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여수고등학교 교사

그놈의 수도꼭지가 문제였다. 걸핏하면 물이 쫄쫄거리다가 안 나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다른 계절이야 오줌 색깔이 노래지도록 견딜 수도 있었지만, 여름이야 어디 그런가. 뙤약볕에서 공이라도 한바탕 차고 나면,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이 그보다 더 간절했을까, 아이들은 물 물 물 했다.

그런데 시도 때도 없이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다. 추첨으로 배정된 그 학교는 어느 대학의 부속중학교였는데, 그때 대학 부속병원이 새로 지어지면서 급수 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환자가 급해서 그런다며 우리를 다독였지만, 우리가 환자가 될 판이었다. 아이들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좀 사는 것들이야 보온병에 물을 싸가지고 와서 보약 먹듯 홀짝거리기도 하였지만 그건 소수.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무 물이나 벌컥벌컥 들이켜야 했는데, 그 ‘아무 물’이 없었다. 음료수 사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소풍이 되어서야 겨우 사이다 한 병 품고 가던 시절이었는데, 음료수는 무슨 음료수.

불똥은 애꿎은 주번에게 튀었다. 쪼그라진 양은 주전자에 물이 없으면 소리를 질렀다. 물이 안 나온다고 대꾸해도 씨알도 안 먹혔다. 샘을 파서라도 떠 와, 새꺄. 아주 악다구니를 써댔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악동들이 드디어 살길을 마련했다. 담 넘어 학교 앞 튀김 집에 가서 물을 떠오기 시작했다.

처음 얼마간은 그게 통했다. 그런데 곧 한계에 도달했다. 학급당 쉰 명도 넘었는데 서른여섯 개 학급에서 하루에도 수차례 펌프질을 해대니 물이 남아났겠는가. 아줌마의 단수 조처! 그러고 며칠 뒤 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튀김을 사 먹어야 물을 퍼갈 수 있도록 하는 긴급조치가 발동된 것이다.

아, 10원. 1원짜리 지폐가 있던 시절 10원은 얼마나 큰돈이었겠는가. 그런데 주번을 곱게 보내기 위해서는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 주는 버스타기를 포기했다. 한 시간도 넘는 거리를 걸어 다녀야 했다. 지름길을 찾아 철길을 따라 걷고 또 걸어야 했다. 여름이면 정말 더웠다.

그러다 문득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줌마, 튀김 안 먹을 테니 이 돈 받고 일주일 동안 물 떠가면 안 돼요? 거래는 성사되었고, 10원으로 일주일을 넘기게 되었다. 그런데. 바가지에 마중물을 받아 펌프질을 할 때마다 “치이익” 하고 덴푸라 튀기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냥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때 두 소년은 거친 꿈 하나를 품었다. 야,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저 덴푸라 배 터지게 묵어 보자, 우리 글자. 그러고 십여 년이 지난 뒤, 소년 하나는 실제로 꿈을 이뤘다. 친구하고 그 튀김집에 가서 배 터지게 튀김을 시켰는데, 다 못 먹고 나온 것이다. 그 때 그 맛은 비록 아니었지만.

제자 하나가 찾아왔다.
방송국 피디를 하는 잘나가는 녀석이다.
점심을 사면서 반주로 술 한 잔 하시겠느냐고 했다.
대낮부터 웬 술 하고 멈칫거리는데도, 못 들은 척 술을 시킨다.
저도 먹고 나도 먹었다. 불콰해지나 싶더니 이런다.
샘, 중학교 때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나중에 샘하고 술 한 잔 하는 거요.
샘은 정말 무서웠거든요.
그것도 상처였나 보다.
그 시절 누구처럼.
- 손길만 닿아도 아무는 상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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