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 원에서 수천만 원의 예산을 사용하고도 최소한의 법적 의무만 지키면 된다는 관행적이고 소극적인 행정에서 탈피해 더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공개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시민의 세금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특수활동비 축소 등 공공영역 투명성 강화
서울시, 집행 장소와 집행 시간까지 공개 투명성↑

여수시, 업무추진비 대부분 식사나 선물 등에 쓰여
세세히 공개해 투명성 높여야…검증 시스템도 필요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돈 봉투 만찬’ 사건에서 주고받은 돈이 특수활동비로 알려지면서 정부기관들의 불투명한 특수활동비 사용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특수활동비란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나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특수활동비는 청와대, 국회, 국가정보원, 법무부 등 거의 모든 정부기관에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사용처 증빙서류조차 갖출 필요가 없어 주머니 속 쌈짓돈 마냥 마구잡이로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국납세자연맹(이하 납세자연맹)에 따르면 2007년부터 10년간 사용된 특수활동비 규모는 8조5631억 원이다. 올해 소관부처별 특수활동비 예산은 총 8939억 원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지만 기밀이란 이유로 용처와 용도는 대부분 비밀이다. 사실 특수활동비를 일부 공직자가 유흥비, 골프 접대 등에 사용한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수사와 정보수집 등 사용처를 밝히면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영수증 등 증빙서류를 생략할 수 있다’는 정부 부처 지침 탓에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잊을 만하면 부정한 사용 실태가 언론을 통해 드러나곤 했지만 대부분 유야무야 넘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2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올해 5월 현재 청와대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127억 원 중 42%에 해당하는 53억 원을 절감, 이를 청년 일자리 창출과 소외계층 지원 예산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청와대에서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비용을 특수활동비로 사용하지 않고 급여에서 공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청와대가 앞장서서 특수활동비를 줄이고 투명한 사용을 약속한 일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로 잡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대통령 최측근을 임명해오던 총무비서관 자리에 특별한 인연도 없는 예산정책 전문 행정 공무원을 발탁한 것도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신호탄이었다.

9000억 원에 가까운 국민 혈세를 사용하는데도 국민은 전혀 알지 못하는 깜깜이 예산 특수활동비 문제 본질은 ‘투명성’에 있다.

▲ 2017년 1~3월까지 여수시장 업무추진비 집행현황.

‘눈 먼 쌈짓돈’이라는 지적을 가장 많이 받는 지자체 예산은 과거 ‘판공비’로 불린 업무추진비다. 업무추진비는 지자체장과 부단체장, 의회 집행부 등이 기관을 운영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등 공무(公務)를 처리하는데 사용하는 비용을 말한다. 특수활동비처럼 기밀에 속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투명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한다.

여수시장과 부시장, 국소단장, 여수시의회 의장·부의장·상임위원장, 의정운영공통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은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보가 부족하다. 시의원은 분기마다, 국·소·단장은 2월 중 연1회, 시장·부시장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은 분기 익월 말 연4회 공표한다.

시장·부시장·국소단장 업무추진비는 집행유형(사용처), 집행일, 집행구분(격려금품, 식사 등), 건수, 집행대상, 집행액을 공개하고 있다. 시의장·부의장·상임위원장·의정운영공통 업무추진비는 집행유형, 사용일시, 대상인원수, 금액, 결재방법을 공개한다.

올해 편성된 여수시장의 업무추진비는 1억8420만 원이며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4512만3000원(집행률 24.5%)을 사용했다.

사용처는 ▲이재민·소외계층 격려 및 지원 ▲시책 또는 홍보 ▲학술·문화예술·체육활동 유공자 등에 대한 격려·지원 ▲업무추진을 위한 각종 회의·간담회·행사 ▲현업(현장)부서 근무자에 대한 격려·지원 ▲소속 상근직원에 대한 격려·지원 ▲직무수행 관련 통상적 경비(내방객 제공 음료·다과, 축의·부의 금품) 등이다. 주로 회의 관계자와 재난 복구자, 소속상근직원 등에게 식사비나 격려·위문금품, 축·부의금 등으로 썼다. 결재는 카드로 했는지 현금으로 했는지 공개되지 않았다.

▲ 2017년 1~3월까지 여수시의회 의장 업무추진비 집행현황.

부시장의 업무추진비는 1억480만 원으로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2148만3000원(20.5%)을 사용했다. 시장과 사용처와 집행대상 등이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결재 방식은 공개되지 않았다.

기획재정국 등 9개 국·소장의 지난해 업무추진비는 930만 원씩, 상하수도사업단은 330만 원이다. 대부분 책정된 금액에 맞춰 사용했다. 국소단의 업무추진비도 대부분 식사비나 경조사비, 선물 등에 쓰였다.

여수시의회 의장의 업무추진비는 올해 3144만 원으로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712만4500원(22%)을 사용했으며, 주로 의정활동과 업무추진을 위한 간담회 식대로 사용했으며 모든 결제는 카드로 했다.

부의장의 업무추진비는 1512만 원으로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437만1600원(28%)을 사용했으며, 거의 대부분 의정활동 업무협의 간담회 식대로 썼다. 역시 결제는 카드로 했다.

4개 상임위원장은 올해 각 1032만 원씩 4128만 원을 업무추진비로 사용할 수 있다. 상임위원장들 역시 거의 대부분 ‘의정활동 업무협의를 위한 간담회 식대’로 사용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시의회 의정운영공통 업무추진비는 1억3580만 원으로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1997만6500원(14%)을 사용했다. 대부분 각종 회의·간담회·행사, 직무수행 관련 통상적 경비 등으로 썼다.

문제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용 내역을 공개하고 있지만 관련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제각각이다. 실제로 시와 의회의 공개 항목이 다르다. 특히 사용 내역을 살펴보면 식대나 격려금, 선물 구입 등으로 사용하는데 언제 어디서 누구와 식사를 했는지, 어떤 선물을 어디서 구입해 누구에게 지급했는지 등과 같은 자세한 정보는 나와 있지 않아 구체적인 내역을 알 길이 없다.

서울시가 사안별로 집행일시와 시간, 집행 장소, 집행목적, 대상인원, 결제방법, 집행금액 등을 자세히 공개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 2017년 2월 서울시장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

대통령이 앞장 서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지역에서는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업무추진비가 기형적으로 음식 제공 비율이 높다는 것과 술까지 마시는 것은 명목상 문제 여부를 떠나 시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에 따라 수억 원에서 수천만 원의 예산을 사용하고도 최소한의 법적 의무만 지키면 된다는 관행적이고 소극적인 행정에서 탈피해 더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공개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에 대해 철저한 검증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무추진비가 관례로 시장·의장 등 집행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시민의 세금이기 때문이다.

여수시민협 박성주 사무처장은 “청와대나 서울시가 특수활동비나 업무추진비에 대해 투명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만큼 여수시도 시민 알권리와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업무추진비를 더 구체적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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