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법 6조 지방의회 의원 후원회 제한
헌재 “음성화 우려‧평등권 침해” 헌법 불합치
“후원회 난립 혼란야기, 주민 부담가중 위험”

▲ 지난 7월 제8대 여수시의회 개원식.(사진=여수시의회)
▲ 지난 7월 제8대 여수시의회 개원식.(사진=여수시의회)

도의회나 시의회 의원 등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후원회를 허용하지 않는 정치자금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오면서 지방의원도 국회의원이나 단체장들처럼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헌법재판소는 24일 서울 종로구 대심판정에서 강용구 전 전북도의원 등이 구 정치자금법 6조와 같은 법 제45조 1항에 대해 낸 위헌확인 소송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정치자금법 6조는 후원회를 지정할 수 있는 사람을 ▲ 중앙당(창당준비위원회 포함) ▲ 국회의원(당선인 포함) ▲ 대통령 선거 후보자·예비후보자 ▲ 대선 당내 경선 후보자 ▲ 지역구 총선 후보자·예비후보자 ▲ 당 대표 등 경선 후보자 ▲ 지방의원 후보자·예비후보자 ▲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후보자로 규정한다.

지방의회 의원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으며, 지방의원 선거 후보자 및 예비 후보자에 한해서만 후원회를 둘 수 있다. 이 때문에 지방의원만 후원회를 금지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같은 법 제45조 1항은 후원회 설치 대상이 아닌 사람이 정치자금 기부 목적의 후원회를 운영한다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도‧시의원인 청구인들은 지방의회 의원을 후원회 지정권자의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는 해당 법조항이 지방의회 의원과 국회의원을 자의적으로 차별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 지난 7월 열린 제12대 전라남도의회 개원식 모습. (사진=전라남도의회 제공)
▲ 지난 7월 열린 제12대 전라남도의회 개원식 모습. (사진=전라남도의회 제공)

헌재는 후원회 제도는 유권자 스스로 정치인을 후원하도록 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고 후원회 활동을 통해 후원회 또는 후원회원이 지향하는 정책적 의지가 보다 효율적으로 구현되도록 하며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1980년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이 전부 개정되면서 후원회 제도가 도입된 이래 후원회 지정권자의 범위는 계속 확대돼 왔고, 그에 따라 정치자금의 투명성도 크게 제고됐다고 했다.

또한 지방의회 제도가 발전함에 따라 지방의회 의원의 역할도 증대됐는데, 지방의회 의원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원활한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지방의회 의원들에게도 후원회를 허용해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지방의원은 주민의 대표자이자 지방의회의 구성원으로서 주민의 다양한 의사와 이해관계를 통합해 지방자치단체의 의사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므로 이들에게 후원회를 허용하는 것은 후원회 제도의 입법목적과 철학적 기초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치자금법은 후원회의 투명한 운영을 위한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으므로 지방의원의 염결성(청렴성)은 이런 규정을 통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며 “후원회 지정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자금 모금을 음성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현재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의회 의원에게 지급되는 의정활동비 등은 의정활동에 전념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의 정치입문을 저해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국회의원과 달리 지방의원을 후원회 지정권자에서 제외하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로서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반면 반대의견을 낸 이선애·이종석 재판관은 “정치자금법이 선거와 무관한 후원회 설치를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과거 수차례 불법적 정치자금의 폐해를 겪었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 것”이라며 “임기를 개시한 현직 정치인에게 후원회 설치를 인정하게 되면 현직자에게 후원금이 집중돼 다음 선거에서 공정하고 평등한 경쟁을 보장할 수 없고 소수의 고액 기부자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불법적인 유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두 재판관은 이어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은 모두 정치활동의 주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그 지위·성격·기능·활동 범위·정치적 역할 등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후원회 설치·운영을 허용할 필요는 크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방의원에게 후원회 설치·운영을 허용하면 대가성 후원으로 인한 비리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후원회 난립으로 인한 지역적 혼란이 야기되거나 주민들의 부담이 가중될 위험이 있다”며 “후원회 지정권자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는 입법자가 입법 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고 했다.

헌재는 오는 2024년 5월 31일까지 개선입법을 하도록 했다. 하지만 입법부가 법 개정을 하지 않으면 심판 대상 조항은 2024년 5월 31일 이후 효력을 잃는다.

후원회가 활성화할 경우 경제력이 부족한 의원들은 부담을 덜 수 있어 한층 더 적극적인 의정 활동이 가능해 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후원금이 의원과의 이해관계나 대가성에 의한 정치자금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결국 의원의 청렴과 후원회의 투명성확보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재일 기자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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