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학 부재 등 인문학 분야의 연구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여수에서 지역 역사와 사회·문화·예술·자연환경 등 인문학적 관점에서 연구를 통한 여수의 정체성과 정신을 확립하기 위한 ‘여수학연구원’이 첫발을 내딛으면서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남대는 지난 16일 여수캠퍼스에서 ‘글로컬 시대 여수학 무엇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여수학연구원 창립 심포지엄을 열었다. (사진=유승완 대학생 인턴기자)
전남대는 지난 16일 여수캠퍼스에서 ‘글로컬 시대 여수학 무엇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여수학연구원 창립 심포지엄을 열었다. (사진=유승완 대학생 인턴기자)

전남대 여수학연구원 창립 심포지엄…‘여순사건 명예회복‧정체성 확립’
지역연구 거점 기관 성장 위해선 연구인력 확보‧재정지원 뒷받침 돼야

지역학 연구는 특정 지역의 역사와 삶의 방식, 그리고 가치와 문화를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 뿐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과 정신을 확립하고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데서 출발했다. 1995년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지역마다 정체성 확립과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일부 지자체는 상당한 학술적 진전을 이뤄내기도 했으며 지역을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여수시는 지난 2011년부터 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을 배우고 답사하는 여수학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으나 여수만이 가진 고유한 지역성, 즉 ‘여수다운 것’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관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인문대학 부재 등 인문학 분야의 연구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여수에서 지역 역사와 사회·문화·예술·자연환경 등 인문학적 관점에서 연구를 통한 여수의 정체성과 정신을 확립하기 위한 ‘여수학연구원’이 첫발을 내딛으면서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남대학교가 여수캠퍼스에 여수의 역사와 문화, 사회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여수학연구원’ 창립을 추진하고 나선 것. 특히 사건 발생 74년 만에 특별법이 제정된 여순사건을 제1연구과제로 삼은 여수학연구원은 여순사건의 진상규명 활동을 통해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은 물론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남대 여수학연구원의 설립과 운영 방안. 
전남대 여수학연구원의 설립과 운영 방안. 

전남대는 지난 16일 오후 2시 여수캠퍼스 산학연구관 국제회의실에서 ‘글로컬 시대 여수학 무엇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여수학연구원 창립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은 여수학연구원 개원준비위원장인 최창호 물류교통학과 교수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정성택 총장의 환영사, 권오봉 여수시장과 전창곤 시의장의 영상 축사가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는 여순사건 진상규명 활동을 통해 지역학으로서 미래세대에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으며 연구원의 설립과 정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학과 지역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개진됐다.

여수학연구원 개원준비위원장인 최창호 물류교통학과 교수는 “여수학연구원의 출발로 여수지역과 관련된 다양한 학문 분야 연구를 통해 지역민의 삶을 진단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해 미래의 발전 동력을 찾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성택 총장은 “여수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지역민이 합심해 나라를 구한 곳이며, 여수산단은 우리나라가 세계 10위 수출대국 발판이 되는 등 역사의 중요한 장면마다 어김없이 이름을 올려놓았다”면서 “여수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여수 만들기에 전남대가 지역민과 함께 하고자 여수학연구원을 창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수학연구원의 출범과 미래’를 주제로 한 제1세션에서 김병인 전남대 사학과 교수는 “여수학을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연구주체와 향후 로드맵이 마련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여수학을 다룰 수 있는 지역학 연구자의 동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남대 여수학연구원의 설립과 운영 방안. 
전남대 여수학연구원의 설립과 운영 방안. 

박석강 전남대 글로벌비즈니스학부 교수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연구수행을 위해 지역학 진흥을 위한 직접적이고 제도적인 법적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부산시, 대전시, 전주시, 천안시, 용인시, 나주시 등은 조례를 제정해 지역학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여순사건과 여수학’ 주제로 열린 제2세션에서 임송자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교수는 “역량을 갖춘 연구자나 활동가들이 나서서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더 나아가 여수학연구원의 위상을 정립해 지역의 정체성 확보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여순사건특별법 통과를 계기로 여순사건 진상규명 활동을 통해 여수지역을 비롯한 전남 동부지역민의 역사적 트라우마도 극복되길 기대한다”며 “동시에 이는 지역학으로서 미래세대에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지역학 이미지 환골탈태…혁신적인 지역학 상 도출해야
여수, 인구감소‧산업구조 변화 대응 방향 등 원론적 연구 절실

