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웅 시인/스마일치과 원장
김정웅 시인/스마일치과 원장

지방 선거가 끝났다. 과거 선거일 다음 날 출근해서 직원들과 으레 나누던 아침 인사는 “투표는 잘 했느냐?”였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질문조차도 공휴일로 지정되어서 휴진까지 했는데 유권자로서 의무를 다 했는지 직장 상사가 확인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러운 형편이다. 직장에서도 젊은 직원들과 나이가 든 직원들과의 정서적 차이를 오히려 윗사람이 먼저 신경 써야 하는 합리적인 변화가 현실 삶에 녹아들고 있는 참 시대(?)에 살고 있다. 바람직한 변화지만, 과거 선배나 상사들의 소위 꼰대적 가치관에 휘둘리며 살아온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제는 과거 꼰대 분들의 연령대에 진입한 사람으로서 꼰대 노릇 한 번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사회가 급 성숙해져가는 분위기가 조금은 섭섭하다고 느끼는 건 비단 필자 뿐만은 아니리라.

지난 지방 선거에서 우리 지역은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해석은 여러 면으로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선거 다음 날 비교적 편한 몇몇 단골 환자분들에게 조심스럽게 여쭈어보았다. 투표는 하셨는지, 안 하셨다면 왜 기권하셨는지…….

표본이 몇 분 안 되는 비전문적인 동네 여론 조사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다. “뭐 기대할 게 있어야죠? 뻔한 결과인데 투표할 의미가 있나요?”, “공천 과정에서 예비후보들끼리 선거 다 치렀던데, 우리처럼 권리당원도 아닌 일반 시민 유권자들에게 후보들이 관심이나 있을까요?”, “눈에 띄는 능력이 엿보이는 새로운 사람도 없고.”

필자는 투표는 했지만 모두 공감되는 말이라는데 반기를 들 명분 또한 없었다. 이번 선거로 인해 많은 유권자들의 지지와 기대를 품고 탄생한 지방 정부나 의회는 아니지만 당선인들은 일반 시민들의 이런 말들을 꼭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점점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시민들이 많아질수록 시민들이 지방 정부에 거는 기대나 희망도 사라져 갈 것이다.

코로나 상황으로 앞 다투어 지역민들에게 각종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 점수를 따려고 하는 풍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공약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요즘 유권자들은 생각보다 영리하다. 그 지원금들이 선출직 공무원이나 의회 의원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세금으로 쓰는 것이고 이런 식으로 안 쓰면 피부에 와 닿지 않은 명목으로 사용될 것이고 먹고 살기 힘든데 용돈이라도 받고 보자는 심리일 것이다. 안 주면 그냥 싫고 준다고 해서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코로나 유행 전 예산 문제로 지방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시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논리로 보류나 무시되었던 복지 정책들이 과연 불가능한 문제였는지 다시 되돌아 볼 기회도 되었다.

작년에 지역 언론에 여수시의회 의원들의 점심, 저녁 간담회 등에서 쓰인 식비 등의 지출 내역이 공개된 적이 있었다. 과연 사적인 모임에서 개인 회비로 운영되어 졌다면 합당한 식사 비 지출인지 기사를 읽은 독자라면 정치인들에게 염증을 더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반 시민들은 점심으로 국밥 한 그릇, 김치찌개 한 그릇이면 족하다. 점심시간이 한 시간 남짓인데 점심 때 고기 집이나 한정식 집을 가는 것 또한 비용을 떠나 시간적 사치다. 물론 회의를 하셨다고 하는데 넓고 좋은 의회 사무실을 놔두고 근무 시간이 아닌 휴게시간에 거창한 정찬을 드시면서 간담회를 식당에서 점심부터 긴 시간 했어야 했는지.

기사가 나간 뒤에도 어느 의원 한 분도 제대로 된 해명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오전의 정기 의회 활동 후 의원님들끼리 현실 생업에 매달리는 일반 시민들처럼 간단한 점심으로 짧게 친목을 할 수도 있고 가끔은 본인들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불러서 비싼 한우를 대접했다면 얼마나 멋졌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섬 / 정현종 전문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다. 2행 한 연으로 이루어진 아주 짧은 시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로 알고 있다. 이 시도 독자에 따라서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 시의 평가와 해석은 창작한 시인의 것이 아니라 오롯이 독자의 것이다. 고독한 사람에게는 섬은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교두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대인 관계에서 지친이 에게는 군중 속에서 잠시 나오고 싶은 피난처와 같은 장소가 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신철규 시인은 그의 첫 번째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의 자서에서 시가 절벽에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을 잠깐 반걸음 물러서게 하는, 문득 뒤를 돌아보게 하는 시대적 사명을 다 하기를 소원한다고 썼다.

이번에 여러 공약들을 들고 시민들과 소통하고 봉사하는 일꾼이 되겠다고 유세 기간 중 무수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고 당선된 분들에게 바란다. 아무쪼록 섬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검토하고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을 경청해서 거시안적으로 우리 지역을 이끌어 나가시기를 바란다. 섬과 섬 사이에 다리가 필요할 수도,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안건이 최종 결정된 이후로 소외되거나 힘들어 하는 시민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 이 분들에게는 시가 우리에게 잔잔한 위로가 되어 주듯 당선인들이 맑은 시가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

4년 뒤에는 지방 선거일 뒷날 출근해서 직원 분들에게 “다들 투표 잘 했습니까?”라며 당당하게 인사를 건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아무도 눈치 못 채는 꼰대적 미소와 함께.

김정웅 시인/스마일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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