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근거·기준 없이 예산안 계수조정 비공개 ‘회의록도 안 남겨’
“소신껏 못해 비공개” vs “투명성·시민 알권리 차원서 공개해야”

▲ 여수시의회 예산안 삭감 절차와 방법, 기준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의원들이 예산 편성의 적절성을 제대로 판단하는지 시민들은 알 수가 없다. 특히, 예산안 심의를 마친 후 항목을 증액하거나 삭감하는 계수조정의 경우 분명한 법률적 근거 없이 관행으로 비공개해 ‘밀실 계수조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어 투명한 의정활동과 시민 알권리 차원에서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여수시의회 상임위나 예결위에서 시의 어떤 사업에 대해 비판은 하면서 결국 예산 삭감은 안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삭감돼야 할 예산이 비공개 계수조정 과정에서 살아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계수조정을 비공개로 하다 보니, 그리고 예산 삭감 절차와 방법, 기준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의원들이 예산 편성의 적절성을 제대로 판단하는지 시민들은 알 수가 없다.

특히, 예산안 심의를 마친 후 항목을 증액하거나 삭감하는 계수조정의 경우 분명한 법률적 근거 없이 관행으로 비공개해 ‘밀실 계수조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어 투명한 의정활동과 시민 알권리 차원에서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먼저, 지방자치법 등에는 예산 삭감 방법과 기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한 내용이 없다. 여수시의회 회의 규칙 제68조(예산안 심사) 1항에는 ‘의회에 예산안이 제출되는 때에는 시장으로부터 예산안에 대한 제안 설명을 들은 후 의장은 이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하고 소관 상임위원회는 예비심사를 하여 그 결과를 의장에게 보고한다’, 2항 ‘의장은 제1항의 보고서를 첨부하여 이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하 “예결위원회”라 한다)에 회부하고 그 심사가 끝난 후 본회의에 부의한다’고 명시돼 있다.

제70조(예산안의 의결) 1항에는 ‘예산안의 심사보고가 있은 때에는 예산의 각 부문별로 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 2항에는 ‘예산 각 부문의 심사가 끝나면 총액에 대하여 의결한다’고만 돼 있다. 세부 사업별로 적용되는 예산 삭감 기준과 절차 등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 셈이다.

시의회는 각 실·과·소별로 예산안 설명을 듣고 질의·응답을 한다. 이 과정은 인터넷 실시간 영상과 회의록, 언론보도 등을 통해 공개된다. 하지만 질의·응답 과정에서 의원들은 많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예산 과다 편성, 부적절한 사업을 비판하지만 나중에 나오는 예산 삭감 결과를 보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원인으로 과정 전체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밀실 계수조정’이 지목되고 있다. ‘비판’은 하되 ‘삭감’은 하지 않는 예산 심의가 비공개 계수조정이라는 관행 뒤에서 수십 년 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로 인해 삭감돼야 할 예산이 비공개 계수조정 과정에서 살아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무엇보다 각 의원이 어떤 기준과 원칙으로 예산 편성의 적절성을 판단하는지 주민들은 알 수가 없다.

지역의 중요한 이슈나 자기 지역구 숙원사업은 유심히 살펴보지만 비교적 예산이 적거나 중요하지 않은 다른 사업, 문제점을 알면서도 설렁설렁 넘어가며 예산의 적절성을 잘 따져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면에는 다른 지역구 예산을 반대하거나 삭감했다가는 자기 지역구 예산도 삭감당할 수 있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다시 말하면 동료 의원 지역구 예산 살려 주고 자기 지역구 예산도 살리는 매부 좋고 누이 좋은 셈이다.

회의록도 남기지 않는 폐쇄적인 계수조정
여수시민협 “비공개는 시민 우롱하는 처사”

현행 비공개 계수조정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은 없다. 계수조정은 위원회 중 하나인 상임위나 예결위의 공식적인 회의 과정일 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방자치법 제65조(회의의 공개 등) 1항은 ‘지방의회의 회의는 공개한다. 다만, 의원 3명 이상이 발의하고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한 경우 또는 의장이 사회의 안녕질서 유지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여수시의회는 비공개를 위해 공식적으로 의원 3명 이상이 발의하고 출석의원 3분의2 이상이 찬성하는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계수조정을 비공개해 왔으며 회의록도 일체 남기지 않았다.

여수시의회는 예산안에 대해 토의 후 의원 간 합의를 우선하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경우에는 표결에 부쳐 다수결로 삭감하는 원칙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계수조정을 하며 의원 간 어떤 토론과 타협, 합의나 야합이 벌어지는지 주민들은 전혀 알 수 없는 매우 폐쇄적인 구조다.

예산 계수조정은 의원들이 서로 민낯을 드러내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개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과 투명한 의정활동과 시민 알권리 차원에서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공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은 계수조정 과정이 공개될 경우 지역사회의 특성상 민감한 예산을 조정하는 데 있어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등으로 의원들이 소신을 펴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간담회와 상임위, 예결위를 거치면서 서로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굳이 계수조정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회의에서 예산삭감 내역과 삭감 이유를 간단하게 보고하지만 문제점이 지적된다 해도 번복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엇보다 비공개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부정한 로비나 예산 나눠먹기라는 비판에 대한 해법은 제시하지 못한다.

반면 찬성하는 입장은 의정활동의 투명성 확보와 시민 알권리 차원에서 계수조정 과정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여수시의회 A의원은 “비공개라고는 하지만 어느 의원이 어떤 사업을 삭감했는지 이해관계자들은 다 안다”고 말했다. B의원은 “의원들이 열띤 협의 과정을 통해 계수조정을 한다고는 하지만 공개를 하지 않는 이상 따가운 시선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고 했다. 굳이 비공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B의원은 예산을 소신껏 삭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 “의원 자기 소신이 아니라 주민과 공익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설령 반발이 있다하더라도 정말 자기 소신이 있다면 반대하는 이해관계자와 의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맞지 그것 때문에 비공개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C의원은 “찬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시민 알권리 차원에서 계수조정 과정을 공개 못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비공개 시)사전에 의원끼리 특정 예산을 교감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며, 공개된 자리에서는 (특정 의원이나 지역구와 관련된)민감하고 중요한 예산안은 설렁설렁 넘어가고 눈에 보이는 것만 논의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수시민협 박성주 사무처장은 “투명한 의정활동과 시민 알권리 차원에서 계수조정 과정을 공개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하는지 알아야 그 의원이 의정활동을 제대로 하는지, 거수기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처장은 이어 “여수시의회가 현재 두 개의 당으로 나뉘어 있긴 하지만 의원 개개인이 서로의 입장을 옹호해주는 행태가 여전히 있다. 특히 회의록을 남기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말에 책임 질 의향이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비공개는 시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비공개 계수조정은 ‘주민참여 예산제도 운영’과 상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민참여 예산제도는 예산편성과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예산 편성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다. 계수조정은 의회의 가장 중요한 결정 과정이니만큼 시민에게 알려야 할 필요성도 높다는 것이다.

인천시 연수구의회는 지난 2009년 제5대 때 전국 최초로 계수조정 회의 내용을 공개했으나 이후 비공개로 전환했다가 다시 예결위의 계수조정 내역과 회의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구민들의 알권리 침해는 물론 예산운영 과정의 투명성에 반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부 의원들도 공개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무엇보다 시민에게는 회의를 방해하지 않는 이상 의정을 참관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여수시의회는 예산안 계수조정 과정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으며, 예산안을 밀실에서 협의한다는 따가운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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