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8일, 해물전에 시원한 맥주 한 잔 어떠세요?”

친환경무상급식 추진, 도심골프장 반대, 여수산단환경안전 대책활동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여수환경운동연합을 찾았다. 처음에는 정회선 공동의장 뵙기를 요청했는데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하면서, 더 좋은 분이 계시다며 이분을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그분은 다른 공동의장이신 진옥 스님으로부터는 “환경운동의 전문가”라는 칭찬을 들었고, 문갑태 사무국장으로부터는 “회원들과 한 약속은 꼭 지키는 아주 모범적인 활동가”라고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조환익 집행위원과의 인터뷰는 약간의 설렘으로 시작되었다.

“조 선생님이요? 여수환경운동연합의 역사이자 현재이죠.” 녹색 슬리퍼로 채워진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신고 들어간 사무실에서 위원님에 대해 묻자, 김혜진 집행위원은 서슴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서울에 있는 환경운동연합에서 실무를 보다가 씨프린스호 사건이 터지면서 여수에 파견되어 왔는데 그 뒤로 여수에 눌러 살면서 여수환경운동연합의 산파 역할을 했다는 것.

▲ 조환익 집행위원. 두 번째 인터뷰를 하던 날, “거의 다 와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문자를 받고 밖에서 기다리다 자전거를 타고 오시는 아름다운 그분을 만났다. ⓒ이대현

■ “여수가 그렇게 좋으셨어요?”

- 우리는 ‘인서울’을 꿈꾸며 공부합니다. 그런 우리와는 달리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여수에 내려와서 아주 사신다던데, 그 이야기부터 듣고 싶어요.
“씨프린스호 사건이라고 들어보았는가 모르겠어요. 1995년 7월 23일에 여수 앞바다에서 LG칼텍스정유(현재 GS칼텍스)사의 유조선 씨프린스호가 침몰하여 기름 5천35톤이 유출되는 대형 사고가 일어났죠. 사고 직후부터 퍼져나간 기름 파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을 끼고 있던 청정해역을 검은 파도가 치는 죽음의 현장으로 바꿔 놓았지요. 국내 해양오염사고로는 최악의 참사였어요. 이 사고가 터지자, 여수에 가서 지역주민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오라는 환경운동연합의 명령을 받고 여수에 파견 나온 게 인연이 되었어요.”

- 사고 수습 후에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요?”
“2년 동안 활동하고 나니, 서울에서 부르더라고요. 서울 중앙본부 조직국장을 맡아달라고. 가려고 했지요. 그런데 내가 옮긴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공무원과 산업단지 기업체 분들이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조환익 때문에 환경문제가 전국에 알려지고 피곤했는데 서울로 가버리면 편하겠구나.’ 하며 말이죠.(웃음) 그럴 수는 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할 일이 아직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그래서 서울로 복귀하는 것을 포기하고 여수에서 계속 활동하기로 마음먹었죠.”

- 아주 가족까지 모시고 오셨다던데요? 가족들이 흔쾌히 동의하시던가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가족과 함께 아주 이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환경운동은 그 지역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오래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결단한 거죠. 다행히 92년부터 활동한 ‘여수환경시민의모임’이 95년에 씨프린스호 사건을 계기로 환경운동연합과 연대하며 활동했지요. 그 결과 1996년에 지역에서는 최초로 전국적인 환경단체가 생기면서 완전히 터를 잡게 되었지요. 지금도 가족들이 여수 내려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격려해 주니 다행이죠. 저도 여수가 정말 좋고요. (웃음)”

■ “산단이 그렇게 위험한 곳인가요?”

