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회장 ‘갯장어 요리’ 국내에 처음 소개

갯장어(하모) 뎃침(샤부샤부) 요리.
갯장어(하모) 뎃침(샤부샤부) 요리.

여름‧가을 보양식의 으뜸 ‘갯장어’

갯장어는 여수에서 참장어 또는 일본말로 하모(ハモ)로 불린다. 개처럼 이빨이 날카롭고 성질이 사나워서 잘 물기 때문에 갯장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갯장어는 일본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일제강점기엔 잡히는 대로 일본으로 보내져 조선인은 맛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조선인이 잡지 못하도록 통제어종으로 지정할 정도였다.

갯장어는 수심 20~50m의 모래바닥과 암초가 있는 곳에 주로 산다. 낮에는 바위틈이나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활동을 시작해 물고기나 낙지, 개불, 쏙, 조개류를 잡아먹는다. 갯장어는 연승(주낙)과 통발 외에도 저인망이나 안강망을 통해서 잡기도 하지만 그물에 잡힌 갯장어는 상처가 많고 품질이 떨어져 데침 요리(유비끼, 샤브샤브)나 횟감으로는 쓰지 않는다. 아무리 선도가 좋아도 죽으면 데침‧회(사시미) 요리가 불가능하다. 갯장어는 맛과 영양이 좋아 특히 여름 보양식으로 단연 인기다.
 

갯장어 회(사시미).
갯장어 회(사시미).

양식이 안 되는 갯장어의 요리로는 데침(유비끼, 샤부샤부), 회(사시미), 물회, 된장 바른 통구이, 통장어탕 등이 있다. 갯장어 데침은 먼저 무, 양파, 생강, 갯장어 뼈를 넣고 끓이다 소금을 넣고 다시 두 시간여 동안 끓인다. 이런 육수에 부추, 버섯, 대추, 대파, 무 등을 넣고 끓이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놓은 갯장어를 살짝 데쳐서 양파와 깻잎 등으로 싸서 먹는다. 이때 된장이나 고추냉이 양념(와사비)을 곁들인다.

데침은 일본 사람들이 즐겨 먹는데 너무 비싸 서민들이 아예 먹을 수 없는 요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마쓰리(축제) 때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도 하모를 가족과 요리를 해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여수연승협회 박순민(68) 회장은 “갯장어를 우리처럼 데침이나 회로 먹으면 일본 사람들은 뒤로 자빠진다. 그만큼 비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여수 사람들은 갯장어를 가을철에 뼈가 억세 지고 기름기가 많다고 잘 안 먹는데, 영양분을 충분히 축적해서 동면에 들어가기 직전인 9~10월에 많은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어 사실 이 시기가 가장 맛이 있을 때다. 전어도 가을에 가장 맛있지 않냐”고 말했다.

갯장어 요리로 유명한 경도 어민들은 물회와 된장 바른 통구이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물회는 배에서 작업 중 바쁠 때 점심으로 간단하게 밥을 비벼 먹었으며 된장 바른 통구이는 주로 저녁 식사 때 즐겨 먹었던 요리다. 박 회장은 “갯장어를 통째로 칼집을 내 양념 된장을 발라서 구이를 하면 정말 맛있다. 한 번 맛을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붕장어(아나고) 회 말고 갯장어 회도 맛있다. 뼈가 세서 얇게 썰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힘들어 요즘은 잘 안 해 먹는다”고 했다.
 

갯장어.
갯장어.
갯장어 주낙을 정리하는 어민.
갯장어 주낙을 정리하는 어민.

갯장어잡이는 시간과 싸움, 물때·미끼 선도 중요

갯장어는 연승(주낙)을 이용해 봄여름에 잡는다. 여수연생협회 소속 어민들은 매년 5월 5일 처음 출항한다. 400m 낚싯줄에 낚싯바늘 120~150개 정도를 다는데 이를 ‘한 통’이라고 한다. 낚시를 바구니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끼우고 어민들은 채비가 된 주낙을 가지고 오후 2~3시에 바다로 나간다. 미끼는 전어와 전갱이를 사용하는데 이때 선도는 어획량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물때를 보고 갯장어가 잘 잡히는 어장에 도착하면 시간과 싸움이 시작된다.

