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세월 보내고 운전으로 인생 2막, 중증장애인을 위해 힘 쏟을 것"

▲전재수씨
▲전재수씨

국내 최초 하반신마비 1급 장애인 택시기사 전재수(70)씨. 그는 여수지역 곳곳을 손으로만 운전하며 손님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준다.

장애인 운전 보조장치인 핸드컨트롤러 수동 제어장치로 발로 하는 운전이 아닌 섬세한 손으로 브레이크와 속도를 조종하며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전재수씨가 장애인으로 운전대를 잡기 시작한 후 20년이 지난 현재 그의 삶과 희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내 최초 하반신마비 1급 장애인 택시기사

선천적으로 장애를 앓고 태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되는 비율이 훨씬 더 많다. 비장애인도 언제든지 장애를 가질 수 있는 장애인이 될수 있는 환경은 사회 곳곳에 놓여있다.  우연히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을 앓고 있거나 오늘이나 내일 불의의 사고로 누구에게나 몸의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눈이 안 보이게 되면 시각장애인, 행동이 느려지고 둔해지면 지체장애인, 귀가 잘 안 들리면 청각장애인.

전씨는 "지난 91년 특별한 원인도 없이 한순간 두 다리를 잃고 하반신이 마비되어 32년째 휠체어에 의지한 체 생활하고 있습니다. 재활치료를 2년 정도 하다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재활을 포기하고 희망의 끈조차도 놓고 싶었습니다. 이때 옆에 있는 아내와 두 딸을 보며 나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아야겠다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앞만 보고 달려왔던 거 같아요."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장애인 관련 법과 제도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 사회적으로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면서  장애인과 관련 법률이 제정되기 시작됐다. 현재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관한 법까지 제정 됐다.

1990년도 이전은 택시 운전를 하려면 1종 면허가 필요했다. 당시엔 그는 2종 면허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바뀐 법 중의 하나가 1급 장애인도 면허 1종도 취득할 수 있게 하는 법이 제정됐다.

90년대 이전은 장애인 관련법이 미비, 2000년대부터 사회적 관심으로 관련법 제정 잇따라

이때부터 전씨는 새로운 자신만의 희망을 만들어갔다. 그는 "1종 면허 따는 길은 절대 순탄치 않았어도 세상에 모든 장애인에게 한점에 희망이 되고 싶어 택시 운전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힘든 일도 많지만 택시 같은 경우 혼자 일을 하게 되고, 친절하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면 되니 택시를 선택하게 되었죠. 순리대로 1종 운전면허를 따고 택시 자격증을 따고 택시기사로 새 삶을 꿈 꿀 일만 남았었죠."

▲전재수씨가 한국장애경제인협회에서 지난 32년의 세월을 이야기 하고있다. (사진=오지선 기자)
▲전재수씨가 한국장애경제인협회에서 지난 32년의 세월을 이야기 하고있다. (사진=오지선 기자)

장애인이 겪어야 할 사회적 높은 벽, 여수한일교통 대표 만나 새로운 인생 2막

하지만 전씨 앞에 놓인 현실의 벽은 높기만 했다. 택시회사에 취업 하기 위해 회사란 회사는 다 돌아다녔다. 장애인을 고용할 경우 고용 장려금과 고용주에게 디양한 혜택등을 제시하며 문을 두드렸지만 하반신 지체장애인 택시기사는 전례에 없는 일이라 마냥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전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들은 택시업체 사장을 만나게 된다. "그 당시 1종 면허와 택시 자격증을 취득했는데도 불구하고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여수시 봉산동에 있는 한일교통에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첫 전례를 함께 만들어보자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씨는 몸은 힘들었지만 삶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12시간 동안 운전과 자유롭지 못한 생활로 인해 몸은 힘들었다. 그러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나 스스로 얻은 직장으로 행복을 느끼고 가족들에게 생활에 보탬과 부끄럽지 않게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어요."