▲ 여수에 내린 흑비 2013년 6월 11일 쇳가루가 섞인 검은 비가 율촌면 소재지 부근에 내렸다. 여수환경운동연합이 존재해야 할 이유이다. ⓒ문갑태
- 여수국가산단이 만들어진 지 30년이 넘어서 시설들이 많이 노후화되어 상당히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요?
“위험 정도로 치면, 핵발전소 다음으로 위험해요. 핵발전소는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데, 산단은 도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거든요. 보통 중대산업사고라고 하면 ‘폭발, 화재, 유출’을 들지요. 폭발이나 화재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나 인근마을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유출 사고는 피해 범위가 엄청나죠. 지난번 구미 불산 유출사건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식물도 죽고, 동물도 폐사하고, 사람들에게도 치명적이죠. 더욱이 여수산단에는 불산보다 훨씬 독성이 강한 물질을 취급하는 곳이 많아요. 예컨대 포스겐이라는 물질이 있는데, 이 물질은 2차대전 때 전쟁무기로 사용한 독가스예요. 여수산단에서 서너 개 업체가 포스겐을 대량 취급하고 있는데, 유출되면? 처참해지죠.”

▲ 환경운동연합 로고. ‘그린피스, WWF, 지구의 벗’이 국제 3대 환경단체인데, 환경운동연합은 이 단체들과 네트워크 형식으로 연대하고 있어요. ⓒ여수환경운동연합
- 전국에 산단이 많은데, 왜 여수산단이 유독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고 ‘움직이는 화약고’라고 불리는가요?
“여수산단만 위험한 것은 아니에요.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산업단지는 다 위험해요.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대규모 사업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여수, 울산, 대산이지요. 그 중에서 여수가 화학물질을 제일 많이 취급하니까 확률상 사고가 날 가능성도 많고 실제로 사고도 많이 일어나니까, 그런 말이 나왔을 거예요.”

- 친구 중에 여수산단에 다니는 아빠가 여럿 있어요. 산단 덕분에 생활을 한다는 얘기죠. 하지만 산업단지가 있는 여수의 암발병률이 전국 평균의 2배를 넘는다는 보도를 들으면 답답해요.
“여수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이나 온난화 가스가 ‘작게는 90% 많게는 99%’를 산단에서 배출하니까 여수는 수치상으로 공해도시, 오염도시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여수산단에서 1%라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해요. 그래야지 여수시민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어요. 다행히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문제를 제기하면 정부나 기업은 물론 시에서도 ‘별로 심각하지 않은데 왜 시끄럽게 만드느냐’ 이런 분위기였지요. 하지만 요즘은 다들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고치자는 분위기죠. 최근에 대림사고가 있긴 했지만, 최근 10년은 과거의 30년보다 대규모 사고가 확실히 줄었죠.”

■ “그 돈을 받고 생활하신다고요?”

- 위원님께서는 여수국가산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년 가까이 활동해 오셨는데, 크게 개선된 점이라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요?
“여수산단 문제를 놓고 환경운동연합이 한 일은 많아요. 그 중에 대표적인 게 ‘파이프 지상화 활동’이지요. 산단에는 지상화된 배관들보다 땅속에 묻힌 지하 배관들이 더 많아요. 그 배관으로 물이나 소금 같은 물질이 흐르기도 하지만, 기름이나 화학물질 같은 유해물질이 흐르는 배관도 있지요. 거기에서 유해물질이 조금만 유출되어도 환경을 파괴해 버리죠. 그런데 지하에 있으니 웬만한 유출로는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파이프 지상화 작업이 중요하지요. 최근에 지하에 있는 배관을 순차적으로 지상화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죠.”

- 산단 문제는 정말 복잡하네요. 활동하면서 제일 힘든 점이 무엇인가요?
“돈이죠.(웃음) 단체로 놓고 보면, 항상 돈이 부족해요. 시민들에게 드릴 홍보물 하나를 만드는 데도 돈이 들고, 현장 조사를 나가는 데도 돈이 들어요. 그런데 애써 한 조사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분석을 맡겨야 하는데, 그때도 돈이 들어요. 물론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우지요. 국내 사이트는 기본이고 외국 사이트까지 다 찾아서 정부기관이나 대기업에 문제 제기를 하고 우리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지요.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보면, 회원들 회비로만 운영하다 보니깐 항상 어려워요. 후배들에게 미안하죠.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생활보장을 못 해 준다는 점이.”

