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배 몇 명이 알맞게 모인 술자리였다. 술맛이 유난히 달았다.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지만 가끔 삶에 지칠 때면 이렇게 긴장의 끈을 놓을 때가 있다.

‘2차’에 가선 노래도 불렀다. ‘아침이슬’을 불러야 한다고... 그렇게 술에 취해 꿈길을 헤매는데 누군가 파장을 선언했고, 누군가 대리운전을 불러줬고, 그렇게 차창 밖으로 흐르는 밤거리를 바라보았다.

“술 한 잔 해서 미안합니다.”
여느 때처럼 대리운전 기사에게 사과부터 했다. 누구는 팔자가 좋아서 술 먹고 다니는데 누구는 밤이 늦도록 고생하는 것 같아서...

집에 돌아와 초인종을 누른다. 아내와 아이들이 도열(?)을 한다. 그러면 아내를 안아주고, 두 아들을 안아주고, “아빠가 오늘 술 한 잔 했다”고 한다. 술 먹은 것이 무슨 벼슬이라고.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두 아들을 부른다. “너희들 이리와!”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지갑이 얇다. 아빠 체면 좀 세우고 싶었는데...

나보다 키가 훌쩍 더 커진 두 아들. 힘든 아빠에게 항상 용기를 주는 아이들. 만원짜리 한 장을 10만원짜리 수표 꺼내듯 폼을 잡고 건네준다.
착한 아이들은 그러한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고맙습니다!” 하며 나를 안아 준다. 기특한 녀석들.

그리고 나서 “엄마 오라고 그래!” 한다. 이 모든 장면을 바로 곁에서 뻔히 지켜보고 있는 줄 알면서... 그러면 아내는 “왜, 나도 용돈 주려고?” 한다.

아내에게도 만원짜리 한 장을 척 뽑아 준다.
“아껴 쓰면서 살림 잘 해!”
아내는 기가 차다는 표현을 고맙다는 말로 대신 한다. 그 마음을 내 어찌 모를까.

이렇게 3만원의 행사비를 지출하고 술 먹은 날의 모든 행사가 끝나면 나는 조용히 책상 앞에 앉는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이다.

술은 이미 다 깼고 아이들은 제각각 방으로 들어갔고, 낮에 돈을 벌어야 하는 ‘마누라’는 잠을 자겠다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천지가 고요한데, 희부연 달빛 아래 안심산의 능선만이 선연하다. 이렇게 모두가 잠든 이 밤에 나는 깨달았다.

여태껏 한 번도 맞이해본 적이 없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2011년의 여름이 성큼 내 곁에 와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책상에 앉아 내일 쓸 글을 생각한다. 허구헌날 너도 나쁜놈.. 그리고 너도 나쁜 놈.. 하고 있는 나도 나쁜 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서로 견해차가 있기 때문에 도시가, 사회가 시끄럽다는 것은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이 전제되지 않은 시끄러움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 밤에 생각한다.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시민의 이름을 앞세워 주장하는 그 논리가 오히려 시민들을 피곤하게 하고 지치게 한다는 것을 다들 모르는 눈치다.
역 이름 하나도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는 도시에서, 박람회라는 대사를 앞두고 갈등과 분열이 난무하는 도시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희망이라는 단어를 찾아야 할까. 시민들의 애달픈 꿈은 공허하기만 하다.

시민을 위한다는 지금의 견해차가 결과적으로 사회를 분열시키고 피폐케 함으로써 시민 모두를 고통 받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면 시민을 위한다는 그 명분을 조용히 내려놓기를 권하고 싶다.

생전에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비움’의 정신을 강조하셨다. 비움은 바로 ‘나’를 버리라는 것이고 하셨다. 나를 버리는 게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하셨다.

개인사도 그렇지만 역사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나를 버려야 소통할 수 있다. 나를 버리지 않은 상태에서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여수 지역사회에는 아직 소통이 없다. 여수 지역사회의 통합의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소통의 그 길을 가려면 제(諸) 세력들이 나 자신을 버려야 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권력욕, 소유욕, 명예욕을...

이제 우리는 새롭게 주어지는 백지위에 새 역사를 써나가야 한다. 그 역사는 무엇보다 그릇된 욕심과 미움을 내려놓고 사랑과 통합으로 가는 역사였으면 한다.

그리고 상대를 패자로 만들고 자신은 승자가 된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그것이 힘 없는 서민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어제 만난 여름밤, 나는 밤새도록 무언가를 해야한다, 해야한다, 해야한다는 무위한 생각을 반복하고 앉아 있었다. 아, 2011년의 여름밤은 내게 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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