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도시 ① 주민과 시민의 일상이 편안한 도시

민선6기 주철현 여수시장은 올해 시정의 화두를 ‘변화와 희망’으로 정했다. 주 시장은 신년사를 통해 “‘국제 해양관광의 중심, 여수’ 실현을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과감한 변화와 도전이 필요하다”며 “3차 년도를 맞아 올해는 도시비전을 구체화하고 시민들이 변화를 실감할 수 있도록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는 데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주 시장은 지난해 여수를 찾은 관광객이 1300만명을 기록했다며 올해에는 관광시장의 양적확대에 만족하지 않고 질적으로 향상되는 관광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다. 특히 관광대박의 효과가 실제 시민 소득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관광객이 많이 온다고 무작정 좋아할 일만도 아니다. 그 열매가 일부에게 집중되고 있고, 주객이 전도돼 현지 주민과 시민의 불편은 갈수록 높아지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관광시설이 들어서고 관광객이 몰리지만 정작 원도심 공동화는 심화되고 있고, 원주민들의 정주 여건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여수시는 죽림과 소제 지구를 택지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으면서 예산의 적절성뿐만 아니라 도시 균형 발전 측면에서 과연 적정한 행정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도시의 모든 행정은 도시계획에서 출발한다. 도시계획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도시 생활에 필요한 교통, 주택, 위생, 보안 등의 모든 환경을 능률적이고 효과적으로 공간에 배치하려는 계획이다. 도시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정립해 가며 이를 시행하려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또한 도시계획은 도시의 장래 발전 수준을 예측해 사전에 바람직한 형태를 미리 상정해두고 이에 필요한 규제나 유도정책, 혹은 정비수단 등을 통해 도시를 건전하고 적정하게 관리해 나가는 도구라고 정의한다.

<동부매일>은 어떤 도시가 ‘참 좋은 도시’인지를 고민해 보는 연재를 마련한다. 이번 연재는 <저성장 시대의 도시정책>(한국공간환경학회 기획)에 실린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정석 교수의 ‘단체장을 위한 도시계획 십계명’과 그의 저서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효형출판>, 제인 제이콥스의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그린비)를 인용, 참조했다. -편집자 주-

▲ 여수시는 지난달 여수를 찾은 1300만명째 관광객 7명을 선정해 꽃다발과 경품을 지급하는 환영행사를 열었다.

관광 활성화 정책…주민과 시민의 일상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면서 선거에서 당선된 단체장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재선’이다. 꼭 재선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해도 시민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자 하는 마음은 예외가 없다.

문제는 재선이든 좋은 평가든 그것을 ‘단기간에 이뤄낸 가시적 성과’에 의존하려는 강박관념이다. 단체장들이 박람회, 국제스포츠대회 등의 국제 이벤트 유치와 대형 사업을 벌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외국도 우리처럼 올림픽이나 박람회 유치 등의 대규모 도시이벤트를 벌이려 애를 쓰고 있고, 일시적으로 벌어지는 축제나 행진, 행사, 의식 등 다양한 도시이벤트가 벌어지고 있다.

브라질은 2014년 열린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경기장 신축과 기반 시설 마련을 위해 110억 달러(11조원)가 넘는 돈을 쏟아 부었다. 그런데 이로 인해 국민의 삶은 더 피폐해졌다. 월드컵 준비로 많은 돈이 풀리면서 물가는 살인적으로 치솟았고, 월드컵 주변 이권을 둘러싼 지도층의 부정부패는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브라질 국민들은 월드컵과 관련해 쏟아 부은 엄청난 돈이, 축구를 위한 경기장 건설보다는 열악한 교육이나 주거, 의류, 교통 등 사회적 인프라를 갖추는데 투자됐어야 했다고 역설했다.

2012년 세계박람회라는 화려한 국제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여수지역에는 직·간접적으로 수조원이 투입됐으나 3년이 지난 지금, 정부의 싸늘한 무관심 속에 화려한 감동의 순간은 희미해져 가고 있다. 박람회를 계기로 여수는 SOC 확충, 인지도 상승에 따른 관광객 폭증 등 긍정적인 효과를 얻은 반면 물가 상승, 교통 불편 등 지역민들의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방치되다시피 한 박람회장은 도시를 뒤덮고 있는 자욱한 안개처럼 시민들에게 무거운 짐으로 전락하고 있다.