"내 고용이 후회되지 않도록 열심히 일했습니다. 안전운전과 친절은 기본으로 일반 회사처럼 교대운전 하면서 열심히 살다 보니 2003년도 ‘국내 최초 하반신 지체장애인 택시기사’로 뉴스와 신문 등 다양한 매스컴에 노출이 되었어요. 그 계기로 한일교통과 다른 택시회사도 중증장애인 채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장애인 택시기사가 20여 명 가까이 취업이 되었어요."

"20년 전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낮았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나 자신도 잘 버티며 하고 있는 거 보면 신기할 정도입니다. 5년 정도 교대근무로 택시를 운행하다가 이후 꿈에 그리던 개인택시를 구매해 현재 15년 동안 여수시 곳곳을 누비고 있습니다."

간혹 삶을 포기하는 승객에게 그는 희망을 전해준다

간혹 승객 중에는 삶을 포기하고 현실을 도피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전한다. 

"하루는 손님이 택시를 탔는데 ‘괴로워 못 살겠다’고 ‘죽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이야기 하면 제가 먼저 제 마음을 오픈하죠, 나는 이런 사람이고. 지금까지 이렇게 살고 있다고 전하면 정적이 흐르다 마음을 바꿔 살아보겠다는 사람, 진짜 제 다리를 만져보는 사람 다 기억에 남습니다. 제 말로 인해 그분들의 삶이 바뀌었다면 그것만큼 더한 행복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에 눈에는 아직도 개선할 점들이 수두룩 하다.  "장애인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우리 시에서 많이 개선은 됐지만 아직도 불편한 점은 많습니다. 식당을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와 평지에 있는 식당만 갑니다. 좌식테이블일 경우 그냥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수시뿐만 아니라 많은 지자체에서 좌식에서 입식으로 테이블 교체 지원사업 해줘 사업자 부담은 덜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겐 밥 한 끼 편하게 먹게 지원해 줍니다. 좌식테이블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이런 사업이 확대 됐으면 합니다."

▲전재수씨가 휠체어가 없는 택시에 오르고 있다. 
▲전재수씨가 휠체어가 없는 택시에 오르고 있다. 

장애인으로서 택시 운전을 한다는 것은 한 두 가지의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교통사고 등 긴급 상황이 발생하고 어르신들이 무거운 짐을 덜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긴급 사항이나 예를 들어 제가 잘못을 해 사고가 났을 경우 먼저 달려가 사과를 하지 못하는 점이 죄송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또 할머니들이 장보고 짐을 실어달라고 할 때, 공항에서 물건 옮길 때도 제가 못 도와줍니다. 그게 제일 마음이 아픕니다." "화장실 해결입니다. 저뿐만 아니래도 다른 운수업자들도 생리현상이 제일 힘들 거예요. 소변은 통이 있어 걱정이 없는데 대변 같은 경우는 휠체어가 있는 집 위주로 갑니다. 20년 이상 운전을 해왔지만, 생리현상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죠."

그는 현재 자신과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장애인의 권익보호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저는 한국장애인경제인협회 여수지부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 협회는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있는 장애인에 한해서 장애인의 권익 보호를 위해 앞장서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60여 명의 회원이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고 장애인들에게 일반인들과 동일한 밝고 윤택한 삶을 이끌어 주는 협회입니다."

▲택시기사의 꿈, 개인택시의 꿈, 중증 장애일 일자리 창출의 꿈 을 다 이룬 그는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 
▲택시기사의 꿈, 개인택시의 꿈, 중증 장애일 일자리 창출의 꿈 을 다 이룬 그는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 

운전하는게 인생의 전부가 되는 날까지 시민들과 함께

고맙고 미안한 존재 아내와 더 나빠지지 않고 이대로만 유지하면서 건강하게 우리 가족을 위해 남은 삶을 바치겠다는 전재수씨.

"아무런 준비 없이 두 다리를 잃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택시기사라는 꿈을 가졌고, 더 열심히 살아 개인택시를 가져보는 두 번째 꿈을 가졌어요.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늘리기 위해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열심히 살아와 지금 현재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운전하는 게 즐겁고 내 인생의 전부가되는 날까지 여수시민과 함께 해 볼 생각입니다."

오지선 기자 newstop22@dbl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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