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해설가 조 미 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자리 털고 일어나 훌쩍 거닐 수 있는 길이지만 여수인근의 숲을 즐기면서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공감대를 찾기 위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기위해 출발한 답사라 새삼 책임감에 가볍지만 않아 평소 편하고 마음을 터놓을수 있는 지인과 같이 늦은 4시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지만 그래도 왠지 평상시와는 사뭇 다른 중압감이 감돈다.

돌산대교에서 차를 달려 무슬목 해양수산과학관앞 갈림길에서 계동으로 들어가는 좌측길을달려 바람보다 먼저 달려드는 바다를 온몸으로 받으며 무슬목길을 10여분 달리니 노인요양시설인 "하얀연꽃"을 지나 횟집바로 후에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소로로 접어들어 30초정도 달리니 우측에 좁은 인도정도의 차로가 있다. 아직은 여유 있게 차가 다니기엔 많이 불편한 길이지만 10m정도 들어가니 널찍한 주차공간이 나온다. 잡초제거만 해준다면 20여대의 차도 너끈히 댈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답사 준비를 하려고 보니 동화속에 나옴직한 플라타너스와(양버즘나무)와 팽나무 그늘 아래 널찍한 바위들이 서너개 널려있다. 차를 몰고 숨 가쁘게 달려왔다면 그곳에서 잠깐 숨을 돌리고 시원한 물 한모금 들이켜도 좋을 만한 그곳이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인 고인돌이란다.

오늘만큼은 굳이 북방식이니 남방식이니 따지고 싶지않아 곧바로 산책로로 들어서니 얕으막한 돌담좌측으로 예와 덕을 갖추었다는 "예덕나무"군락이 먼저반긴다. 이런 돌담은 이곳이 예전엔 밭이나 집이었음을 암시해주는데 담의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않고, 앝으막한 것으로 보아 밭이 아니었나 추정된다.

이곳부터가 대미산 등반로이다. 이곳 등반로는 여느 등반로와는 사뭇달라 등반로라고 하기보다는 산책로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다. 6월의 찌는 듯한 더위가 무색하리 만큼 산들바람이 옷 속까지 파고들어 가슴까지 후련한데 오후 먹이를 찾는 온갖 새들의 지저귐에 바람마져도 춤을 추는듯 한가하기만하다.

산책로는 뒹구는 돌이 귀하게 여겨질 만큼 맨발로 걸어도 손색이 없게 고운 황톳길로, 모진 겨울 바람을 이기고 나무를 지키던 낙엽들이 잔잔하게 쌓여 그 폭신거림이 산책길 발의 피로를 덜어준다.

좌우로 늘푸르름과 장엄함으로 우리를 대표해주던 소나무와 노린재나무, 사스레피나무, 소사나무, 굴피나무, 떼죽나무, 국수나무, 덜꿩나무, 싸리나무, 참나무류가 숲을이루는 숲길을 걸으니 뼛속 묵은 찌꺼기까지 씻겨내려가듯 상쾌함을 자아낸다.

터질듯 한껏 부풀은 까치수영의 하얀꽃잎이 보일 듯 말듯 수줍음을 머금고 눈요깃거리로 꼬리칠 준비를하고 더없이 맑고, 깨끗한 보라색 꿀풀(하고초)의 군락들이 어디로 눈을 둬야할지 모를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어 나그네의 여정을 유혹한다.

허리를 굽혀 꽃잎하나 쑥뽑아 어릴적 향수를 달래며 꿀을 빨아보니 그 달콤함에 행복이 묻어난다.

수은 해독에 좋다는 "명감"도 하나따서 잘근 먹어보니 시큼하면서도 텁텁한 맛이 굳이 왜 “청미래덩쿨”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라고 묻고 있다.
황톳길을 조금 오르니 누구라도 가위, 바위, 보하면서 금방 동심으로 돌아가고픈 향수를 느낄수 있을 만큼 정갈한 숲속계단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르는 길목엔 산짐승들이 염기보충을 위해 바닷물을 먹으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숲속의 소금, 붉나무와 산벗나무, 일본목련, 측백나무, 말채나무 사이로 하얗게 꽃천지를 이루는 나무가있다. 떼죽나무인가 싶어 가까이 갔더니 종족 번식을 위해 가짜 꽃으로 곤충을 유인한다는 산딸나무이다.

40여분 도란도란 애기하며 고즈넉한 산책길을 올라오니 이곳이 산정상인가 착각을 일으킬만큼 정갈하게 세워진 2층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주변으론 20여명이 동시에 쉴 수 있는 벤치와 약간의 공터에 벌개미치와 범부채인지 알 수 없는 식물의 식재지가 있어 이곳에 오는 이들이 체험학습을 할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있다.

등반객을 위한 배려인듯 화장실과 아주 깨끗하게 청소되어 정리된 우물이 있다. 2층 전망대에 오르니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다도해 푸른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우물 위쪽에 세워진 이정표에 달암산성과 봉화대가 표시되어있다.

