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수필문학회 '민들레 홀씨' 제3집

④윤문칠 수필가 "꼬끼오 화음 소리"

중국 제나라 시절, 식객을 잘 대접하기로 유명했던 맹상군의 '계명구도(鷄鳴狗盜)' 일화는 유명하다. 진나라 소양왕이 맹상군의 인품에 반해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 했지만 신하들의 반대가 거세지며 맹상군의 목숨은 위기에 처했다. 

그때 위기를 탈출하는 데 닭 소리를 내는, 하잘것없는 재주라고 여겼던 잔재주를 부린 식객이 "꼬끼오"하고 수탉 소리를 내자, 아침인 된 줄로 착각한 수문장이 관문을 열게 되어 함곡관을 무사히 빠져나와 위기를 넘겼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감각적 표현으로 닭 소리를 흉내 낼 때 암탉은 "꼬꼬댁 꼬꼬", 수탉은 "꼬끼오"라고 표현한다. "갑자기 웬 닭 소리를 이야기하지?" 하겠지만 닭 소리 하면 맹상군을 많이 떠올리나, 필자는 우리 손녀가 생각나 닭 소리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인 손녀는 5~6세 때부터 짐승의 소리를 흉내 냈는데 성대모사가 달인 수준이다. 중등교직에서 정년을 하다 보니 손녀는 가끔 집으로 와 수학을 배우고 가는데, 가르쳐보면 창의적인 생각이나 행동, 잠재 능력 등이 뛰어남을 느낀다. "윤비야, 네 꿈이 무어냐?"하고 물으면 안과 의사가 되어 책을 볼 때 돋보기를 사용하는 할아버지 눈이 잘 보이게 치료해 준다는 기특한 말을 한다. 그러면서 뭐든지 열심히 노력할 거라는 이야기도 덧붙이고 그 밖에도 꿈이 20가지가 넘는다고 활짝 웃어 젖힌다. 손녀는 창작하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능인처럼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이야기하기, 피아노로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하여 "할아버지, 제목을 붙여주세요." 하는 것을 보면 놀랍고 가상하다. 

손녀의 특기 중 하나는 짐승의 소리를 성대 모사하는 것이다. 개, 소, 염소. 닭 등의 소리를 똑같이 모사하는데 듣는 이들은 웃음바다가 된다. 이번 명절에 돌산 봉양에 있는 조부의 묘를 찾았을 때 일이다. 건넛마을에서 "꼬끼오"하고 수탉 울음소리가 났다. 손녀가 익살스럽게 수탉 소리를 흉내 내며 크게 "꼬끼오"하고 같이 울어대자, 마을의 집집마다 닭들이 서로 "꼬끼오"하고 울어대고, 손녀도 덩달아 대결을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손녀가 한번 울면 건넛마을 닭이 울고, 또 손녀가 울면 닭이 울고. 계속되는 대결은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었고 "꼬기오!" 화음 소리로 같이 간 일행이 기뻐하자 손녀는 흡족한 마음이 들었는지 의기양양했다.

우리 조상들은 닭이 울면 잡귀가 도망간다고 생각했다. 또 중국에서는 닭이 새벽에 울지 않고 한밤중에 울어대면 우환이 있을 것이라고 해 그 닭을 죽이기도 했고, 수탉이 높이 울면 아침 기상 신호로 이용하기도 했다. 해가 뜰 때 닭이 우는 현상을 보고, 닭이 울면 해가 뜬다는 식으로 해석해 시간을 알리는 데 이용하였다. 닭의 울음소리는 어둠을 물리치고 빛을 부르는 소리로 해석되어 닭이 새벽에 우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꼭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해 왔다.
지금은 닭 소리의 쓰임새는 거의 사라졌다. 사실 닭은 새벽에만 우는 게 아니라 시시때때로 운다. 닭의 뇌 속에 있는 송과체라는 기관이 닭의 생체 리듬을 조절하는 데 빛을 감지하면 예민해진다. 그래서 닭을 키울 때 닭이 울지 못하도록 닭장을 검은 천으로 가려 둔다고 한다. 닭도 밤에 잠을 자다가 동이 트면 깰 뿐이지 새벽에 울어대는 이유는 빛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화양고 교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교정도 신학기를 맞아 그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치고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던 조회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교장실에 예기치 않은 손님 도마뱀이 들어왔다. 도마뱀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냥 놔두면 다시 나갈 것 같기도 해 잡지 않고 천천히 들여다보는데, 도마뱀이 벽에 딱 붙어 움직이지 않고 숨죽이고 있자 그의 짧은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도마뱀의 짧은 다리는 정말 한계이고 절망일까? 그 절망을 처절하게 인식하며 꿈틀대는 마지막 몸부림이 도마뱀에게 날개를 달아줬다는 시인의 말이 생각났다.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날개 돋친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라는 구절이 좋아 화양고 학생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낮에는 자신의 영역에서 분투하다 새날을 열 때쯤 이웃집 수탉의 홰 소리에 뽐내지 않고 "꼬끼오"하며 화응하는 수탉의 미덕을 이야기하며, 절대치로서의 꿈과 화응하는 미덕을 겸비하길 당부했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인성이 고운 학생으로 성장하여 긍지와 사명감을 가슴 깊이 간직하길 바라면서 우리 학생 모두가 수탉의 미덕이 함께하는 날개 돋친 도마뱀이 되길 소망하였는데, 지금 그 학생들은 어디서 날개를 펼치고 있을지 궁금하다.
올해는 명절에도 코로나19 재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졌고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시행되었다. 그러다 보니 딸 가족도 서울에 있는 시댁에 인사를 드리러 가지 못했었는데 며칠 전 기회가 되어 사위의 친가가 있는 순창에 오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딸 가족이 움직였다. 이번 돌산 산소에서 있었던 손녀의 닭 소리 이야기를 듣고, 손녀의 친할아버지는 손녀를 데리고 마을 한복판으로 데려가 손녀의 수탉 소리 모사를 자랑하게 하였단다.

그랬더니 서너 곳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화답하고, 또 손녀는 다시 뽐내며 닭 소리를 내고, 또 윗마을 아랫마을 닭들이 화답하고 동네 어르신들은 손뼉을 치며 웃고. 높은 관심을 받자 손녀는 우쭐댔다고 한다. 

"윤비야! 닭 소리는?" 하면 실감 나게 "꼬끼오"하고 외치고, "소 해봐" 하면 또 실감 나게 "음메~"하고, "사자도, 호랑이도" 주문이 이어질 때마다 실감 나게 동물 소리를 흉내 내며 뽐내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아이. 손녀의 순수함 덕분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는 일이 많은 요즘이다.
사랑하는 우리 윤비! 언제나 파이팅 하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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