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예산 ‘0원’ 피해자 지원 조례 유명무실
주종섭, 피해자 실태파악·역사자료화 시급

일본 교토시 옛 신오타니광산이 있던 단바에 세워진 단바망간기념관의 노역 모습.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던 150만 명의 조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유일한 시설이다. (사진=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카페)
일본 교토시 옛 신오타니광산이 있던 단바에 세워진 단바망간기념관의 노역 모습.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던 150만 명의 조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유일한 시설이다. (사진=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카페)

태평양전쟁 당시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본 본토는 물론 동남아시아, 남태평양의 마리아나 제도, 사할린, 만주 등지로 강제로 끌려갔다. 전장에서 총알받이가 되거나 혹독한 노역에 시달렸던 이들은 전쟁이 끝나도 고국으로 귀국하지도 못한 채 이역만리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고국에 돌아온 피해자와 유족 또한 개인적으로 나라 잃은 설움도 모자라 사실상 정부에서도 괄시받는 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역사적 조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는 사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가 사망 등으로 급감하고 있는 가운데 여수지역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역사를 기록해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나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조례가 제정됐으나 여수시는 국가사무라며 관련 예산을 한 푼도 세우지 않는 등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주종섭 의원.
주종섭 의원.

여수시의회 주종섭 의원은 지난달 26일 제208회 임시회 10분 자유발언을 통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생존자 및 유족들을 통한 구술조사와 함께 관련 각종 자료 수집 등의 실태조사가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주 의원은 “일제에 의한 우리 국민들이 당한 피해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가해자인 일본의 진실 되고 올바른 사과는 아직도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주 의원은 이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임종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한분 한분이 돌아가시면서 이제 그 피해를 등록하고 신고한 사람 중 열다섯 분만 생존해 있다”라고 했다.

주 의원은 “일제 강제동원으로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피해 생존자는 2019년 1월 4034명, 2020년 1월 3140명, 2021년 1월 2400명에 불과하다”라며 “지난 1년 사이 740명이 돌아가셨다. 해방 후 긴 시간이 흐르면서 생존자 수가 급속히 줄고 있다”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주 의원은 “어린 나이에 동원된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도 90세 안팎인데다 군인, 군무원, 노무자로 동원된 남성 피해자들도 90대 중·후반으로 대부분 연로하고 건강이 악화돼 요양원 등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일본 교토시 옛 신오타니광산이 있던 단바에 세워진 단바망간기념관의 노동자상.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던 150만 명의 조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유일한 시설이다. (사진=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카페)
일본 교토시 옛 신오타니광산이 있던 단바에 세워진 단바망간기념관의 노동자상.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던 150만 명의 조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유일한 시설이다. (사진=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카페)

여수지역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는 2000여 명에 가까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7년 강제동원 피해자를 접수·조사한 결과 여수에서는 1941명으로 나타났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 유족단체인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 한국유족회에 따르면 1941명 가운데 현재 4명이 생존해 있으며, 이중 2명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 중이다.

이에 대해 주 의원은 “근현대사의 아픈 질곡을 견디며 살아왔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실태조사와 함께 이들에 대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주 의원은 이어 “정부의 제도적 지원정책과 국제적 활동은 물론 여수시도 강제동원 피해자 실태조사와 지원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여수지역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등을 지원하는 조례가 제정됐으나 여수시는 올해 관련 예산을 한 푼도 편성하지 않아 의지 부족과 함께 조례 또한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해 여수지역 강제동원 피해자 조사 및 기록관리 방안 등에 관한 토론회가 추진됐으나 예산 부족과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열리지 못했다.
 

강제동원 기록구술집 '배고픔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하얗게 핀 가시나무 꽃 핥아먹었지' 표지.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강제동원 기록구술집 '배고픔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하얗게 핀 가시나무 꽃 핥아먹었지' 표지.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여수시의회는 지난해 5월 주종섭 의원이 발의한 ‘여수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피해자 대상은 만주사변에서 태평양전쟁까지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돼 피해를 입고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로 결정된 사람이 해당된다.

조례는 여수시에 주소를 둔 피해자와 유족 단체가 피해자 지원 관련 사업을 추진할 경우 예산 범위 내에서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지자체가 △ 강제동원 희생자 추모를 위한 조형물·동상 등 기념물 설치·지원 및 관리사업 △ 강제동원 피해와 관련한 문화·학술 및 조사·연구 △ 피해자 복지 및 인권 증진 △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조사 등 대일항쟁기 관련 국제 협력 △ 제1호부터 제4호까지의 사업의 시행을 위하여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 등을 시행하거나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를 위해 여수시장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인권 증진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주 의원은 “역사는 지나간 일이지만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다”라며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미래를 향한 이정표가 되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수시가 실태조사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기록이 여수시립박물관에 전시 보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보조금을 집행할 자격을 갖춘 관련단체가 없는 상황”이라며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은 국가사무이며, 장기적으로 검토할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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