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동리 화양고 앞 고인돌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철제 난간 곳곳이 훼손돼 있다. 표지판은 칠이 벗겨져 녹이 슬고 안내 문구에는 낙서가 돼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 마재일 기자

여수시 화양면 화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의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디지털여수문화대전에 따르면 화동리 화동 고인돌군은 5개 군락에 60기 이상의 고인돌 상석이 분포한다.

그 중 화동리 화양고등학교 정문 앞에 있는 ‘화동리 화동 고인돌 나군’은 고인돌 26기가 위치한다. 고인돌은 좁은 공간에 모여 있으며, 현재 마을 주민과 학생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상석 중 2기는 상면에 선정비가 음각돼 있다. 상석 1기에는 선정비 2기가 새겨져 있고, 다른 상석 1기에는 선정비 3기가 음각돼 있다. 이 상석들 앞쪽에는 3기의 감목관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화동리 일대는 조선 후기의 백야곶목장(곡화목장)으로 조선의 대표적인 목장이었다.

그러나 울타리 역할을 하는 철제 난간 곳곳이 훼손돼 있다. 표지판은 칠이 벗겨져 녹이 슬고 안내 문구에는 낙서가 돼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 화동리 화양고 앞 고인돌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철제 난간 곳곳이 훼손돼 있다. 표지판은 칠이 벗겨져 녹이 슬고 안내 문구에는 낙서가 돼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 마재일 기자
‘화동마을 고인돌 가군’은 화동에서 소장마을 방면으로 지방도 863호선을 따라가면 화동·안포·나진으로 나뉘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안포 방면으로 350m 정도 가다 보면 도로 왼쪽의 밭에 고인돌 6기가 위치한다. 이곳은 고개마루로 산과 산 사이에 형성된 좁은 평탄지이다. 고인돌은 민묘 주위에 1기가 있으며, 계단식 밭둑을 따라 남북 일렬로 6기가 분포한다. 기존의 조사에서는 9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6기만 남아 있다.

‘화동리 화동 고인돌 다군’은 화동마을에서 지방도 863호선을 따라 소장마을 방면으로 약 300m 정도 가면 도로 왼쪽의 소나무 숲 뒤 논둑에 고인돌 2기가 위치한다. 1기는 상석의 아래에 지석 3매가 잘 놓여 있으며, 그 사이에는 잡석이 채워져 있다.

▲ 화양고 앞 고인돌. ⓒ 마재일 기자
▲ 고인돌에 새겨진 감목관 선정글. ⓒ 마재일 기자

‘화동리 화동 고인돌 라군’은 화동리 화동에서 지방도 863호선을 따라가면 화동·안포·나진으로 나뉘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 바로 못 미친 도로의 주변에 고인돌 4기가 위치한다. 도로의 왼쪽에 3기, 오른쪽에 1기가 있다.

‘화동리 화동 고인돌 마군’은 화동마을에서 지방도 863호선을 따라가면 소장저수지 방향으로 나 있는 소로와 나뉘는 작은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소로를 따라 약 170m 정도 가다 보면 소로의 오른쪽 밭에 고인돌 24기가 위치한다. 도로에서 동남쪽으로 약 10m 정도 떨어져 있다. 북쪽으로는 민가가 1채 있다.

한편 화동리는 곡화목장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곡화의 ‘화(華)’와 동쪽의 ‘동(東)’을 합해 지어진 마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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