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지역에 남아 있는 다크투어리즘을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구체적인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

여행과 관광의 유형이 자연경관을 단순 감상하는 것에서부터 1990년대 중반에 일었던 문화유산 답사를 거쳐, 암울한 역사 현장에서 교훈을 얻는 여행·관광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여행 경험이 다양해지면서 관광객 유형도 바뀌는 추세다. 패키지여행보다는 자유여행, 명승지 주변보다는 골목 여행, 단체 관광보다는 소규모 관광이 늘고 있다. 지역 관광, 지역 자원 브랜드 발굴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각 지자체마다 그 지역의 관광 자원을 활용한 치열한 관광 마케팅이 전개되고 있다.

이제 미래 관광 도시의 성공 여부는 지역이 가진 특성을 누가 어떤 방법으로 관광자원화해 매력 있는 글로컬(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의 합성어로 지역의 특성을 살린 세계화) 도시로 만드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부가가치 관광객 유치를 위한 특수목적관광(SIT, Special Interest Tourism) 상품의 등장은 여수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특수목적관광은 특별한 관심분야를 충족하기 위해 이뤄지는 활동과 주변 관광이 결합한 형태로, 문화유산·종교·축제·생활체험 등의 문화관광, 생태·농촌체험 등의 환경관광, 수학여행·워킹홀리데이·어학연수·기업연수 등 교육관광, MICE·인센티브관광 등의 비즈니스관광, 이벤트관광, 의료·건강관광, 크루즈관광 등이 있다.

서울·수도권 위주의 관광객을 지방으로 유치하기 위한 틈새시장 유치 마케팅 전략 중의 하나다. 지역 내 체류시간이 길며 서울 쇼핑을 위해 지방 일정을 최소화하는 일반 패키지 단체보다 지역 내 소비효과가 크다.

이젠 천편일률적인 관광 패턴을 유지하거나 대규모 관광 시설을 짓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관광 자원의 다양화와 차별화이다. 특히 이미 알고 있는 관광 콘텐츠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알려져 있지 않은 숨어 있는 여수의 콘텐츠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수가 이순신과 거북선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다른 지자체에 선점을 당하거나 크게 차별화된 콘텐츠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아직 가치를 드러내지 않았거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묻혀 있는 역사문화유산 자원이 적지 않다. 숨은 보석(콘텐츠)들을 발굴해 얼마만큼 다양하게, 짜임새 있게 만들어 내놓느냐도 관건이다.

<동부매일>은 여수지역 곳곳에 아픈 역사로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유적과 여순사건, 한국전쟁 등의 흔적을 찾아 다크투어리즘의 가능성을 모색해 본다.

▶ 제주 4·3평화공원 전경. 제주 4·3평화공원 홈페이지 캡처.

여순사건·일제강점기 유적 등 다크투어리즘 잠재력·활용 가능성 커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은 일반적으로 전쟁·학살 등 비극적 역사 현장이나 재난 등이 일어났던 비극의 현장을 순례하면서 슬픔을 공유하고 추모와 성찰의 계기로 삼는 여행을 뜻한다. 국립국어원에선 우리말 다듬기를 위해 ‘역사교훈여행’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기억 여행이나 애도(哀悼)관광으로도 불리는데 아픔이나 비극적 현장이 관광 상품이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장소로 유명한 곳은 아우슈비츠 수용소(폴란드)이다. 세계2차 대전 당시 약 400만 명이 학살당했던 곳으로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관광객들이 나치의 잔학상을 목격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지난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했던 세계무역센터 붕괴지점, 즉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에도 매년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 고인의 넋을 달래면서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장소가 되고 있다. 이 밖에도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발전소 등도 다크투어의 대상지로 관심이 높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시의 ‘식스 플로어 뮤지엄(Sixth Floor Museum)’은 여행 책에도 잘 안 나오는 색다른 다크투어리즘 장소로 알려져 있다. 1963년 11월 22일, 과거 텍사스주 교과서 보관소 건물이었던 이곳 6층에서 암살자 오스왈드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을 쐈다. 이곳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업적과 저격을 둘러싼 미스터리 관련 자료, 저격 당시 비디오는 물론 암살 당시 탄피가 떨어진 지점까지 표시해 놓고 있다.

국내에서도 다크투어리즘이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제주 곳곳에 구축된 일본군 요새와 제주 4·3평화공원, 분단 상징인 비무장지대(DMZ)와 양구 펀치볼, 수많은 피란민이 투신자살한 영도다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과 그 길 건너편의 옥바라지 골목 등 호국과 민주주의 정신을 기릴 수 있는 다크투어리즘 장소가 많다. 국립 5·18민주묘지, 거제 포로수용소, 시민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부상을 당한 세계 최악의 지하철 참사로 기록된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도 다크투어리즘 장소로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일제 강점기 관련 공간, 주요 종교의 포교와 박해와 관련된 공간 등도 포함될 수 있다.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일제강점기와 민주화운동을 포함한 한국 역사의 아픔과 극복의 경험을 생동감 있게 알려 시민들이 자주독립과 자유, 평화수호 정신을 기릴 수 있도록 설립된 역사 박물관이다. (사진=다음백과)
▶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독립민주축제. (사진=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일제 강점기 시절 설치된 일본 군사기지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고, 제주4·3사건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가장 비극적 사건으로 알려진 여수·순천 10·19사건(여순사건) 현장의 아픔과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여수도 다크투어리즘의 거점화가 될 수 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한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단독정부 수립반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여수·순천 등 전남 동부지역을 점령한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하는 빌미가 됐다.