배가 전속력으로 가면서 긴 낚싯줄에 매달린 바늘마다 쉴 새 없이 미끼를 꿰어 바다에 넣는다. 날이 밝으면 연승을 차례로 건져 올린다. 잡은 갯장어는 바늘이 끼워진 채로 낚싯줄을 자른다. 날카로운 이빨 때문이기도 하지만 뺄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만큼 어업 현장이 바삐 돌아간다는 얘기다. 그리고 경매 시간에 맞춰 입항한다.

과거 서해안 영광 안마도 인근에서 조업할 때는 무역선이 갯장어 전량을 싣고 곧장 일본으로 갔다. 일본 사람들은 여수 갯장어를 최고로 쳐준다고 한다. 여수는 조류가 심하지 않다 보니 뼈가 세지 않아 부드럽고 기름기가 많기 때문이다.
 

제1회 갯장어(하모) 요리 축제.
제1회 갯장어(하모) 요리 축제.
제1회 갯장어(하모) 요리 축제.
제1회 갯장어(하모) 요리 축제.

경도 어민들, 전국 최초로 갯장어 요리 축제 개최
갯장어잡이 방법·요리·어민 생활 등 기록 남겨야

과거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했던 갯장어가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계기는 1995년 전국 최초 경도 어촌계 주관으로 개최한 참장어(하모) 요리 축제(추진위원장 박순영)였다. 일본에 의존하는 소비를 국내 시장을 개척해 어민들의 소득 증대와 갯장어의 다양한 요리, 여수 홍보가 목적이었다.

갯장어 요리를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하고 소개한 박순민 회장은 당시 무역선의 일본인들과 교류하면서 샤부샤부, 통구이 등의 갯장어 요리를 익혔다. 지금의 갯장어 요리가 여수 대표 음식으로 자리매김케 한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박 회장은 1989년 여수에서 갯장어 요리를 가장 먼저 상용화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축제로 홍보 효과는 컸지만,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활어 상태로 장어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양식이 안 되니 그날그날 잡아서 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축제는 결국 몇 년 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여수연승협회 박순민 회장.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연승협회 박순민 회장. (사진=마재일 기자)

박 회장은 “일본에 수출할 당시에는 국내 갯장어 가격이 낮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갯장어를 먹을 줄 몰랐고 어민들 처지에서는 수출하면 가격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국내 수요가 많아진 데 비해 어획량은 부족하고 잡는 과정도 힘들다 보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류비, 부식비, 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실제로 어민들한테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갯장어가 매번 잘 잡히는 것도 아니다. 위치 선정이나 물때를 잘 맞췄을 때 말이지, 어느 날은 7~8kg 잡을 때도 있다”고 했다.

갯장어 어획량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는 기후변화 등의 영향도 있고, 마구잡이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박 회장은 “영광 안마도 인근에서 갯장어가 많이 잡혔다. 갯장어 한 마리를 올리면 꼬리를 물고 올라올 정도였다. 그런데 원전이 생긴 이후 장어가 사라졌다. 어민들은 바다 수온 상승을 원인으로 본다”고 했다.

과거 내수시장 수요가 없을 때는 잡힌 치어(갯장어)는 살려줬다. 그런데 수요가 늘기 시작하면서 치어까지 잡아버렸다. 어민들끼리 일정 크기 이하의 갯장어는 잡지 말자고 해도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돌아가는 양망기에 속도를 맞춰 주낙을 올리다 보면 사실 치어를 일일이 구분해 다시 방류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는 갯장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고령화 등으로 갯장어를 잡는 어민은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레 어획량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갯장어잡이를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물때와 갯장어 길목을 잘 알아야 하는 경험과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고된 일이다. 갯장어잡이를 이으려는 사람도 줄고 있다.”

박 회장은 협회 차원에서 갯장어잡이 방법이나 요리, 갯장어 어민들의 생활에 대한 사진이나 영상 등으로 기록을 남기는 방안도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여수연승협회 소속 갯장어잡이 어선은 57척 가량 된다. 가족끼리 하는 어민들까지 합하면 더 많다.
 

※ 자료 참고 :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섬문화답사기>, <바다맛기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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