이 판로를 잃거나 일부 민간 대형마트들이 편법 운영으로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으로 등록한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이다. 이 법률안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그런데 여수시의회는 이 같은 법률 개정이 골목상권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건의한 설명에 나선 민덕희 의원은 “농촌지역의 식품 사막 해소를 명분으로 하나로마트 가맹점을 지역사랑상품권 가맹 범위에 포함하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단순한 제도 개선 수준을 넘어 전국 골목상권의 생존 기반을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어 “여수시의회는 이번 개정안이 지역사랑상품권의 도입 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에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으며 지역경제의 기반 붕괴를 가져올 우려가 있으므로 개정안의 철회를 촉구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정훈 의원은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에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개정법률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또 “국회와 정부는 경기침체와 소비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국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을 실질적으로 회생시킬 수 있는 제도적 대책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날 심의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문제와 우려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김행기 의원은 “개정법률안을 충분히 살폈느냐”며 “개정법률안 취지를 보면 농어촌 주민들이 지역 상품권을 사용하지 못해 많은 불편을 야기하고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한 법률 개정”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농어촌 주민들이 지역사랑상품권을 사용 못하는 불이익과 불편을 해소하자는 건데 법률안을 철회하면 골목상권은 보호되는데 농어촌 주민들의 이익은 보호되지 않는 양면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것들을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건의안)은 어떻게 의견 수렴했는지”를 물었다.
김 의원은 또 “국회의원이 발의했을 때는 농어촌 주민들 불편을 충분히 들어서 발의했을 것이다. 농어촌 주민들을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 소상공인도 중요하지만, 대안을 연구하기 전까지 철회하라는 것은 성급하다”며 신중한 판단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민 의원은 “의견수렴까지 한 것은 아니지만, 여론이나 주변에 파악해보니 법안이 발의됐을 때 양쪽이 상충하지 않게 올라와야 하는데 서로 상충하는 상황이 발생하니 철회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민 의원은 이어 “법률안이 전체에 골고루 적용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식품 사막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과 소상공인을 보호할 장치도 부족하다. 굳이 법률안을 개정하지 않고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김 의원은 “농어촌 주민 불편을 해소하는 것인데 그것도 못 하게 한다면 농어촌 주민들의 상품권 사용은 대단히 제한돼 불편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농어촌에 소재한 하나로마트에 한해서 이 법률안을 제안한 것이다. 양쪽 다 생각한 것이다”고 맞받았다.
안건에 찬성한 문갑태 의원은 “(건의안)을 제대로 안 보고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 때문에 동의했는데, 지역구인 화정면 주민들은 사고 싶어도 상품권을 사용할 수가 없다. 섬 지역에 있는 하나로마트만큼은 사용하게 풀어달라는 민원을 받았다”며 내용을 더 보완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민 의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민 의원은 “개정안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전국에 적용하면 지자체마다 형편이 다른데 벌레 잡다가 초가삼간 태울 수 있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개정안 자체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지역 단위 특례 조항이나 지자체에서 판단할 수 있는 신고제 등을 고민했어야 맞다”고 말했다.
강재헌 의원은 “정말 필요한 사람들과 지역이 있는데 이것을 전국으로 확대해 적용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골목상권하고 같은 여건으로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안만 가지고 거론해도 충분히 알 것인데 신정훈 의원이 발의했다고 해서 이름을 거론해 넣을 필요가 있냐”며 검토를 주문했다. 이에 민 의원은 “전혀 그런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이어진 논의 끝에 해당 안건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한 결과 재석 의원 25명 중 찬성 11명, 반대 13명, 기권 1명으로 부결됐다.
일부 지자체, 면 지역 하나로마트 사용처 지정
광양, 남원, 하동, 홍천 등 일부 지자체는 농협 하나로마트를 지역사랑상품권 사용처로 추가 등록해 면 지역 주민들의 상품권 사용 불편을 해소하고 있다.
지난 9월 행안부가 접근성, 판매 품목, 규모 요건을 충족하는 하나로마트에 대해 가맹점으로 등록할 수 있게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 지정 요건이 완화됐기 때문이다.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 인근에 마트, 슈퍼, 편의점이 인근에 없거나 유사 가맹점이 있더라도 접근성이 낮고 종합 소매업으로 보기 어려운 면 단위 지역의 농협 하나로마트에 한해서는 가맹점 등록이 가능하다. 다만 해당 농협이 하나로마트만 별도로 사업자를 분리해 가맹점을 신청해야 한다.
여수지역에서는 남면 금오도와 연도, 화정면 낭도, 개도, 백야도 등 5곳의 하나로마트가 해당한다. 그런데 농협 측에서 관련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 이들 지역에서는 지역사랑상품권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여수시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지역 농협에 관련 내용을 안내했다”고 말했다.
여수도 식품 사막 지역
이날 안건 심의 과정에서 거론된 ‘식품 사막’은 1990년대 초 스코틀랜드 서부에서 도입된 용어로, 우유, 두부, 생선 등 신선하고 건강한 식품을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자유롭게 구매하기 어려운 지역의 현상을 말한다. 국내 농어촌, 섬 지역은 식료품은 물론 생필품 사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나라살림연구소(최승우 책임연구원)가 지난해 10월 10일 발표한 ‘국내 식품 사막 심각하게 진행’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보건부는 식품 사막을 ‘건강한 식품을 구매하기 어려운 지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빈곤층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 비율이 높은 지역이 자주 포함된다. 식품 사막은 ‘신선 식품 공급 시스템의 붕괴’와 ‘사회적 약자의 집중’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겹쳐서 발생하는 사회 문제로 진단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국내 새벽 배송을 제공하는 쿠팡, SSG(이마트), 컬리, 오아시스 등 4개 업체의 서비스 가능 지역을 전수 분석한 결과 전국 250개 지자체 중 123곳(49.2%)은 새벽 배송이 가능한 업체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통계청의 농림어업 총조사 결과 2020년 기준 전국 3만 7,563개의 행정리 가운데 음식료품 소매점이 없는 곳이 2만 7,609개로 전체의 73.5%를 차지했다. 대중교통이 없는 마을도 2,224개(5.9%)에 이른다.
식품 사막화 지도를 보면 순천과 고흥 80% 이상, 광양 70% 이상~80% 미만, 여수는 50% 이상~70% 미만 구간에 속한다.
전남 영광, 경기 포천 등 일부 지자체는 지역 농협·민간단체 등과 협력해 이동식 장터를 운영해 주민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충남도의회는 교수, 유통업계 관계자, 공무원 등이 참여한 ‘농어촌 쇼핑 약자를 위한 이동형 슈퍼마켓 정책 연구 모임’을 운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