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봄은 지금 온통 하얗고 노랗고 분홍이다.

거북공원, 무선공원, 성산공원에는 하얀 꽃눈이 내리고 있고, 시내를 걸어도 종고산의 밭 언덕을 걸어도 하얗고 노란 꽃들이 울긋불긋 수를 놓고 있다.

봄이 좋기는 좋다. 저절로 생기가 난다. 봄은 이렇게 연두색 잎처럼 상큼한 색이다. 어제는 봄바람과 꽃눈을 맞으며 시내를 걸었다.

바람 끝이 곱다. 같은 봄바람이라도 찬바람이 있고 따스한 바람이 있는데, 어제 바람은 따스한 바람이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지난 주말에 비가 온 뒤에 그 꽃이 졌다. 지난 주말이 올 봄의 피크였는데. 긴긴 겨울을 이겨내고 1년을 기다려 피운 꽃이었는데 그 꽃이 졌다.

어느 시인이 그랬다. 지금 꽃이 지고 있으니 조용히 좀 해달라고. 요즘은 경건한 마음으로 입을 닫고 지내야겠다. 꽃잎이 저렇게 지는데.

이런 말이 있다. 겨울 난 거지가 봄추위에 얼어 죽는다고. 이 봄에 가진 것 없고 헐벗는 사람이 있거든 조심할 일이다.

▲ 여수 흥국사.

봄은 밖에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안에서도 봄은 움튼다. 이 시기가 되면 스물스물 봄기운이 우리 몸 안에서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

요즘은 어찌된 셈인지 여름과 겨울은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짧아져 간다. 특히 봄은 더 짧다.

이렇게 봄이 짧아지니 차례차례 피던 꽃이 순서가 없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올 봄의 꽃은 순서도 없이 앞 다투어 핀다.

보통은 동백이 피었다가 지면 매화가 피고, 매화가 피고 나면 산수유가 피고, 그 다음에 목련이 피고, 개나리가 피고, 벚꽃이 피고,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진달래가 피고, 마지막에 철쭉이 핀다.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순서 한 번 어기지 않고 그렇게 피었다. 꽃들은 펑펑 팡팡, 그렇게 피었다.

그런데 요즘은 순서가 없다. 그냥 종류 구분 없이 성질 급한 놈부터 핀다. 바빠 죽겠는데 순서가 어딨어.

하긴. 이놈들도 꽃을 피워야 잎이나고 잎이 나야 열매를 맺지. 그렇게 한바탕의 소란이 지나고 나면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줄달음을 칠 것이다.

남미의 어느 나라에서는 여인의 나이를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이렇게 묻는단다.

“신록이 찬란한 봄을 몇 번이나 맞았나요?” 아! 얼마나 시적인 물음인가? 앞으로 나도 숙녀의 나이를 꼭 물어야 할 때는 이렇게 물어야겠다.

“그대는 신록이 찬란한 봄을 몇 번이나 맞이하셨나요?” 하고. 그때, 무슨 말인지 몰라 내 눈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나는 벌써 쉰 번도 넘게 봄을 맞이했다. 그 봄이 그 봄 같지만 나에게는 늘 새로운 봄이었다.

새봄. 그렇지. 여름이나 가을에는 새 여름 새 가을이라 하지 않는다. 봄에만 새봄이라고 한다. 봄은 시작이니까.

앞으로 나는 몇 번이나 봄을 더 맞이할 수 있을까. 스무 번? 서른 번? 욕심도 많지. 그저 사람답게 살다가 열 번이 되었든, 스무 번이 되었든 그렇게 살다가 가면 되지. 별 의미 없이 사는 삶이 서른 번이면 뭐하고 마흔 번이면 뭐하겠나.

오늘 오전에는 잠시 중앙여고 교정을 걸었다. 봄이 되면 교정이 꽃단장을 하는 학교. 그래서 참 아름다운 학교.

작년에는 서울대에 두 명이나 보냈지. 잘했다. 늘 시민들의 근심이었는데 이제는 꽃으로 다시 피어나는 학교.

여기저기 아이들의 웃는 소리가 요란하다. 저 아이들이 저렇게 웃기 위해서는 어머니 아버지의 수고로움과 선생님들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하겠지.

그렇지. 그것이 삶이니까. 내가 웃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아픔과 수고로움이 숨어있어야 하니까. 여수의 봄은 이렇게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아~ 꽃만이 아니다. 여인들의 성급한 옷차림에도 봄은 피어나고 있다. 어제는 어느 아가씨가 반팔을 입고 가더라. 꽃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 아, 이 젊은 마음을 어이할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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