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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침 맞으러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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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9.24  10: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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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종류가 많기도 하지만, 대개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속병이지 겉으로 드러나 볼모양 없이 입이 한쪽으로 비뚤어져 올라가는 병은 드물지요.
내가 어렸을 적 시골 장날 구경하러 장터에 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가끔씩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했지만, 이것이 나한테 염치없이 달라붙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 했지요.
평소에 돌아서서 남의 험담을 종종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면 하느님이 나를 불러 좋게 타이를 일이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주어 가뜩이나 외로운 늘그막을 더욱 처량하게 만들고 있네요.
나는 ‘구안와사’를 만나 두 달이 넘도록 여태 한의원에 침 맞으러 다니고 있어요.

이 증세가 왼쪽 잇몸의 무감각에서부터 시작하면서 나는 처음 1주일 동안을 매일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이 신경과로 가서 입원치료를 받으라는 바람에 자리를 옮겨 입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1주일 만에 퇴원을 해서 그 한의원으로 다시 찾아갔더니 의사가 신경과에 간 일주일만큼 치료가 늦어졌다면서 나무랐습니다. 나는 앉아 의사의 질책을 들으면서 나의 중심 없는 우왕좌왕을 반성했습니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남부끄러운 질병이어서 남몰래 한의원에만 숨어 다니고 있었는데, 하루는 하필이면 집사람이 볼일 보러 밖에 나가고 없는 사이에 전화가 걸려 와서 부득이 내가 받고 보니 친구여서 그만 붙들려 탄로가 나고 말았어요.
입이 한쪽으로 비뚤어져 있으니 본토발음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지요.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더듬거리고 있으니 그 친구는 벌써 눈치를 채고 이렇게 나를 비꼬았습니다.
“자네 이 나이에 미국 이민 가려고 영어회화 공부하나?”

내 집사람은 영감이 이제 수필도 못 쓰고 이 길로 영영 떠나는 줄 알고, 곁에서 걱정이 태산 같다가 그만 혈압이 올라 장난처럼 쓰러졌어요.
그 길로 종합병원 응급실을 통해 입원을 시켜 조금 안정이 되는 것을 보고, 입은 비뚤어져도 밥은 먹어야 살 것 같아서 혼자 저녁밥 해 먹으러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뒷날 병원에 가보니 집사람이 늦은 밤에 혼자 화장실에 갔다 일어서면서 또 쓰러지는 바람에 문턱에 받혔다면서 턱에 하지감자만한 크기의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마침 그 옆을 지나다 뭔가 끙끙 앓는 소리를 들은 간호사의 도움으로 큰 변은 면하게 되어 집사람과 다시 상봉할 수 있었으니 천운으로 알고, 나는 사람들이 안 보는 화장실에 가서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내가 다니는 한의원은 치료받는 침대가 열 개 정도인데, 가면 언제나 만원입니다. 나는 ‘구안와사’ 이니까 한쪽 볼에다 침을 꽂는데, 지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은 대개가 허리 아니면 어깨에 침이 꽂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녀 성별이나 나이에 따라 허리 굵기와 색깔도 달랐습니다. 한의원에는 나이가 든 노인만 가는 줄 알았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초등학생도 와 있었습니다.
“너는 왜 왔느냐.”고 하니까 태권도 하다가 팔이 틀어져서 왔다고 했습니다. 이 녀석은 어려서부터 한의원의 침에 정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바느질하는 바늘에 찔리면 아프기도 하고 피가 나기도 하는데, 한의원의 침은 따끔하기는 하지만 피도 별로 안 나고 병을 고쳐 주니 참 신통합니다.
내 옆 침대의 노인은 허리에 침을 수없이 꽂아 놓고 엎드려 코를 골며 자고 있었습니다. 환자는 간호사가 데려다 주는 대로 가서 눕게 되어 있는데, 나는 공교롭게도 언제나 그 노인 옆자리였습니다.
무슨 병이든 환자는 첫째 마음이 안정이 돼야 하는 법이거늘 내 비뚤어진 입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것은 그 노인의 코 고는 소리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는 그 노인을 피해 다른 자리로 옮겼더니 거기에는 또 어떤 중년부인이 침대에 드러누운 채 누구에겐가 휴대전화로 ‘TV드라마’ 한 달분을 몰아서 재방송하는 바람에 세상 살기가 싫었습니다.
그래도 코 고는 소리보다는 참을 만했지만, 내 ‘와사’ 치료에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뒤로는 침 맞으러 가는 시간을 오후 늦은 시간으로 조절을 했더니 환자 수가 적어 조용해 신경안정이 되면서 입이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는 누구나 무엇이나 다 제 몸에 맞고 편안한 자리를 찾아 한동안은 비비적거리며 신경을 쓰지만, 두꺼비나 장구벌레나 그리고 멧돼지나 사람이나 다 코 고는 소리와는 아무 상관없이 이승에 잠시 머무르다가 결국에는 고향의 황토밭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나는 오늘도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갔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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