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만발한 계절입니다. 이 계절에 아이가 즐겨 쓰는 말로 글을 시작하면서 철없는 얘기 좀 하겠습니다.

공무원에게 상당한 뇌물을 줬다는 친구의 하소연을 들었습니다. 오픈시키자는 제안에 자신을 죽이라고 오히려 대듭니다.
자신의 딸이 교사가 신고 있는 슬리퍼로 뺨을 맞고 울면서 집으로 왔다는 학부모의 하소연도 들었습니다.
아이를 원산폭격(?) 시켜놓고, 아이 머리를 구두발로 차서 아이 머리가 깨져서 집에 돌아왔다는 학부모의 울부짖음도 들었습니다.
시에서 지원하는 지원금을 끼리끼리 잘도 나눠먹는다는 이해집단의 얘기도 들었습니다. 공직자들의 비리가 도를 넘어섰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피해자들이 공론화 시키지 말아달라고 오히려 통사정을 합니다. 피해자들은 아파서 울고 있는데 가해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떵떵거리며 삽니다. 상식이 몰상식에 멱살을 잡히며 사는 세상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세워야 할 정의란 서민대중과 약자, 차별받는 이들의 이익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저에게 희망적인 얘기만 하라고 합니다. 나쁜 얘기하지 말고, 좋은 얘기만 하라 합니다.
착한 노래가 착한 세상을 만든다고 이왕이면 착한 노래를 부르라고 얘기합니다. 낭비성 사업에 시민들의 혈세 수백억원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을 보면서 착한 노래를 부르려고 하니 목이 멥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이들의 저녁꺼리를 위해 뛰어다니는 공부방의 선생님들을 보면서 착한 노래를 부르려다가도 악이 되어 나옵니다. 그래서 신문이 거칩니다.
이것을 보다 못한 어느 독자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그렇게 비판해도 세상 안 바뀌니 헛발질 그만하라는 내용입니다. 보기에 딱하고 안스럽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칠 수 없는 것은 우리사회의 자정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검은 것을 검다고 얘기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이 비록 지금은 헛발질에 그칠지라도 우리 사회의 자정능력을 믿기에 멈출 수는 없습니다.

신문이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춥고 배고픈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앞에 누군가 개 사료를 던져주면서 “먹을래?”하며 유혹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영양가 있고, 기름기 있는 개 사료가 던져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배가 고파도 이를 먹지 못합니다. 주인이 먹지 말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은 다름 아닌 시민이고, 독자입니다.
그 주인님들 덕분에 우리 신문이 곧 1만부를 돌파하게 될 것 같습니다. 조만간 1만부를 돌파하게 되면 매 주마다 신문 발행부수를 시민들에게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신문은 광고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독자들이 광고를 해주겠다고 찾아와 줍니다. 참 이상한 신문도 다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고마워 최선을 다해 신문을 만듭니다. 또 최선을 다해 발행부수를 늘립니다. 그것이 매월 구독료를 내 주시는 독자에게 보답하는 길이고, 일부러 찾아와 광고를 맡겨주시는 분들에 대한 보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문은 지금 여수의 정치와 교육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1조원이 넘는 여수시 예산만 제대로 쓰여져도 팍팍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훨씬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지역에 교육만 제대로 서면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도시가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신문이라고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 몇 개만 잘해도 지역에서 제 밥값은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부터 아프기는 하지만 부정이 있으면 직설적으로 얘기하겠습니다. 도매급으로 넘어가는 모두를 위해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이보다 더 나빠질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지혜와 용기로 난관을 극복해 온 우리들입니다. 서민들은 무엇 하나라도 거저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잘만 해주기를 숨죽인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땀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 웃음꽃이 번져나는 사회를 위한 '순리(順理)의 세상'을 소리 없이 바랄 뿐입니다.

이러한 서민들에게 착한 노래를 불러줄 사람은 누구입니까?
저작권자 © 뉴스탑전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