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지역아동센터 박성미 센터장과 돌지아 아이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깊어지는 빈곤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들이다. 우리나라에는 빈곤 아동이 100만 명이고, 10명 중 1명은 방임아동이라고 한다. 빈곤가정의 동반자살과 결식아동의 사망사건은 끔찍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복지의 사각지대가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슬픈 현실이다.

그래서 빈곤아동을 돌보는 지역아동센터를 찾기로 했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맨 채로 달려와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저녁까지 먹고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이곳은 또 다른 집이다. 여수에만 40개 기관이 있는데, 기관별로 평균 30명이라고 하면 하루 1,200여명의 아이들이 센터를 이용하는 셈이다.

▲ 아쿠아리움 견학 돌산지역아동센터를 찾은 날, 공교롭게도 그 날은 아이들이 여수엑스포 아쿠아리움으로 견학을 가는 날이라서 우리도 호사를 누렸다. 경비 일체는 GS 칼텍스가 후원하였다. ⓒ 김혜민

“나도 다시 어려진다면 돌지아를 다니고 싶어.”
도시이면서 농촌이고 농촌이면서 어촌인 돌산지역아동센터(여수시 돌산읍 우두리 1038-4, 아래 돌지아)는 한적한 골목길을 걷던 우리에게 왁자지껄 웃음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가정집 같이 편안한 분위기인 그곳은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머물기에는 충분히 아늑했다.

- 아쿠아리움 견학 때도 느꼈는데, 아이들이 단합이 잘 되는 것 같아요. 도시 아이들의 차가운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아요.
“우리 센터의 아이들은 밖에 나가면 이미 선생님이 되어 있어. 어딜 가나 조직적으로 일진, 이진, 삼진으로 나뉘어서 ‘야! 넌 이렇게 해!’ 이게 아니고(웃음), 큰 아이들은 아래 아이들을 돌볼 줄 알아. 센터에서는 그렇게 말괄량이에 꾸러기이던 녀석들도 밖에만 나가면 하나가 돼. 사람들은 다리 건너 있는 아이들이라서 순하고 착하다고 하는데(웃음).”

- 이주여성가정, 한부모가정, 조손가정에서 온 아이들이 심리적 부담을 느끼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설 중 하나가 지역아동센터라고 들었어요. 특히 돌지아는 그 점에서 칭찬이 자자하던데요. 비결을 좀….
“아이들에게 센터는 최고의 놀이공간이자 집이야. 센터가 365일 문을 열어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 아침 7시 50분이면 방학인데도 벌써부터 아이들이 와 있어. 닭들이 잘 있는지, 고양이 밥은 줬는지 살펴보지. 센터를 자기 집처럼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야. 밤늦게 프로그램이 끝나는데도 ‘센터 좋아?’ 하면 ‘네!’ 하는데, 대답이 가식적이지 않아. 그런 아이들을 보면, 나도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돌지아에 다니고 싶다니까(웃음).”

▲ 돌지아 아이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 수영장으로 피서를 가서 즐겁게 노는 아이들. ⓒ강세인

“돌멩이 하나를 온통 빨갛게 칠한 거야.”
인터뷰를 하다가 우리는 간간이 수업에도 참여했다. 자신의 10년, 20년, 30년 뒤의 모습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 아래 꾹꾹 눌러가며 무엇인가를 적었다.

그런데 아이들 가운데 키가 제일 큰 아이가 자신의 미래를 발표하는데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미래 모습은, 알바하면서 집에서 빈둥거리며 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 그 키 큰 아이에 대해 좀 듣고 싶어요.
“아빠는 아빠답게 엄마는 엄마답게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우리 주변에는 그러지 못하는 가정이 꽤 있어. 키 큰 친구도 그래. 아이 아버지가 이런저런 일로 오랫동안 집을 비운 적이 있거든. 그 뒤에 그 가정이 어땠겠어. 처음 센터에 만난 그 가정은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복지가 그 가정에 투입되더라도 다시 설 수 있을까 싶었어.”

- 그런데 어떻게 그 키 큰 아이와 만나게 되었어요?
“여수시청 희망복지팀과 여수교육청에서 돌봄 의뢰가 들어왔어. 그래서 우리가 먼저 가서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지. 아버지는 안 계시고 집마저 비워주어야 하는 처진데 어떡해. 바자회를 열어 감자탕을 팔아 그 수익금으로 작은 아파트 보증금을 마련했고, 아이를 돌보기 시작한 거야. 그런데 동부매일 박완규 대표님이 나서서 300만원을 지원해 주셔서 큰 힘이 됐어.”

- 그런 환경이라서 아까와 같은 반응을 보인 건가요?
“아이들은 그래. 주변 사람들이 직장에 다니는 걸 봐야지 나중에 자기도 어떻게 살 것이라는 구체적인 말을 할 수 있는데,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어. 그러니 빈둥빈둥 노는 것밖에 생각이 안 난 거야.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서 아까 그 프로그램에서 그런 행동을 보인 거지.”

