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에 몇 개 남지 않은 풍경 있는 어촌 마을





우리는 빈손으로 이 땅에 왔고 결국은 빈손으로 돌아간다. 소유욕의 끝은 따지고 보면 허망할 뿐이다.



소유욕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욕망은 알게 모르게 죄의 너울을 쓰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크고 많은 것보다 작은 것과 적은 곳에서 행복과 가치를 찾자는 것이다. 욕망은 이렇게 마음속에 있는 것을 비울수록 넉넉해지는 법이다.



토요일 오후, 제법 쌀쌀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찾은 곳은 웅천에서 신월동으로 가는 길 우측에 있는 바닷가 송현마을이었다.

바닷가에 꼬막껍데기 엎어놓듯 두런두런 모여 있던 이 마을도 개발의 현장에 밀려 곧 뜯길 모양이다.



마을 앞 개펄에서 나이보다 훨씬 굽은 허리로 굴을 따는 할머니 한분을 만났다.

“뭐 하세요?” 뻔히 굴을 따고 있는 것을 보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73살의 박 할머니는 대답대신 “이거 한번 맛 볼테여?”하며 방금 바위에서 깐 굴 하나를 입에 넣어준다.



짭짜름한 것이 상큼하다. “이거 따서 뭐 하세요?” “ 시장에 가져가서 팔지”하고 답한다.

박 할머니는 이렇게 물이 많이 날 때는 하루에 너댓시간을 개펄에서 굴을 따며 보낸다.



“허리 아프지 않으세요?” 하니 허리는 괜찮은데 무릎이 아프단다. 그래서 무릎을 못 구부려 허리를 구부린다고 했다.



할머니의 하루 벌이는 대략 3만원 정도이다. 자연산 생굴이라 시장에 가져가면 가격을 제법 받는다고 했다.

이제 이렇게 개펄에서 하루 용돈을 벌어 쓸 날도 멀지 않았다고 할머니는 걱정이 태산 같다.



재개발로 인해 바닷가 송현 마을은 멀지 않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웅천지구를 개발하면서 이곳 마을은 철거에 들어가고 바지락이며 굴들을 채취할 수 있는 이곳 개펄은 매립될 처지다.



그 개펄위에 깡패같은 바위가 쌓이고, 다시 그 위에 반듯한 집들이 들어설 것이다. 이렇게 여수는 점점 여수다운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마을이 사라지고, 개펄이 사라지고, 사람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정도 따라서 사라지고 있다.



“그러면 할머니 댁은 어디로 옮겨준대요?”그 질문에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펴며 산 너머를 가리킨다. “저기 터 닦고 있는 곳으로 보낸다고 하든디”



“새집으로 이사 가면 좋겠네요?”하고 부아를 지르니 할머니는 “가기 싫어. 이사를 가면 하루 종일 우두커니 앉아서 뭐할 거야? 그러다가 곧 죽것지 뭐...”하고 답한다.



하긴 평생을 밭에서, 논에서, 개펄에서 보내신 분이 그것 다 내주고 나면 할일이 뭐 있겠나.

할머니의 굽은 허리 뒤로 또 하루해가 지고 있다. 바다색이 할머니의 한숨소리에 붉게 물들어 온다.



송현마을. 여수에 몇 개 남지 않은 풍경 있는 마을이지만 곧 사라질 마을이다. 오다 가다가 이곳 마을에 자꾸만 눈길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 것 같다.





박철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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