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차영 <부영초등학교 교사>





 

책을 읽히면서 이왕이면 한글도 빨리 떼고, 글쓰기 훈련도 하고, 미술 실력도 기르고, 게다가 세상을 헤쳐 나갈 교훈까지 얻기를 바라는 게 많은 부모님들의 욕심입니다.



물론, 아이들은 책을 통해 그 모든 걸 얻을 수 있지요. 하지만 너무 성급한 마음은 오히려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더구나 착하고 밝은 심성과 풍부한 정서, 세상을 보는 눈.. 그렇게, 짧은 시간에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 삶에서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크고 소중한 가치들에서는 더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독서 환경이란 독서가 하나의 과업이 되지 않고 습관으로, 삶으로, 몸에 익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닐까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재미있게 책과 친해질 수 있어야 하겠지요? 반드시 밝고 가볍고 유머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슬프고 가슴 아픈 옛이야기나 단조 가락의 전래동요들에도 금방 빠져들지요.



아이들이 관심을 갖는 대상, 아이들의 상상력과 풍부한 감정이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만나면서 책과 친해지려고 하면, 애써 가르치고 교훈을 주려 하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세상의 순리를 깨우치며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할 수 있는 힘도 기르게 됩니다.



컴퓨터에 매달려 밖에 나가 놀 줄도 모른다는 게 요즘 엄마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입니다. 너무 바쁜 일과를 보내는 아이들이 TV나 게임 같은 데 매달리는 건 당연할 지도 몰라도 온전히 자기와 놀아주는, 가장 재미있고 편한 친구니까요.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은 어느 아동상담 전문가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컴퓨터에만 빠져있던 아이들을 모아놓고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아주고 나서 물어보았더니, 한결같이 그렇게 노는 게 게임보다 더 재미있다고 하더랍니다.



아이와 함께 책읽기의 재미에 빠지려면 실은 생활 전반에 '변화'가 필요할거라 생각합니다. 평소엔 이거해라, 저건 하지 마라, 윽박지르고 다그치던 엄마가 책을 읽어줄 때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없을 테니까요.

‘자기 나름의 완전한 세계를 가지고 독립된 생각과 감정을 지닌 존재’로 아이를 존중하면서 생활 전체에서 아이와의 관계를 변화시켜 보기로 했으면 합니다.

흔히들 무엇부터 풀어가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할 만큼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네 교육 환경에서 빠른 시간에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 건 당연히 어려울 겁니다.

무엇보다 믿음을 갖고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억지로 책을 읽히려 하기 보다는, 먼저 아이에게 마음을 열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살피면서 함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합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엄마 아빠랑 함께 보는 책은 정말 재미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 저절로 어른들이 골라주는 책을 읽고 싶어질 것입니다.

‘아이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부모가 아이에게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학부모님, 내 아이의 위해서 유원지를 데리고 가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월 1회라도 좋으니 한두 번쯤은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주변에 있는 시립도서관이나 학생교육문화회관에 위치한 도서관을 찾아 열람증도 만들어 주고 즐겨 읽고 싶은 책도 고르며 스스로 도서관을 찾아가 이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보는 게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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