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여수고등학교 교사

지금이야 개발이 되어서 그럴 듯하게 매만져져 있지만, 그때만 해도 늘느리동네는 몹시 찌푸린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그 동네는, 궂은비라도 한 줄금 내릴라치면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그런 밤이면 꼭 어느 집에선가 날궂이를 했다.

술주정뱅이 남편이 돌아와 찝쩍거리기라도 하면, 뻐언뻐언 하며 이 골목 저 골목 번데기 리어카를 밀던 그 아줌마는 사내를 집 앞에 패대기쳤다. 또 어느 날엔가는, 송정리 비행장에서 몸 파는 천것이라고 작은애를 흉봤다며 그 어미가 이웃집 여편네를 쥐어뜯으며 머리채를 진창에 처박아 버렸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말린다고 말려질 싸움이 아니란 걸 누구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새벽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터로 나갈 터. 사내들은 멀찌감치 섰다가 피우던 담배를 끄고 돌아섰고, 아낙들도 코를 탱 풀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 밤이면 조무래기들은 모여 세상을 음침하게 조롱했다.

교실에서 쓰러진 나를, 아버지는 그곳 늘느리동네로 보냈다. 하꼬방에서 번 돈으로 겨우 풀칠하던 고모 집에 나를 부려 놓았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젊어서 소박맞은 고모는 나를 친자식처럼 살폈다. 나는 거기에서 변두리의 처연한 삶을 들여다보았다. 그 바닥에는 늘 검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몇 개월. 날마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다 더 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듬해 봄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다는 것은, 동시에 학교를 나선다는 것. … 학교 밖은 생각보다 나를 지치게 했다. 여름이 끝날 무렵, 돌아왔다. 그런데 친구 기섭이만 몇 번 찾아왔다고 할 뿐, 학교는 이미 잘려 있었다.

다시 교실이라도 기웃거릴 수 있을까 하고 비겁하게 돌아온 나를, 학교는 용서하지 않았고 아버지도 용서하지 않았다. 나도 스스로가 용서가 되지 않았다. 문득,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열다섯의 가을, 나는 또 용서할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음독.

늦게야 고모에게 발견되었다. 음식물 쓰레기통의 구정물을 걸러 고모는 밤새 위세척을 하였다. 몸에 있는 구멍이라고 생긴 구멍에서는 한없이 무엇인가가 기어 나왔고, 더러운 목숨은 질기기조차 했다. 나는 다시 눈을 떴고, 거기에 우리 고모가 있었다. 깨어난 몹쓸 놈을 붙잡고, 고모는 퍽퍽 우셨다.

그 동네를 떠난 건 그해 겨울. 아버지가 나를 고향으로 불러 내릴 때까지 나는 거기에서 눌러 지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흐르면서 세월은 그 동네를 흔적도 없이 거두어 갔다. 불살라진 뼈를 곱게 갈아 은하수처럼 하얗게 뿌려 드렸지, 별빛보다 환한 우리 고모마저 세월은 속절없이 거두어 갔다.

핏줄이 파쇼라지만
나는 그런 핏줄이 그립다.
이념도 나를 살리지 못하고
사랑도 나를 살리지 못했지만
그 맹목의 핏줄은 나를 살려냈다.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핏줄일 수 있을까.
-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핏줄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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