- 정말 죄송한데요. 환경운동가로 상근을 하면 한 달에 얼마를 받나요?
“(웃음) 그게 지역마다 달라요. 여수는 회원이 다른 곳에 비해 그나마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여수는 처음에 70~80만원으로 시작해서, 15년 경력이 되면 150만원 정도 받아요. 아예 못 받는 지역에 비해서는 정말 감사하죠. 통계를 내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전국 평균이 100만원 정도나 될까 싶어요.”

- 100만원 남짓한 활동비를 받고 계시다고요? 생활이 되나요?
“힘들죠. 그래서 이직률이 무척 높아요. 처음에는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시작하죠. 하지만 1년이 지나면 반이 나가고, 3년 정도가 있으면 또 반이 나가요. 3년이 넘어가면 사람들이 내공이 쌓여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적응이 되고, 또 환경운동에 대한 사명감도 확고해지면서 안정적으로 활동을 하죠. 그런데 요즘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제가 20년 전 이 운동을 시작할 때에 비해 환경운동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무척 줄었다는 점이에요. 그때는 내로라하는 대학을 나온 인재들뿐 아니라 석박사들도 지원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의 지원이 확 줄었어요. 조직이 꾸준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젊은 피가 수혈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까. 지금이 바로 ‘또 하나의 위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조환익 위원님과의 인터뷰. 여수를 뛰어넘어 이 땅을 사랑하는 진정성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미안하고, 고맙고, 죄송하고. 마음을 표현할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박용성

여수환경운동연합이 회원들의 회비로만 운영이 된다는 위원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이나 여수시에서 재정적인 후원을 받으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전화를 걸었다. 문갑태 사무국장과 통화했다. “그래도 그러면 안 돼요. 산단의 재정 후원을 받거나 시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면 산단이나 여수시가 잘못한 일을 지적하고 바로잡기 힘들어요. 요즘 들어 회원 수도 많이 줄어 어렵긴 해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재정을 꾸려가는 게 정도입니다.” 그 말을 듣고 몹시 부끄러워졌다.

조환익. 명함에 “나는 기후천사가 되겠습니다”고 밝히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 “남들보다 여름에 조금 더 덥게, 겨울에 조금 더 춥게 산다.”면서 에어컨이 없는 건 기본이고 자동차, 심지어 텔레비전도 없이 사는 사람. 그런데 그분을 취재하다 위원님에게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 달에 150만원을 받는 상황에서 또래의 그 친구는 어떻게 학교를 다닐까?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을 텐데! 더 여쭤 보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가슴이 내내 먹먹했다. 아름다운 여수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그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 며칠 동안 고민만 깊어졌다.

(기사 작성 : 동아리 <사랑해여수 4기> 박태신, 이대현, 허정혁, 송광민, 정찬 기자. 지도 교사 : 박용성)

♣ 취재 후기 : <사랑해여수 4기>는 “아름다운 여수,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우리 고장을 널리 알리고 있는 여수지역 고등학생들의 연합동아리입니다. 우리 동아리에는 여수(YEOSU)의 글자 하나씩을 따서 만든 ‘Y-fine’, ‘Energy’, ‘Oasis’, ‘Superstar’, ‘U&I’ 총 다섯 팀이 있는데, 이 기사는 Y팀에서 작성하였습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5월 17일, 25월, 6월 1일, 세 차례에 걸쳐 여수환경운동연합을 찾았습니다. 바쁜 시간을 내 주신 조환익 집행위원, 김혜진 집행위원, 문갑태 사무국장, 공동의장이신 진옥 스님,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기사를 쓰면서 저희를 이끌어 주신 박용성 선생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팀장 : 박태신) 

▲ 7월 18일, 이곳에서 만나요 환경연합 사이트를 방문했는데 우연히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여수환경운동연합 활동기금 마련을 위해 ‘나눔터’가 열린다는 것. 친구들과 머리를 맞댔다. 잘리는 한이 있어도 싣자고 했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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