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산단 ‘노후산단 재생사업’ 선정, 375억 투입
오폐수 수십 년 바다로 유입돼 오염·생태계 파괴
마을 주민 “갯것 하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정화·복원사업 타당성 부족 등으로 국비확보 실패

▲ 지난해 7월 오천산단 인근 마을주민들이 굴삭기를 동원해 산단 아래 해안가를 굴착하고 있다. 수십년 간 흘러들어간 오폐수의 퇴적으로 검게 변한 돌멩이와 자갈, 모래에서 심한 악취가 진동했다.

지난 3월 정부의 ‘제4차 노후재생산업단지 공모사업’ 대상지구로 선정돼 총 사업비 375억 원이 투입되는 여수 오천일반산업단지 재생 사업이 반쪽짜리라는 지적이다.

수십 년 간 오천산단에서 흘러 들어간 오폐수로 인해 해안가는 검게 썩어 악취가 진동하고 바다 생태계가 파괴되는 등 피해가 발생, 이에 대한 조사나 정화·복원이 시급한데도 이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골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여수시는 지난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수산가공식품 생산이 주력인 오천산단을 웰빙산단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시는 중앙투자가 심사가 완료되는 대로 재생·시행계획을 위한 용역을 실시하는 등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정부의 재생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오천산단에는 국비 87억 원, 지방비 97억 원, 민자 191억 원 등 총 375억 원이 투입된다. 산업단지 인프라 개선을 위해 도로 확·포장, 공동 폐수 처리장 정비· 확장, 공동 냉동·냉장창고 설치, 활성화 구역 조성, 공용 주차장 설립 등이 추진된다. 근로·정주 환경 개선을 위해 웰빙산업지원센터, 근로자기숙사, 공동직장어린이집, 공원 및 체육시설을 조성한다.

1983년 조성된 오천산단은 33년이 넘은 노후산단으로, 한 때 공동직장어린이집을 운영할 정도로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수산업 쇠퇴, 행정과 지역 정치권의 무관심 등으로 도태되면서 활성화 방안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했다.

오천산단에는 2015년 기준 51개사(가동업체 44개)가 입주해 있으며, 741명(남 173명, 여 568명)이 종사하고 있다. 오천산단의 생산규모 비중(2010~2015년)을 보면 전국 수산가공식품 생산의 2.65%, 여수지역의 66.84%를 차지하고 있다. 여전히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해 건축물 및 기반시설의 노후화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며 특히 복지시설을 비롯한 문화기반시설이 전무한 실정이다.

특히 지역 국회의원이나 여수시가 공모사업에 선정돼 수백억 원이 투입된다고 자화자찬식의 홍보를 하는 것과는 달리 정작 오염된 해안에 대한 정화·복원이나 피해 조사 등의 해결책 마련에는 소극적이어서 재생 사업이 허울 좋은 사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오천마을 주민이 썩은 냄새가 나는 자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해 오천산단에서 수십년 간 흘러 들어간 오폐수로 인해 해안가 바닥이 썩어 검게 변했고, 바다 생태계가 파괴돼 패류나 해조류 등이 생산되지 않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이는 여수시의회 송하진 의원과 오천산단 인근 마을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드러났다.

실제로 마을 주민들이 지난해 7월 굴삭기를 동원해 해안가 바닥 굴착작업을 벌인 결과 오폐수의 퇴적으로 검게 변한 돌멩이와 자갈, 모래에서 심한 악취가 진동해 충격을 줬다.

악취 발생과 오폐수 무단 방류 등으로 인한 피해는 물론 수십 년 동안 주민들의 고통과 분란의 원인이 됐지만 불법을 일삼은 비양심적인 업체와 이를 알고도 방치한 행정 때문에 청정해역이 오염되고 주민 건강 위협을 초래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주민들은 당시 “오폐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시정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시는 지난해 12월 3억2800만 원을 들여 전 구간의 오폐수 관로를 새롭게 교체했다.

피해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주민들은 예전에는 오천산단 아래 바다에서 바지락, 멍게, 미역, 참가사리, 참몰, 홍합, 다시마, 톳 등이 많이 생산됐는데 언제부턴가 거의 없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마을의 한 주민은 전화 통화에서 “20여일 전에 물이 빠져 갯것을 하러 갔는데 빈손으로 돌아왔다”며 “옛날에는 주민들이 홍합, 고동, 청각 등을 채취해 내다 팔거나 반찬으로 해 먹었는데 씨가 완전히 말랐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한 주민은 “작년에 논란이 된 이후 오천산단 측이나 여수시가 마을 주민들에게 사과를 하거나 오염 원인과 피해 규모, 재발방지 대책 등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 오천산단 앞 해안가의 갯돌을 들어내자 검게 변한 바닥을 드러내면서 썩은내가 진동했다.

여수시는 올 초 해수부를 방문해 선소해역과 함께 오천산단 해안가에 대해 해양오염퇴적물 정화·복원사업을 건의했으나 사업 타당성과 당위성 부족 등으로 우선순위에 밀렸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용역을 통해 오염분포 등 명확한 조사를 통해 사업의 타당성과 당위성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시는 국비 확보를 담보할 수 없어 자칫 용역이 예산 낭비만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소극적이다. 2006년 타당성 용역을 마친 다른 지자체의 정화·복원 사업이 현재까지 진행되지 않은 사업도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오천산단 해안가 정화·복원 사업은 사실상 기약을 할 수 없은 상황이다. 시는 오염퇴적물 정화·복원사업비로 약 12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염의 원인자인 오천산단 측이 일정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조합의 경영이 어렵고, 업체들이 영세해 이는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를 감독해야 할 여수시 역시 수십 년 째 방치한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다. 특히 바다의 도시, 수산업의 도시, 국제해양관광도시를 자처하는 여수시가 해양 오염에 대처하는 자세가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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