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탑전남은 여순사건 관련 그림과 시 등 문화, 예술 작품들을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한 '여순갤러리'를 운영합니다.
8일 오전 6시 40분 여수시 소호동 차도에 방치된 전동킥보드가 차량 통행에 불편을 주는 한편 교통사고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인도와 자전거도로 등에 마구잡이로 방치돼 있는 공유 전동킥보드(개인형 이동장치)로 인해 시민 보행 불편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김경완여수에서 태어나 여수의 곳곳을 카메라에 담고자 하는 초보 진사.
설 연휴 셋째 날인 13일 여수 경도 앞바다에 고니가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전국 최대 진달래 군락지인 여수 영취산 일원에서 ‘여수영취산진달래체험’ 행사가 열렸다. 영취산은 매년 4월초가 되면 진달래가 불타오른 듯 만개한다. 산 전체가 연분홍으로 물들고 아물아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함께 봄의 정취가 무르익는다.영취산은 전국 최대 규모의 진달래 군락지로 ‘나라가 흥(興)하면 절도 흥하고 이 절이 흥하면 나라도 흥할 것이다’는 전설이 서린 흥국사가 있다. 또한 정상근처인 봉우재에서 20분쯤 올라가면 기도도량으로 잘 알려진 도솔암도 위치해 있다.영취산 진달래 군락지로 가는 산행코스는 3개
공사가 진행 중인 여수시 웅천동 웅천택지개발지구 내 웅천공원. 여수시는 높이 31m에 바닥면적 2만3064㎡, 상부 면적 1861㎡에 달하는 거대한 바위산의 위험 구간 상부 6m를 절개해 경사면을 완화하고 상부에 공원을 조성하는 공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 2004년 4월부터 시작된 웅천지구 택지개발사업은 6225억원(사업비 3405, 보상비 2680, 기타 500)이 투입되며, 올 12월 준공할 예정이다. 현재 공정률은 지난 1월 기준 95%이다.
여수시 돌산읍 금봉리에는 항대·금천·송시·속전·봉양마을이 있다. 디지털여수문화대전에 따르면 금봉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금천(金川)마을은 모래가 많은 해변이어서 모래 틈, 만(灣)으로 이루어져 곱은 개로 부르던 지역이다. 마을 이름은 처음 이씨(李氏)가 터를 잡아서 이기동(李基洞) 또는 이가동(李家洞)으로 불렸다. 금천이란 이름은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이 있던 1914년에 지어진 이름으로 마을 뒷산인 노우산(老牛山)에서 흘러내리는 개천을 우천(牛川)이라 하다가, 우천에서 사금이 채취되었기 때문에 금천(金川)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늘에서 본 여수시 화태리 월전마을.
디지털여수문화대전에 따르면 송도, 대륵도, 중륵도, 소륵도는 여수시 율촌면 여동리(옛 송장리)에 있는 섬들이다. 송장리는 오랫동안 광양 땅이었으며, 1896년 돌산군으로 속했으나 1914년 돌산군이 폐지되면서 광양 땅으로 원상 복귀됐다.1973년 광양군 골약면에서 여천군 율촌면에 이관됐으며, 1987년 여동리로 바뀌었다.송도에는 72세대 180명, 대륵도에는 20세대 72명, 소륵도에는 12세대 47명이 거주하고 있다. 중륵도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무인도다.섬의 지형이 늑대를 닮았다고 해서 대륵도로 불리고 있다. 주민은 대부분 농
여수마라톤대회가 10일 세계박람회장에서 전국 마라톤 동호인과 시민 등 4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번 마라톤대회는 풀코스, 하프코스, 10km, 5km 4개 종목으로 나눠 진행됐다.
1979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국동항은 80년대 말까지 180여척에 달하는 여수 안강망 어선들이 정박하면서 남해안 수산전진기지로서 역할을 했다.
지난 22일 정식 개통한 여수시 돌산 신기와 화태도를 잇는 화태대교. 화태대교는 2004년 10월에 착공해 11년 만에 준공 됐다. 이 대교는 사업비 총 1575억원이 투입됐으며 총길이 3.82㎞(교량 1.34㎞, 접속도로 2.48㎞, 주탑높이 130m)의 사장교로 건설됐다.화태대교가 개통되면서 346가구 722명이 살고 있는 화태도는 배를 타지 않고도 육지로 갈 수 있는 섬이 됐다.
명칭유래 처음에 오만이마을·중천마을·모사금마을이 있다가 1940년경 중천마을이 수원지를 만들면서 폐쇄됐고, 1948년경 오만이마을이 반란자들의 거주지라 폐쇄돼 모사금마을만 남게 됐다. 1949년 여수시 승격과 더불어 ‘오만이’와 ‘중천’의 첫 글자를 따서 ‘오천동’이 됐다.형성 및 변천1949년 오천리를 오천동으로 개칭했으며, 1967년 법정동인 오천동으로 확정했다. 1997년 만흥동과 함께 만오동으로 통합했고, 1998년 만흥동·덕충동과 함께 다시 만덕동으로 통합했다.오천동은 여수시의 북동쪽 해안에 있는 법정동으로, 북으로 상암동
자산공원은 여수시 종화동과 수정동에 걸쳐 있는 자산에 건립된 공원으로 오동도가 바라보이는 자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어 여수항과 여수의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대형 팔각정과 함께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으며, 충무공 이순신의 동상과 자산공원 현충탑이 있으며 여수해상교통관제센터 전망대에서는 여수항의 전경을 관람할 수 있다. 새해 첫날에는 일출을 보고자 전국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오동도는 멀리서 보면 지형의 생김새가 오동잎처럼 보이고 옛날에는 오동나무가 빽빽이 있어 오동도라 불리었다. 한 때
하늘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여수항’ 전경입니다.
하늘에서 바라본 여수시청(본청) 전경입니다.
무술목·무실목 등으로 불린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섬멸한 해(1598)가 무술년(戊戌年)이어서 전적을 기리고자 무술목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왜군의 피로 붉게 물든 냇물이 피내로 되었다고 하며, 피내는 ‘무서운 목’이라는 뜻의 무술목이라고도 한다.1958년 2월에 세워진 충무공전적비가 있으며, 600~700m의 몽돌밭으로 이루어진 해안선의 경관이 뛰어나 여름에는 해수욕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북쪽 바다는 고니 등 겨울철새의 도래지다. 무술목은 임진왜란 때 왜적이 침범해 오자 무슬목 양쪽에 군사 300여 명을 매복시켜
만성리 검은모래 해변은 모래찜질이 유명하다. 신경통과 각종 부인병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오래전부터 음력 4월 20일은 ‘검은 모래 눈 뜨는 날’이라는 민간풍습이 있어 이날이 되면 전국에서 모래찜질을 하러 사람들이 모여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