여순사건 피해의 대부분은 진압군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었지만 68주기를 맞은 올해까지도 진실 규명과 관련 사업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다. 순천, 구례와 달리 사건이 발발한 여수에서는 희생자 지원 조례가 제정되지 않고 있으며 민간인 희생을 기리는 위령탑 건립도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주철희 순천대학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여순연구센터장이 지난해 발간한 저서 <일제강점기 여수를 말한다>(흐름)에서 실체를 드러낸 여수지역 일제 강점기 군사 유적도 거의 활용되지 못하고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1885년 영국함대가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며 불법 점령했던 거문도는 아직도 곳곳에 포대를 배치한 곳, 해군 막사 자리, 영국군 묘지, 녹슨 전선 케이블, 우리나라 최초의 테니스장 등 흔적이 남아 있다.

일본인들의 흔적도 곳곳에 드러난다. 해방 직전인 1943년 거문도에 거주하던 일본인이 87호 355명에 이를 정도였다. 아직도 일본 양식의 주택인 적산가옥(敵産家屋)이 남아 있다. 일부는 민박집으로 활용될 정도로 보존 양태가 양호하다. 거문도에는 일본과 영국 관광객이 찾아오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강제 이주 동포들이 광복이 되자 빈손으로 돌아와 판잣집을 짓고 형성한 마을로, 2012여수세계박람회장 부지로 편입되면서 현재는 철거된 ‘귀환촌’도 있다. 귀환정(歸還町)이라고도 불리는 귀환촌은 여수의 마지막 판자촌이었다.

이처럼 여수지역 다크투어리즘의 잠재력과 활용 가능성은 크다고 볼 수 있다.

▶ 여수·순천 10·19사건. 학교 창고에서 반란군의 사격으로 집단 총살된 시체가 쓰러져 있다. 창고벽에 무수히 나 있는 총탄 자국이 당시의 상황을 말해준다. 1948년.

▶ 거문도 영국군 묘지. (사진=디지털여수문화대전)

다크투어리즘 확산 추세…여수시 차원의 전략수립 시급
다양한 콘텐츠 확보·여수관광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

사실 국내 다크투어리즘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근현대의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이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다, 여전히 ‘여행=자연풍광 감상’ 정도로만 여기는 시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어두운 과거를 진지하게 되돌아볼 삶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들이 해당 관광 상품 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다크투어리즘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제주의 경우 과거 문인들이 유배 왔던 역사적 사실을 테마로 한 관광 상품도 있다. 조선시대 폭군으로 널리 알려진 광해군이 제주로 유배되었다는 역사를 바탕으로 뮤지컬로 재탄생되기도 했다. 해마다 제주4·3평화공원에 수학여행단의 방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면서 ‘역사’를 올바로 알기 위한 관광 상품도 나온다. 좋은 것만 보고 들으려 했던 기존 관광의 행태에서 새로운 관광의 패러다임이 제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여수시 차원에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역사와 문화, 교육이 융합한 다크투어리즘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여수지역에 남아 있는 다크투어리즘을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구체적인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우선 현재 관리되지 않는 시설물을 보존할 수 있도록 관련 시설 관리 지원 조례 제정이 요구된다.

일각에는 다크투어리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가족을 잃은 유족 입장에서는 참사 현장을 관광지로 개발하는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크투어리즘이 가진 의미 자체가 역사적으로 같은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그래서 다크투어리즘을 단순히 비극적 사건과 장소를 확인하고 기억하는 방문으로 접근하는 것을 지양하고, 역사적·교훈적 의미 알기에 초점을 둬 경건한 마음 자세로 접근할 수 있도록 주변시설과 공간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진지한 고민의 장이 돼야 할 공간이 무성의한 기획으로 자칫 싸구려 단체 관람지로 변질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추모 전시관 혹은 박제된 장소로 접근하는 전형적인 방식도 지양해야 한다.

무엇보다 역사의 참혹상을 왜곡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도 관건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8일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여수·순천 10·19 사건(여순사건)은 기존보다 분량이 줄었다. 그리고 여전히 민간인 희생과 피해 규모, 현대사에 미친 영향 등은 전혀 언급되지 않아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게 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다크투어리즘을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자연경관과 시설 중심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콘텐츠 확보 차원에서 여수관광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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