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봄날의 햇살에는 흩어진 한조각 구름과도 같은 것인가. 추위는 흩어지고 생동하는 기운이 기지개를 켠다.

봄은 따뜻함의 기운이요, 생명의 싹틈인지라, 겨울이 마지막 꽃 시새움으로 머물다 간 자리에 봄은 벌써 부활의 생명으로 다가오고 있다. 동백꽃이 붉게 지면서 아쉬워하는 자리에, 벚꽃은 불꽃놀이를 하듯이 폭발적으로 피어나고 있다.

자연도 그렇지.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고, 피는 때가 있으면 지는 때도 있다. 좋은 것에도 늘 시새움은 있는 것.
화려한 꽃그늘 아래로 막 피어난 눈송이 같은 꽃잎이, 시샘바람에 나비 날개 짓을 해가면서 떨어진다. 서해의 젊은 장병들의 목숨처럼…….

서해의 영혼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빈다. 하나뿐인 생명, 하느님도 당신의 생명과 맞바꾸실 만큼 귀하게 여겼던 사람의 생명이다.
이 생명을 받은 국가는 무엇으로 이 생명 값을 대신해 주어야 할까? 유족들의 눈물을 어떻게 닦아주어야 할까?

정의로 굽어보는 하늘은 언제쯤이나 그 정의를 드러낼까? 땅과 바다는 언제쯤이나 그 진실을 말해줄 것인가? 누가 이 죄악을 고백하고 참회하면서 생명 값을 물어낼까?

꽃송이가 가장 아름다웠을 때 뚝 떨어진다는 동백꽃과 같이, 짧은 삶을 살다간 서해의 영혼들에게 평화의 안식을 빈다. 다시는 죽음도, 두려움도, 고통도 없는 그런 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라고 빈다.

작년과 올해에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비롯해서 두 분의 전직 대통령님과 법정스님도 세상을 떠났다. 유명 연예인들도 많이 떠나갔다. 사고로 죽은 목숨도 너무 많다. 선한 사람들의 눈물이 마를 새가 없이 많아졌다.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듯이 삶과 죽음이 또한 늘 그 한 몸 안에 있었다. 크게 우러러 보았던 성인들의 삶도 예외 없이 한 순간에 세상 밖으로 빠져 나가고 말았다. 삶이 있으니 죽음이 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요, 또한 누구나 다 이 길을 가야하는 것임을 안다.

그래도 생대가 터지고 쪼개지는 것 같이 아픈, 젊은 자식들이 부모를 앞서가는 죽음만은 없어야 하겠다.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야 사람이 막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젊은 목숨이 억울하게 묻히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을 해야 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죽음이다. 살아있을 때 잘 살고, 사랑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떠날 때 아쉬움이 덜할 것이 아닌가?

육신이 있으니 늙음도 있고, 병이 들기도 하고, 죽음도 있다. 이것 때문에 행복해야 될 육신이 구속을 당하고 깊은 슬픔의 잔을 마시게 되기도 한다.

또 이 육신에서 솟아나오는 욕망들 때문에 사람은 평생 동안을 수고하고 번뇌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남보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오래, 더 좋은 것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소유를 많이 해도, 아무리 드높은 명예를 얻어도 마음은 여전히 허전하다. 행복해야 될 삶이 늘 불안하다.
역설적이지만 죽음은 인간에게 삶에 대한 지혜와 자유를 주기도 한다. 그 어떤 소유와 명예도 죽음의 동반자가 되지를 못한다는 것을 일러준다.

인간은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갈 것이고, 영원히 머무르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일러준다. 살아 있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있을 때 더 잘 살아보라고 한다.

마지막 입고 가는 수의에는 주머니도 없고, 저승에는 가지고 갈 것도 없으니 더 많이 나누고 비우고 가라는 것이다. 욕망이 부질없으니 집착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라는 것이다.
무소유의 개념도 불필요한 것에서 벗어나라는 말일 것이다. 서로가 넘침도 모자람도 없게 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봄이 한 가운데에 왔다. 그만 눈물을 닦아내자. 봄은 부활의 계절이다. 우울한 죽음의 장막을 걷어내고 부활의 생명을 바라보자. 그리고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고 가꾸면서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살아보자.

새 하늘, 새 빛을 보자. 아름답지 않은가! 또 태양은 내가 없어도 뜨고 지는 것처럼, 세월은 나의 존재와 슬픔과 고통과 의지에 관계없이도 흘러간다. 슬픔, 그만 털어내자.

“울면서 가든지, 웃으면서 가든지 인생의 길이는 같다.”는 말이 있다. 우리도 언젠가는 떠나갈 것이다. 언제 올지를 알지 못하는 죽음이지만 대비하면서 살고, 사는 동안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가자.

얼마 전에 젊은 당숙이 세상을 떠났다. 죽음 앞에서 묵상한다. 여기까지가 당신의 삶이었느냐고, 여기까지를 위해서 그렇게 안간힘을 다써가면서 살았느냐고, 이제 당신은 더 바랄 것이 없이 행복하시냐고, 지금 당신의 영혼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만약에 다시 한 번 생명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느냐고······. 길 떠나는 영혼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다.

건강하게 살아있었을 때 좀 더 따뜻하게 다가가지 못한 여한이 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꼭 삶의 끄트머리에 가서야 정신을 차리고, 엎질러진 뒤에야 후회를 한다.

사랑하는 형제가 위암 수술도 받았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를 또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잘 살아야 한다. 세상에는 고통과 슬픔이 있으나 견딜만한 슬픔이다. 그래도 행복하고 다 견딜만한 고통이다.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이 있음에 감사하자.

언젠가 내가 떠나가더라도 나를 위해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감사하자. 더 깊게, 더 높이, 더 넓게, 더 길게, 인생을 바라보아야 한다.
세상에서 온갖 고통과 슬픔을 맛본 사람들에게, 억울한 죽음에게 무엇이 위로가 되겠는가? 천국이 있다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선업을 쌓고 허욕을 비우는 사람들에게도 천국은 희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승에서의 삶을 잘 살아야 천국이 좋은 것이다.

새 봄이 다시 오고 꽃이 다시 피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육신이 죽은 뒤에, 생명은 다시 부활해서 살리라는 것을 믿는다. 이것이 희망이다.
나누고 위로하고 섬기는 삶을 잘 사는 사람들은 부활의 기쁨을 다시 맛보게 될 것이다. 죽음 앞에 너무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인생길에서 만나고 가야 할 이웃이다. 죽음, 그 바로 뒤에 부활의 새 생명이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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