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어둠이 내리고 있다
가족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슬그머니 일어나 카메라 가방을 들쳐 메고
현관문 을 나설 때면 뒤에서 무어라 걱정스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안개가 자주 생기는 이때쯤이면 늘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답답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얼마쯤 달리다보면 한적한 시골길이 나온다.
호랑산과 봉화산이 감싸고 있는 여수시 호명동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 호명동에는 전설처럼 호랑이 꼬리라는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
지난 여름철에 이곳에 들렀다가 들은 얘기를 되살리며 조금씩 조금씩 내 생각을
표현하다가 적게는 100년에서 많게는 300년이 넘는 수령 앞에서 엄숙해 진다.

문득 내가 너무 생각이 짧지 않나 하는 생각에 슬며시 작업을 멈춘다.
마을 어귀에서 불쑥 나타난 홍노인은
"이른 새벽에 웬 측량이여 "
" 보상은 언제나 받을라나 "
"이런 나무들이 예전에는 엄청 많았어. "
"개울 고친다고 씨멘트 쳐발라가지고 저것이 뭣이여 ?"
"시에서는 보존하다고 함시롱 보존은커녕..."
"다섯 번 정도 잎파리가 떨어져야 1년이 지난다고 하시는 둥
할 말이 많으신 듯 자꾸 뒤돌아보며 안개 속 논둑길로 사라진다.
그리고 보니 같은 수종이라도 어느 것은 다 자란 잎사귀이고,
어느 것은 이제 갓올라온 어린 잎사귀들이 하늘을 받치고 있다.
어린잎들은 안개에도 힘이 겨운 듯 파르르 떤다.

우리가 지금껏 어떻게 살아 왔는가.
사는 것이 많이 편해진 것에 비해서 잃어버린 것은 어떤 것이며
그 가치와 크기는 어떠한가! 또한 그것들이 우리세대에서만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후배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다.

선조들의 애환이 깃든 호명동 전설의 보고들이 시멘트와 아스팔트에 쓰러지는
순간에도 우리들은 생활이 편리해지길 바라고 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자연의 일부다.그것들이 있어야 우리가 있는 것이다 .
그것들이 없는 세상은 어떤 상황일까 하는 생각을 조금만 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집을 나설 때부터 머리가 개운하지 않았다. 어깨에 맨 짐 때문이 아니라
나무들을 생각하고 계획할 때부터 자리 잡은 앞날에 대한 걱정 때문이리라.
문명이 발달되면 될수록 인간만 잘 살면 된다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안개가 걷힌 잎사귀들 공간에는 어느새 공단에서 넘어 온 바람들이 메우고 있다.

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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