▲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MIT대학 교수였던 마크 슈스터는 이것을 ‘이피머러(ephemera, 하루살이)’, 또는 ‘일시적 도시설계(temporary urbaninsm)’라 지칭했다. 쉽게 말하면 ‘이벤트 도시계획(또는 도시설계)’라는 뜻이다.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정석 교수는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시민의 일상과 관련돼 있는지, 아니면 전혀 별개로 굴러가는지에 있다. 시민의 일상생활과 편안한 삶이 존중되면서 이벤트 도시설계가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시민의 일상과 무관하게, 또는 편안한 삶을 훼방하면서까지 진행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시민들이 생생하게 기억할 만한 굵직한 성과를 임기 중에 이뤄내고 싶은 욕구는 아마도 모든 단체장의 공통된 마음이다. 문제는 그 욕구를 올바른 방향으로 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이벤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시민의 일상과 동떨어지고, 편안한 삶을 침해하는 도시이벤트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진정성과 진실성이 결핍된 이벤트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도시계획은 개발이익을 노리는 세력들에 의해 악용되기도 한다. 폐해가 길이 후손에 미치건 말건 그럴듯한 개발논리로 겉포장 해 이익을 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형 이벤트나 사업을 벌이는 이유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할 때도 있지만, 관광정책과 연계된 경우가 많다. 관광객들을 우리 도시에 끌어와 돈을 벌자는 생각과 맞물려 있다. 굴뚝 없는 산업으로 불리는 관광을 활성화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지만 관광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펼 때도 마찬가지로 주민과 시민의 일상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해야 한다.

특히 주민들이 살고 있는 주거지역이 관광객의 목표물이 될 때에는 자칫 편안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이 침해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 지난해 5월 여수 돌산지역 주민들이 해상케이블카와 유람선 운항에 따른 주말 교통난 해소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게시하는 시위에 나섰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 전주 한옥마을, 통영 동피랑
관광객 몰리면서 현지 주민들 일상생활 큰 불편
해상케이블카·게장백반거리 인근 주민들 불편 호소

서울의 북촌은 1000여채의 한옥이 있는 서울의 대표적 한옥마을이다. 큰길가에는 주거용도가 아닌 한옥들도 많이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대부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주거용도 한옥들이다. 북촌 가꾸기 정책을 입안할 당시 이 같은 주거지의 특성이 잘 유지되고, 또 주민들의 편안한 일상생활이 침해받지 않도록 주거환경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그 원칙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북촌을 관광활성화 거점으로 삼은 서울시의 정책에 따라 한류 열풍과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국내·외 관광객이 폭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매일 관광객들로 붐비면서 주민들의 편안한 일상생활은 망가지고 있다.

서울시는 뒤늦게 한옥 주거지를 보호하기 위해 북촌을 지구단위계획으로 지정했으나 이미 관광지로 전락해 주거 환경은 나빠지고, 각종 규제로 주민들은 이중 피해를 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 관광객들의 만족도도 떨어지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도 관광객 급증으로 한옥마을 내 거주민들이 교통 체증과 주차문제 등 생활불편을 호소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주민들은 주말이면 붐비는 관광객들 때문에 집에도 맘대로 들어가지 못할 정도다. 주택가에까지 빼곡히 들어선 외부 차량들로 인해 주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벽화마을로 유명한 통영 동피랑도 쓰레기 무단투기, 주거침입 등 일부 관광객의 행동 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급기야 생활불편을 참다못한 한 주민이 벽화에 페인트를 뿌려 훼손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 여수해상케이블카 정류장이 있는 돌산공원 인근. 주말, 공휴일 등에는 케이블카를 찾는 차량들 때문에 시내부터 마을 진입로까지 아예 길이 막혀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여수시도 이미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해상케이블카 정류장이 위치한 돌산공원 주변 마을이다. 교통 불편은 물론 생계에까지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그런데 원인 제공자인 해상케이블카 운영업체 ㈜여수포마는 대책 마련은커녕 돈벌이만 급급한 ‘악덕기업’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 4일 여수시청 홈페이지 ‘여수시에 바란다’에는 “언제까지 여수해상케이블카 때문에 불편을 참아야 합니까”라는 글이 올라왔다.