전망대 좌측으로 3분정도 걸으니 돌무덤위에 봉화대라는 푯말이 우뚝 솟아있는 이곳이 대미산 봉수로로 돌산과 주변 섬의 상황을 상급 군사 기구인 전라좌수영에 알리며 남해 소흘산,순천부 성황당, 광양현 건대산을 잇는 진례봉수와 연결하는 사잇봉수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봉화대를 내려와 다시 2층 전망대를 지나 오른쪽으로 3분정도 오르니 "달암산성"의 동문이 산책로와 맞닿아 나그네의 여정을 반긴다.
해발 359m의 대미산 정상에 있는 이 산성은 백제 때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것으로 아직까지 그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된 산성이다.

동문과 서문, 북문은 있으나 남문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조그마한 산성들이 그렇듯이 정상으로부터 산의 7~8부 능선을 향하여 둥그렇게 쌓은 테메식(머리띠식)산성이다.

성벽 높이5~6m, 성벽위 넓이는 5.5m 지름75m이고 성밖에서 성벽을 타고 침입할 수 없도록 남쪽은 수직으로 북쪽은 성벽이 안쪽으로 휘어지게 하여 밑바닥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차 경사를 급하게 만든 홀형으로 쌓았으며 뒤채움을 하였다.

총둘레 249m로 성곽은 기단부를 생토층까지 흙을 파낸 후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고, 전체구간을 내외 협측으로 쌓았으며 토기의 입구 부분이 커다란 항아리나 옹기류, 경질토기조각들이 발견되었다한다.
이 성터 중앙에서 바라보면 북쪽으로 확 트인 바다위의 오동도와 여수의 전경을 볼수있으며 멀리 남해도와 2012년 여수해양엑스포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내려다 보이는 여수 앞바다의 구불구불한 항로를 따라 비켜가는 물길들이 우리 선조들의 질곡의 삶을 말없이 전해주듯이 파도마저도 숨죽인 적막 속에 이순신 장군이 노래했듯 어디선가 호가의 일성이래도 있을법하다.

성벽에 올라앉아 다도해를 이해하고 그 옛날 왜구의 노략질을 읽으면서 리아스식 해안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을 주제로 한 2012 여수해양엑스포의 염원과 로세르탈레스 세계박람회 사무국장의 박람회 사전조사보고서에 미쳤을 영향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 서니 2007년 11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울린 “Yes, YEOSU"의 그 함성과 감격의 감회에 젖어 가슴이 벅차오르며 목울대가 울렁거린다.
성의 중앙에서 조금 북문 쪽으로 내려와 북쪽 성벽에 오르면 발아래 돌산의 마을들이 수채화처럼 펼쳐져있다.

굳이 지금 이 성터에서 동서남북을 따지지 않아도 좋을 만큼 주변의 풍광들은 온통 등반객의 시린맘들을 바다 속에 수장시키고도 남을 만큼 가까이에서 다가온다.

이쯤해서 가지고온 오이와 참외를 깎아먹으며 널찍한 광장에서 수건놀이라도 한번 하고픈 충동을 받았지만 둘이서하기에는 너무 멋적지 않은가? 동문 오른쪽으로 약간 돌아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고사포 진지를 만들고자하였으나 해방이 됨으로써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는 동굴이 하나 있다.

이 동굴 앞에서 졸방제비꽃이 환하게 웃으며 반기지만 아픈 역사 때문에 눈시울이 먼저 붉어져 흐릿해 보인다. 약간은 섬뜩한 느낌이 들지만 아픈 역사를 느껴보고자 동굴 속을 돌아나와 으스스한 기분으로 움츠리고 있는데 후다닥 도망가며 사람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녀석이 있다.

깜짝 놀라 고개들어보니 고라니 녀석이 우리 일행 때문에 놀랬는지 기겁을 하며 도망을 간다.
굳이 뭔가를 일부러 조사하고 기록하지 않더라도 배우는 학생이 아닌 누구라도 간단한 산책로를 따라 올라오면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까지도 체험할 수 있고 달암 산성과 봉화대에서 역사를 느낄 수 있으며 동굴 앞에선 슬픈 역사를 되짚어보며 애국심을 키울 수도 있고 널찍한 광장에서는 산에 오른 기상으로 자연을 취할 수 있으며 우물에선 그 옛날 물깃던 아낙들의 넉넉한 인심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싶다.

오르고 내리는데 2시간이면 충분하지만 굳이 또 다른 경험을 원한다면 돌아오는 길에 해양수산과학관에 들러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바다체험학습장에 들러 해삼, 가오리, 따개비, 군소, 가리비, 조개 등을 직접 잡아보고 만져볼 수 있는 체험과 무슬목 몽돌밭에서 동굴동굴한 몽돌에 배 깔고 누워 모래톱에 달려드는 파도와 바다를 가슴에 품어보는 특혜를 누려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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