이어 최정기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종합토론에서는 노영기 조선대 기초교육대학 교수, 정경운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정명중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교수, 이연숙 전남대 사학과 박사, 최창호 전남대 물류교통학과 교수가 참석해 여수학연구원의 발전 방안 및 여순사건과 여수학에 대해 논의했다.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 (사진=뉴스탑전남DB)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 (사진=뉴스탑전남DB)

노영기 교수는 “세계사적으로 볼 때 여순사건은 냉전이 실제로 적용된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여순사건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학으로서의 여순사건 또는 지역학에서 여순사건이 차지하는 의미와 향후 전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경운 교수는 여수학 연구의 범주와 연구원의 성격을 분명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대부분의 지역학연구소가 정책과학까지 포괄하지 못하고 순수과학 범주에 머무르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재정적 문제 때문”이라며 “그러다보니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 연구 성과를 도출해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대학과 지역사회가 매칭 방식으로 재원을 출연해 공동으로 운영하는 연구원으로서의 성격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 교수는 또 “현재 지역 정책연구를 전담하는 광주전남연구원이 있지만 광역단위를 다룬다는 점에서 ‘여수’의 현안을 특정적으로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여수학연구원은 대학과 지자체 두 주체가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이와 함께 “연구원이 순천이나 광양, 광주가 아닌 ‘동진전략’적 사고를 통해 영남과 호남을 잇고 연대할 수 있는 중간 거점 기관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통한 미래 위상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정명중 교수는 “지역학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학술적이고 치밀한 전략적 판단을 통해 기존의 지역학 이미지를 환골탈태하는 혁신적인 지역학의 상이 도출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연구의 지속성과 유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구 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지역학에 대해 소명의식이나 흥미를 가진 학문 후속 세대를 찾기 어렵다.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무장한 참신하고 발랄한 학문 후속세대를 지역학으로 유인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메리트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순사건 당시 반군 협력자 색출을 위해 진압군이 주민들을 학교에 집결시키고 있다. (사진=칼 마이던스. LIFE)
여순사건 당시 반군 협력자 색출을 위해 진압군이 주민들을 학교에 집결시키고 있다. (사진=칼 마이던스. LIFE)

이연숙 박사는 “그동안의 여순사건 연구 경향을 살펴보면 국가폭력 문제, 빨치산 활동, 그리고 기억과 재현 부분에 연구가 집중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여순사건 관련 사람들, 계급·성별,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이어 “봉기군과 진압군, 우익과 좌익으로 양분할 수 없는 가해자의 여러 층위와 구체적인 폭력의 진행 과정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고, 피해자에 있어서도 여순사건 발생 당시의 피해 현황에 그치지 않고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지역민으로 얽힌 지역공동체의 관계망 속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발생했을 트라우마와 문제들에 대해서도 천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현재 여순사건 연구는 단일한 사건사를 넘어 대한민국과 지역의 역사, 사회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연구과제로 나아가고 있다”며 “독자적인 연구영역 구축과 함께 국가폭력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의미와 지향을 위해 여순사건 연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와 함께 현재까지의 연구 대부분이 역사 분야 중심으로 진행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며 향후 여순사건 연구에 있어 문학, 예술, 사회학 등 다양한 시각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아가 분과 간 교류와 연계를 통한 다층적인 연구의 활성화 방안 모색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재 약 50여 개에 이르는 단독 논문들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연구자의 폭은 좁은 편”이라며 “향후 여순사건에 대한 1차 자료의 수집·DB화 작업은 물론 연구자의 유입과 지속적인 연구 활동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여수사건 관련 유적지 보존과 활용 문제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의 유적지 보존 문제에서 보듯이 쉽지 않다”면서 “여순사건 교육, 지역민과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도 주요한 문제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창호 교수는 “여수학연구원이 지역연구의 거점 기관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연구인력 확보와 조례 제정 등을 통한 대학과 지자체 등 관련기관의 안정적인 재정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이어 “광주캠퍼스와의 협업 체계 구축, 제1연구과제인 여순사건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유족회와 단체, 다른 연구 기관 등과 공동 연구체계 구축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특히 “여수는 인구감소 문제,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한 대응 방향 등 원론적인 연구가 절실한 상황이다”고 강조했다. 지방 소멸 위협 속에서 지역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부동산과 자산 양극화, 관광산업의 활성화와 이에 따른 투어리즘 포비아(관광공포증), 섬 지역의 난개발 해소와 거주민 정주여건 개선, 교육환경 경쟁력 저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환경 변화에 따른 여수산단의 환경개선 문제 등 여수학연구원이 장기적으로 다뤄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여수학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마재일 기자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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