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수를 방문한 모 방송국 간부가“여수에서 제일 맛있는 것을 사 달라”고 하길래 5천원짜리 게장백반을 대접했다.
맛있게 먹던 그가“이게 얼마짜리냐?”고 묻는다.“5천원이다”고 답했다. 그의 답은 “여수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였다.
아름다운 도시, 맛있는 음식. 이보다 더 살기 좋은 도시가 또 있겠냐는 얘기다. 우리는 이렇게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행복한 도시에 살고 있다.
이러한 자랑스러움을 도시의 자부심으로 이끌어 달라고 뽑아 놓은 사람들이 정치인들이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도시의 미래를 결정할 결정권과 권력을 넘겨 주었다.

며칠 전 지역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여수도시공사 설립 건이 여수시의회를 통과했다. 이미 통과된 것을 다시 쥐어뜯고 싶지는 않다.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추진하는 쪽에서는 반대하는 쪽에‘사사건건 반대한다’고 하고, 반대하는 쪽에서는‘시민들을 위해 제대로 된 사업 한번 추진해 봤냐’고 묻는다. 이 답도 결국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어느 기관장이 이런 말을 전한다.“여수에는 자신의 주장만 있지, 그 주장을 설득하는 과정이 없다”듣기에 참으로 민망한 얘기다.

그의 말처럼 지금 우리지역에 가장 필요한 화두는 소통이다. 소통이란 말의 뜻은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일컫는다.
소통의 실천적 이념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뜻이 서로 통하지 않더라도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지역에는‘다른 것은 나쁜 것’이라는 통념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다른 것을 포용하려는 의지도, 설득하려는 노력도 보이질 않는다.

화합과 타협의 문제는 일반인 보다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다. 지도자가 소통능력이 부족한 경우를 우리는 독선적이라거나, 폐쇄적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우리 도시에는 점점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기 위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이 송두리째 생략되어가고 있다.

일반 서민들에게는 따라오기를 강요하고, 힘있는 사람들에게는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분명히 하라는 요구가 공공연하게 떠돈다. 중간영역이 없다보니 화해도 없고, 타협도 없다. 결국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것은 시민들뿐이다.

타협과 화합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되는 선에서 조정될 때 가능한 문제다. 소통은 결국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상대방을 안고 가려는 노력과 다름 아니다.
이러한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여수시 전체가 점점 승자 독식주의로 흐르는 모양새다. 승자가 독식하는 체제하에서 소통은 결코 미덕이 아니다. 소통은 단지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장애물 일 뿐이다.

리더가 귀를 닫고, 입이 앞서면 주위에 사람이 떠나가는 법이다. 내 주위에 점점 사람이 떠나가고 있고, 이런 저런 험담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십중팔구 내가 귀를 닫고 입이 앞서는 경우일 것이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귀를 열어놓고,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내가 대접받고자 애를 쓰면 쓸수록, 대접하기를 거절하는 것이 사람들의 속성이다. 내가 낮추면 낮출수록 대접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사람들의 속성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속성을 잘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속담처럼 권력과 명예는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듯이, 정치인들도 빈손으로 시작해서 임기가 끝나면 빈손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다. 그것이 권력의 무상함이다.
크고 화려한 것보다, 작은 것과 적은 곳에서 행복의 가치를 찾는 지혜가 그들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 헛된 욕망을 비울수록 마음은 넉넉해지는 법이다.

여수시의 주인은 국회의원도 아니고, 시장도 아니고, 시의원도 아니다. 그들이 출마할 때 몸 바쳐 섬기겠다고 맹세한 여수시민들이 주인이다.
그 주인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머슴들이 지금보다 좀 더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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