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사람·7/여수고등학교 교사

장이머우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보고 나서 내내 먹먹했다. 다시 한 번 보고 나니 대사 하나까지도 돋을볕처럼 환하게 다가왔다. “빨간 옷을 입은 그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라고 훗날 선생님은 아들한테 말하는데, 예전에 나도 그랬다. 장쯔이의 순결한 아름다움을, 3월의 교정에서 만났다.

장쯔이의 붉은 스웨터 대신 그분은 순백의 오버를 입고 오셨지만, 구령대에 서 계시는 모습을 보는 순간, 환상은 가끔 현실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더욱이 새로 부임한 그 선생님이 우리 2학년 음악을 맡는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이건 운명이다, 속으로 환호했다.

아쉽게도 선생님 시간은 화요일 3교시와 목요일 5교시밖에 없었다. 음음음음음음으로 된 시간표 어디 없나? 국영수사과는 왜 들어오고 공미체는 왜 끼어드는 거야? 나는 그때 그렇게 떠들고 다녔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말은 정말 옳다. 그때 나는 선생님 주변에서 자전과 공전을 거듭했다.

예쁜 놈은 하는 짓짓이 예쁘다더니, 할머니의 그 말씀도 과연 옳았다. 선생님은 매 때리는 것마저 우아했다. 매 들 일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정말 돼먹지 않은 녀석들 때문에 가끔 아주 가끔 지휘봉으로 손바닥을 때리셨는데, 아! 잘못 맞을까 봐 당신 왼손으로 그 더러운 것들 손을 잡고 때리셨다.

나도 맞고 싶었다. 하지만 맞을 일이 있어야지. 고민 고민 하다가 상담소를 찾았다. 상담소라니 놀라지 마시라. 어린 사내들이 모여 있지만, 그곳도 엄연한 세계다. 좀 되바라진 놈이 스스로 상담소라는 걸 차려 손님을 받았는데, 꽤 성업 중이었다. 고민을 털어놓았다. 방법은 간단하다는 처방을 받았다.

거울 비책을 쓰면 된다는 것이다. 치마 입고 오는 날, 거울로 팬티 훔쳐보기를 하다 냅다 걸리라는 것이었다. 약발 죽이리라는 것이었다. 대신 담임에게 꼬지를 게 뻔한데, 그건 책임질 수 없다고 발뺌하였다. 그때 담임 별명은 송충이였다. 매맛이 얼마나 톡 쏘았으면 그런 별명을 붙여 드렸겠는가.

죽어도 좋았다. 당연히 한다고 했고, 했다. 거울을 마련하고, 화장실 천장에 숨기고, 치마 입고 오시는 날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그날이 오셨다. 아주 내놓고 했다. 당연히 걸렸다. …뒤로 가 있으라고 하셨다.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선생님은 풍금에 맞춰 노래하셨다. 리릭 소프라노! 환상 그 자체였다.

수업이 끝나 아이들을 내보내고,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어떤 훈계를 했는지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다. 선생님은 손끝 하나 나를 건드리지 않고, 훈방 조처했다. 그것만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온통 잿빛이었으니까.

지나간 시절을 현재와 대비할 때
현재는 컬러, 과거는 흑백으로 처리하는 게 보통인데
장이머우는 ‘집으로 가는 길’에서 정반대의 영상을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는 오늘보다
항상 컬러풀하다며.
- 과거는 항상 컬러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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