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36

그분을 ‘그’로 만난 건 십몇 년 전이다. 그러니까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때나 지금이나 고3은 모든 것을 유예했다는 말이 걸맞을 정도로 삶이 핍진하다. 별것도 아닌 문제 하나 맞느냐 틀리느냐에 따라 대학 당락이 결정되는 고단한 현실은, 교사들도 그렇지만 특히 아이들을 누렇게 뜨게 만든다.

그때 나는 교사였고 그는 학생이었다. 학생 중에서도 뛰어난 학생이었다. 성적이 처진 아이들에게는 무척 미안한 말이지만, 공부 잘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교사의 눈은 참 따스하다. 수업 시간에 말하는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받아들였다가 좋은 점수로 토해 내는 것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더욱이 그는 원하는 대학은 어디나 골라잡을 수 있는 계열 1등이었으니, 그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컸겠는가. 집안마저 그리 넉넉지 않아 보였으니, 저런 효자가 어디 있겠나 싶었다. 그런 그가 신부가 되겠다고 하였을 때, 다들 설마 했다. 아니, 세상 물정 알게 되면 그 생각 고쳐먹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고요하게 견고했다. 오랫동안 기도해 온 바라며 주변의 권유를 따뜻하게 내려놓았다. 그를 찬찬히 지켜보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학교에서 너무 모범적이면 친구들한테 까이는데, 그는 아니었다. 도리어 존경을 받고 있었다. 친구들조차 그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를 교사인 나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 그 즈음 일어났다. 지금 성적으로도 신학대학은 넉넉히 갈 수 있으니 11시까지 야자 하지 말고 일찍 귀가하라고 했다. 아이 담임으로서는 배려였을 것이다. 그러자 그가 했다는 말이 이렇다. “하느님께 가장 좋은 성적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전에 학교를 쉬면서 좋은 분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원불교 이선종 교무님이시다. 당신은 좋아하지도 않은 쇠고기를 점심으로 사 준 적이 있는데, 식사하다 물었다. 교무님, 성직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 말에 “고기 더 드세요.” 하더니, 미소를 머금고 들려준 그분 말씀이 이랬다.

“성직자는 거울 같은 사람이에요. 거울이 잘 닦여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옷매무새를 고치고 가듯, 성직자도 마음바탕이 잘 닦여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이 와서 마음자리를 고쳐먹고 가지요. 하지만 저는 생각처럼 그게 잘 안 되네요.” 그때 그분은 고개를 들어 볼 수 없을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흔히 그런다.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푸르다고. 허나 이 말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오랫동안 선생 노릇해 온 나에게 푸른 구석이라곤 도무지 없기 때문. 그런 미안함으로 얼마 전 사제서품을 받은 김의정 바오로 신부님께 고백한다. 오래 전부터 당신은 나에게 ‘그’가 아닌 ‘그분’이었다고.

은그릇을 훔쳐 달아나다 잡힌 장발장에게
왜 은촛대는 가져가지 않았느냐고 감쌈으로써
그를 구원한 미리엘 주교를 다시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입니다, 우리 신부님.
- ‘오래 전부터 그는 나에게 그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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