-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한번은 주변에 있는 돌을 주워 와 거기에 그림 그리기를 한 적이 있어. 다른 아이들은 비행기도 그리고, 기차도 그리고, 곰 인형도 그리는데, 그 아이는 돌멩이 하나를 온통 빨갛게 칠하는 거야. 한 명씩 일어나서 발표를 하는데, 자기 차례가 되자 그 아이가 그러는 거야. ‘두 사람이 길을 걷고 있어요. 뒤에 있는 사람이 끈을 만들어서 돌멩이로 앞 사람 머리를 쳐요. 그래서 앞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피가 돌을 적시고 있어요. 그 사람은 잘못된 거예요.’ 모든 아이들이 말 그대로 싸-해졌어. 그게 불과 지난해 10월이었어.”

- 그래서요?
“그런데 아이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셨지, 올해 3월. 아빠로서 책임감을 많이 느끼셨나 봐. 취업을 해서 저번 달에 첫 봉급을 탄 거야. 그 돈으로 아이에게 신발을 사 주었어. 그러고 한 달쯤 뒤 다시 돌멩이 프로그램을 했는데 깜짝 놀랐어. 그 아이가 하트 모양의 돌을 주워와 색칠을 한 거야. 그러면서 ‘이게 내 심장이다. 나는 이렇게 심장이 있다.’고 발표하는 거야. 불과 6개월 만에 안정이 된 거지. 아이의 변화를 돌멩이에서 엿볼 수 있었어.”

▲ 돌지아 수업 돌지아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은 무엇을 가르친다기보다는 아이들을 쓰다듬어 주고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돌지아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엄마’요 ‘아빠’였다. ⓒ 김채연

“센터장님은 어때?” “착해요.”
어렵게 허락을 받아 날을 잡아 ‘키 큰 아이’를 만나러 갔다. 아이는 축구를 좋아하는 탓에 검게 그을린 피부와 밝은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사춘기를 겪을 나이라서 누나들이 말거는 것을 부끄러워하였다.

- 센터는 언제부터 다녔어?
“5학년. 5학년 2학기부터.”
- 센터에서 뭐가 제일 재밌었어?
“축구대회 나간 거.”
- 축구선수가 꿈이야?
“아니요. 육상선수.”
- 달리기 잘 해?
“저 전교 3등이에요.”
-센터는 어떻게 처음 오게 된 거야?
“엄마가 가라고 해서.”
- 센터장님은 어때?
“착해요.”
- 언제 제일 착하다고 생각해?
“모르겠어요. 그냥 다.”
- 어디어디 놀러가 봤어?
“계곡, 해수욕장, 축구대회, 캠프 등등”
- 센터의 좋은 점이 뭐야?
“센터에서 공부해서 성적이 올랐어요.”
- 오기 싫을 때도 있어?
“짜증나는 애들이 있을 때.”
- 누가 짜증나?
“까부는 동생들.(웃음)”
- 센터 언제까지 다니고 싶어?
“졸업할 때까지.”

▲ 하트 돌멩이 핏빛 돌멩이에서 하트 돌멩이로. 사랑의 힘으로 변화하는 한 아이의 모습을 그 무엇보다도 잘 보여주는 것이다. ⓒ 정화영

‘키 큰 아이’의 상처에 쉽게 다가가는 건 너무 섣부르다는 생각에 우리는 그냥 스스럼없이 얘기하며 친해졌으면 하고 만났다. 다행히도 그는 아픔을 잘 이겨냈고, 밝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아이를 보면서 돌지아가 달리 보였고, 돌지아의 대모 박성미 센터장이 달리 보였다. 세 번에 걸친 인터뷰 말미에 그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센터가 하는 일은 단순히 공부방을 제공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저녁을 챙겨주는 그런 서비스 제공에 머물지 않아. 센터 안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삶의 모델을 찾도록 도와주는 일이 센터가 하는 더 큰 일이거든. 아빠를 벗어난 예, 엄마를 벗어난 예를, 자원봉사자들이나 사회공헌팀들에서 보게 해 주는 거야. 아빠 엄마에게서 보지 못한 것을 그분들에게서 보면서 배우고, 아 나도 나중에 이 삼촌처럼 이 선생님처럼 되어야지 하는 꿈을 키우게 하는 곳이 바로 지역아동센터야.”

▲ 돌지아 아이들 누나들 중에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묻자 “여긴 없어요.”라고 아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에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기다리던 동생들과 함께 축구를 한다며 그는 힘차게 뛰어나갔다. ⓒ 방현유


못난이들 그러고 보니 다섯이 다 안경이네. “미안해. 누나들이 이렇게 생겨서.” ⓒ 정화영

(기사 작성 : 동아리 <사랑해여수 4기> 정화영, 강세인, 김채연, 김혜민, 방현유 기자. 지도 교사 : 박용성)

♣ 취재 후기 : <사랑해여수 4기>는 “아름다운 여수,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우리 고장을 널리 알리고 있는 여수지역 고등학생들의 연합동아리입니다. 우리 동아리에는 여수(YEOSU)의 글자 하나씩을 따서 만든 ‘Y-fine’, ‘Energy’, ‘Oasis’, ‘Superstar’, ‘U&I’ 총 다섯 팀이 있는데, 이 기사는 S팀에서 작성하였습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네 차례에 걸쳐 돌산지역아동센터를 찾았습니다. 바쁜 시간을 내 주신 박성미 센터장님께 감사드리고, 저희를 이끌어 주신 박용성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팀장 : 정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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