케이블카 정류장이 있는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 백초마을에 부친이 살고 있다는 백모씨는 “평일 저녁과 주말만 되면 해상케이블카를 찾는 차량들 때문에 시내부터 마을 진입로까지 아예 길이 막혀 불편을 겪고 있다”고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백씨는 “지난해 여수시가 진두마을 쪽으로 도로를 개통하고 주차장을 확보했지만 돌산2대교에서 돌산공원을 잇는 진입로 및 주차장 설치 등의 추가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교통체증은 더욱 심해지고, 그에 따른 불만도 커져 언젠가는 폭발할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평일 저녁시간이나 주말 휴일이 되면 케이블카를 찾는 차량들 때문에 여수시내에서부터 마을 진입로까지 길이 막혀 불편을 겪는 것은 물론이고, 차량 운전자들과 마찰도 생길 때가 많다. 집 앞은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길인데도 우회하려는 차들로 인해 길이 막혀서 운전자들끼리 서로 욕하고 싸우는 일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해상케이블카로 인해 여수지역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 음식점이나 숙박업을 하는 개인사업자들에게는 좋겠지만 돌산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돌산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는 오히려 불편만 가중될 뿐이다”고 했다. “(여수시가)관광객 1300만 돌파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동안 묵묵히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시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백씨는 특히 “부친이 당뇨합병증을 앓고 있는데, 작년 여름 저혈당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 이송하는 과정에서 길이 막혀 큰 낭패를 봤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백씨는 “여수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여수가 관광지로 인지도가 상승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은 환영하지만 ‘여수포마’라는 개인사업자의 배를 불리는데 순진한 돌산주민들과 여수시민들이 왜 불편을 겪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주민들은 물론 시민들은 성수기 주말이나 공휴일, 연휴 때에는 돌산공원과 자산공원, 중앙동 등 도심에 외출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 상당수 시민들은 아예 가는 것을 포기한다. 현지에 살지 않는 시민이야 그곳에 안 가면 그만이지만 살고 있는 주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수시 봉산동 게장 백반 거리도 마찬가지다.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게장 음식점 인근 주민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주민들은 집 앞에 마음대로 주차도 못하고,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교통난과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각종 쓰레기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직은 활성화가 덜 된 여수시 고소동 천사벽화골목도 추후 활성화가 될 경우 통영의 ‘동피랑’처럼 주민들의 생활 불편을 야기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현재 이 일대는 오포대 전망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카페와 사회적경제기업 커뮤니티 공간 ‘꼬무락 마을촌’이 들어서는 등 변화가 진행 중이다.

▲ 여수시 봉산동 게장백반 거리 일대. 도로 양쪽에 주차된 차량과 주차를 하려는 차량들로 뒤섞이면서 인근 도로 일대는 혼잡을 빚기 일쑤다.

주철현 시장 “불편 감수해 준 시민들께 감사”
끝 모를 불편 언제까지…정주 여건 만족 저하
관광정책, 주민·시민 일상생활 불편 해소 방향으로

주철현 시장은 지난달 관광객 1300만명 돌파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불편을 감수해 준 시민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여수시관광발전협의회는 여수시민에 한해 해상케이블카 등 주요 관광시설 이용 요금을 할인해주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냐다.

관광정책을 통해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거주민들의 행복도가 높아야 하는데 거주민들의 행복도가 낮아지고 있다. 이는 정주 여건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관광정책의 본질은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면 시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란 목표에서 기인한다.

그런데 방문하는 외지인들은 늘어나는데 비해 정작 사는 주민과 시민은 끝 모를 불편을 겪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정주 여건 악화로 인구 감소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이 요구된다.

이에 여수시가 관광객을 불러들이려는 정책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주민과 시민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도록 시정방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정석 교수는 <저성장 시대의 도시정책>이라는 책에서 “도시이벤트와 관광활성화도 중요하지만 주민과 시민의 일상은 더욱 존중되고 지켜져야 한다”며 “주객이 뒤바뀌지 않도록 단체장이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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