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도 벚꽃 명성, 여수밤바다 만큼 대단
여수 장군도(將軍島)의 벚꽃 이야기
예로부터 해안가나 섬 지방에서는 음력 2월은 바람의 신인 영등할멈을 받드는 풍속이 전해지는 달로, 기압골의 이동이 빈번해 날씨의 변덕이 심해서 어부들은 바다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바다에서는 2월 보름을 영등사리라고도 부르는데 이때(3월 28일 15:00 간조)가 되면 1년에 딱 한두 번 돌산에서 장군도(將軍島) 로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모세의 길이 열립니다.
중앙동 1번지에 있는 섬 ‘장군도’의 옛날 이름은 ‘죽도’였는데 여수 8경중 제1경이었지요. 죽도청풍(竹島淸風 : 장군도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으로 여수 시민의 사랑을 듬뿍 안은 섬입니다. 혹자는 오동도를 1경이다 했는데 오래전에 오동도는 죽도였지만 무명의 섬이었습니다.
‘여수군 읍지’에 이량 장군이 장군성을 세웠다는 내용과 함께 “그 후 도적이 감히 남쪽 백성을 엿보지 못했다. 그래서 장군도라는 이름의 빗돌을 세워 공덕을 기렸다”라고 기록으로 전해집니다. 장군도와 돌산도 사이를 연결하는 수중제방인 방왜축제(防倭築堤)를 장군성이라 하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1916년 3월 돌산군 경호면에 속했던 장군도는 일본인들로 구성된 여수재향군인회에서 벚꽃나무 1000주와 단풍나무 500주를 심고 비료를 줘서 이 섬을 벚꽃의 명소로 가꾸었습니다. 20여년 세월이 지난 후에는 온통 벚나무로 둘러싸이게 되자 해방 이후까지도 장군도 벚꽃의 명성은 조선반도 내에서 지금의 여수 밤바다만큼 대단했습니다.
나들이 철이면 여수읍 당국에서는 장군도를 건너는 도선과 행사 준비에 분주했고 도선장의 부두에는 일요일이면 2000여 명이 넘게 찾아와서 아침부터 큰 혼잡을 이루며 사람들의 물결이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고 전합니다.
이후 1960년대까지도 신문지상에서는 장군도의 봄 벚꽃 소식이 우리나라의 봄을 알리는 근원지로 명맥을 유지해왔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화려 했던 그 명성이 잊혀 가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 신수여산지, 여수군 읍지, 동아일보, 박종길의 역사의 향기가 흐르는 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