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편에선 미 연방대법관의 외침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긴즈버그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남녀에게 동등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미국 역사를 통틀어 어떤 법조인보다 더 치열하게 주장했다. 그녀는 남녀가 사회에서 동등한 입지에 서야 헌법이 모두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다." (본문 중에서)

미국 진보 진영의 상징이자 '젠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이며 연방대법원에서 최고령 대법관으로 재직해온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1933~2020)의 <긴즈버그의 차별정의>는 인간답게 잘 사는 세상에 대한 염원이 담긴 책이다.

유리 천장, 인종 차별적 발언, 성소수자의 권리, 젠더 감수성 부족, 차별 금지법…, 하루가 멀다하고 차별적인 뉴스로 이런 문구들을 접하며 사는 우리는 자연스레 의문을 마주하게 된다.

2021년에도 계속되는 이 질문과 고민을 수십 년 동안 세상에 물었던 사람이 바로 긴즈버그였다. 그녀는 대법관으로서, 한 명의 법조인으로서, 그리고 부당한 차별을 겪어본 여성으로서 모든 이에게 '동등한 법의 보호'를 적용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외쳤던 사람이다. 약자를 위해 변론하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동료들의 잘못을 지적함에 서슴지 않았다.

물론 늘 긴즈버그의 뜻대로만 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많은 사건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했지만, 그녀는 변함없이 주장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는 개인이라고.

이 책에는 수십 년 동안 법조인으로서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긴즈버그의 노력과 신념이 담긴 판결문, 의견서 등을 발췌해 담았다. 또 브라운대학교 교수 코리 브렛슈나이더의 해설을 통해 관련 사건들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책속의 글은 멀게는 40년 전, 가깝게는 7년 전에 쓰였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에게 여전히 깨달음과 가르침을 준다. 그녀가 꿈꿨던 차별 없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평생 약자 편에서 목소리를 낸 작은 거인 긴즈버그는 단순히 한 나라의 법조인이 아니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대변인이자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은 사회인, 세계 젊은이들이 동경하는 어른이었다.

긴즈버그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이자 최초의 여성 유대인계 연방대법관이었다. 생전에 그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여성 지도자에 목말라하던 전 세계 여성들에게 화제가 됐고 인생의 한 부분은 극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정의의 목소리였던 긴즈버그가 타계한지 1년이 지났다. 법조인이었던 그가 누군가의 변호를 도우면서 혹은 대법관으로서 재판에 참여하면서 작성했던 문서 중 의미 있는 것들을 골라 책으로 엮었다.

1971년 성차별적 법을 철폐한 판례가 없던 상황에서 승리를 이끌어 낸 '리드 대 리드' 사건의 항소인 의견서부터 미국 재판사에 길이 남을 '미국 대 버지니아' 재판의 판결문, 인종 차별을 막기 위해 지속된 투표권법 규정을 없애려던 셸비카운티 대 홀더' 사건의 소수 의견 등 총 13개 사건 기록을 담았다.

평생의 신념과 원칙을 논리 정연하게 풀어낸 긴즈버그 문장들은 수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읽는 사람 안에서 숨을 쉰다. 인간의 보편적 평등과 소수의 권리가 여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시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최경필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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