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베타나아복지재단 이사장







 

‘장애인의 날’ 행사가 여기저기서 시작되었다. 4월 20일이 내일 모레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31회째 맞이하는데 과거에 비하면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은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 차별과 멸시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본인은 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장애인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장애인단체에서 봉사하기에 많은 장애인들과 일반인들을 만나게 된다.



지난 달, 어느 지인의 초대로 저와 저희 기관에 관심이 많다는 어느 단체의 밤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처음엔 나의 장애에 대해서, 장애아동들에 대해서 마치 유명인사를 둘러싸고 기자들이 인터뷰하는 모양으로 나에게 마구 질문을 퍼부었다.

장애인들의 어려움이나 시설의 운영에 대한 질문보다 장애인(아동)에 대한 얘기뿐이었지만, 쉽게 얘기를 해 주고 분위기도 바꿀 겸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장애인은 어느 영역이 부족(불편)한 것만 빼고는 여러분과 아무 차이가 없다면서 짐짓 유쾌한 척했다. 잠시 생각해보니 모두가 나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거나하게 취한 어느 분이 “여러분 장애아동들을 격려하기 위해 후원금을 모읍시다.” 하고 호탕하게 외쳐댄다.

이어서 박수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노래와 큰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나에 대한 동정심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했다.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친한 사람들 끼리 여기저기 모여 앉아 추억담을 늘어놓기에 한참이었다. 후원금을 걷자고 소리쳤던 분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겠다던 지인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해 다른 분이 빈 택시를 잡아주며 나를 태워주고는 내 손에 지폐 몇 장을 쥐어주었다.



서로 간에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했고 장애인 손님이 함께 했다는 것마저 잊어버린 양 모두들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돌아오는 택시 속에서 잠시 조금 전의 모임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호기심이 동정심으로 바뀌더니 무관심으로 끝나 씁쓸한 감을 지울 수 없었다.



정중하고 예의가 바른 비장애인들과의 모임에서도 자주 이런 개운치 못한 마음을 느끼곤 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시각은 대체적으로 처음엔 호기심, 두 번째는 동정심, 끝에는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패턴이다.



울프슨 버거는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조사하여 그들이 어떻게 장애인을 정형화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첫 번째는 인간 이하의 동물, 두 번째 공포의 대상, 세 번째 조소의 표적, 네 번째 동정의 대상, 다섯 번째 자선의 짐, 여섯 번째 영원한 아이, 일곱 번째 환자, 여덟 번째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는 존재, 아홉 번째 위험적인 존재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영원한 아이’라는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은 항상 미약하고 덜 성숙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있어 그들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는 참으로 중요하다. 개개인의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무리지어 이미지를 평가받을 때 그 중요함은 더 커진다.



이런 때는 흔히 장애인 각자의 개성은 존중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인격마저 평가절하 된다. 긍정적이기 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크게 부각되는 것이다.



울프슨 버거가 밝힌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언제쯤 사라질까? 막연한 희망일까, 아니면 영원한 숙제일까?



어제는 졸업한 지 40년이 넘은 고등학교 동창모임에 다녀왔는데, 오십을 지나 육십을 넘겼어도 고등학교 동창들 간의 모임은 항상 즐겁다.

언제나 그랬듯이 삶의 고통이나 지병 따위는 마주잡은 손길과 부딪치는 술잔소리에 다 날아가 버린다. 정겨운 욕소리와 별명들이 마구 난무하고 마치 고등학교시절의 교실처럼 요란하다.



이러한 분위기가 좋아 유일하게 결석하지 않고 참석하는 모임이지만 장애인을 친구로 둔 동창들은 나에게 뿐 아니라 다른 장애인에게도 호기심으로, 동정심으로, 무관심으로 대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숙성된 술처럼 오랜 친구는 굳이 아니더라도 진정한 친구는 어려울 때 도울 줄 알고 허물을 용서하는 아량과 관용, 신의가 있어 벽도 없고 장애, 비장애도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내 자신의 친구들 중에 한명은 장애인, 장애아동이나 장애청소년이 친구라면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사라지게 될 것이고 따라서 장애인의 날도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정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직장이나 거리, 공공장소에서 휠체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세상, 장애인들을 더욱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공정한 사회의 기본은 기회균등과 사회적 약자 보호 및 우대에 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하신지!

저작권자 © 뉴스탑전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