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정치권·지역민의 간절한 마음이 모여 거둔 결실…이제부터가 중요”

민덕희 여수시의회 여순사건 특별위원회 위원장. (사진=최윤하 기자)
민덕희 여수시의회 여순사건 특별위원회 위원장. (사진=최윤하 기자)

지난달 29일 현대사의 비극인 여수·순천 10·19사건(여순사건)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73년 만에 사건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

민덕희 여수시의회 여순사건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여기까지 오기 위해 발 벗고 뛰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특별법 통과를 시작으로 지역 통합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 특위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여순사건 특별법이 이제 제정된 것에 대해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특별법이 제정됐다고 해서 박수치고 기뻐할 일이 아니라 차분하게 가야 한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내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특별법 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오는 10월 종료하면 새로 재구성해서 실질적으로 해야 할 것들을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 특위 활동 중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은.

여수시와 시의회, 유가족, 시민추진위원회와 함께 관심 가지고 동참했던 여수시민이 응집됐다고 생각한다. 특별법 제정 과정에 있어서 불협화음이 나면 안 된다는 마음에 시정부에 여수시와 함께 할 것이라고 뜻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 특위 활동하면서 가장 기뻤던 일은.

여순사건 특별법이 본회의에 통과된 것이다. 지난달 14일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국회 의원실을 일일이 방문해 설명해 드렸다. 이때 국민의 힘 이명수 간사께서 “여순사건은 여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사건이다. 민주당의 단독 법안처리에 있어 서운하다. 민주당이 마음 급하다 보니 그랬다고 하면 법안처리에 응할 계획이다. 이건 당론이기까지도 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고 국민의 힘도 여순사건이 국가 차원의 사건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을 느꼈다.

여기까지 오는데 주철현(여수갑), 김회재(여수을) 의원이 많은 도움을 줬다. 여수시의회에서는 동백꽃 시계 300개를 제작해 모든 국회의원에게 돌렸다. 이때 짐을 끌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유족회와 여수시, 시의회가 끈끈해졌다. 간절했던 마음이 모여 실효를 거둔 것으로 생각한다.

◇ 일각에서는 특위가 구성됐는데 왜 토론회를 열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토론회는 일부러 열지 않은 것이다. 여순항쟁, 학살 등에 대해서 의견이 첨예하게 다르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의견이 부딪히면 너희끼리 먼저 정리하고 오라며 진행을 안 한다. 특별법 제정이 시급한데 토론회를 열어 오히려 불협화음이 될까 봐 토론회는 진행하지 않았다.

◇ 특별법 제정이 여수시에 어떤 기여를 하게 될 것 같은가.

우리가 왜 분열해야 하는가, 옳은 일에도 엇박자를 내고 공격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지역 공동체성 복원을 고민하다 보니 해결되지 못한 여순사건이 우리를 어둡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의 한이 영적으로도 풀리고 보이는 사람들의 한도 풀리면 이를 통해 여수 발전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본다. 또 통합의 역사를 이뤄 이를 통해 공동체를 더 키울 수 있지 않을까.

◇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은.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작게는 특별위원회에서는 겨울철에 길거리 홍보할 때 아이들부터 여성, 노인, 유족회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작게나마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한다. 또 지역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인사드리는 시간도 가질 계획이다. 빠르게는 7월 중에 제주4·3을 견학 가려고 한다. 우리는 제주4·3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된다. 특별법이 만들어진 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고 숙의하는 과정들을 거치려고 한다. 또 토론 등을 통해 지자체가 해야 하는 역할은 어떤 것인지 논의도 해야 할 것이다.

◇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여순사건은 국가적인 것이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평화공원을 만드는 데 있어서 여기에 해야 한다, 저기에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힘의 논리가 작용해선 안 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리더들이 내가 더 공을 쌓았네 하면서 자기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반목과 갈등을 불러 특별법 제정의 의미와 취지를 퇴색시킬 수 있다.
 

※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일부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을 거부하며 발생한 사건으로 그 과정에서 많은 지역민이 희생됐다. 1949년 11월 전남도가 집계한 여순사건 인명 피해는 1만1131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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