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이대로 가다간 고소천사벽화마을은 실패한 마을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 여수시의 대표 관광지인 고소천사벽화마을에 관광객이 몰리고 있으나 원주민들은 무질서한 관광과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일 차량이 뒤엉킨 고소천사벽화마을의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누굴 위한 관광’ 근본적인 물음 다시

여수시의 대표 관광지인 고소천사벽화마을이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주민들의 생활터전이 침해당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대비를 하지 않은 채 관광 상품화에만 열을 올린 행정의 미숙함과 부실함 때문에 빚어졌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이 이어지던 마을에 그려진 벽화가 유명세를 타면서 수많은 관광객이 오가게 됐고 외지 자본이 밀려 들어와 카페와 펜션 등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은 주차난, 교통체증, 소음, 쓰레기, 사생활 침해 등으로 일상적인 삶이 파괴되고 있다. 그나마 도로를 끼고 있는 건물주와 상인들은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전월세 수입 등으로 반기는 편이지만 대다수의 원주민들은 온갖 불편과 일부는 둥지 내몰림 등의 폐해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는 생활터전마저 과도하게 관광 상품화하다 발생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폐해를 미리 예견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관광객은 자꾸 늘어나고 주민들의 삶은 갈수록 불편해지고 퍽퍽해지는데, 문제를 해소해야 할 행정은 방문객 숫자 홍보에 열을 올리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에 바빴다. 수년째 대책 회의만 하고 있다는 주민들의 분노 섞인 지적에 여수시가 이제야 대책을 내놓은 것은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 여수시의 대표 관광지인 고소천사벽화마을에 관광객이 몰리고 있으나 원주민들은 무질서한 관광과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일 차량이 뒤엉킨 고소천사벽화마을의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오롯한 서민 마을에 그려진 벽화가 관광 상품화에 성공해 활력을 불어넣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마을이 유명해지는 만큼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고, 틈을 노려 비집고 들어오는 자본가들 덕분에 동네 인심은 팍팍해지고 있다. 자칫 마을 공동체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현 상황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주민들이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려는 고민과 노력을 선행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광자원을 살리는 일을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게 했다면 보완책과 대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동네가 활기를 띠는데도 이를 활용한 주민 소득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동체 구성 등은 소홀히 한 채 외지인들이 벌이는 잔치를 구경만 해야 하는 원주민들로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다간 고소천사벽화마을은 실패한 마을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마을은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하고 상업시설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는데 원주민의 경제소득은 상대적으로 취약해지고 정신적 박탈감까지 갖게 된다면 누굴 위한 관광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다시 필요해진다.

지속가능한 미래의 먹거리를 위한 지속적인 관광 발전도 중요하지만 원주민 삶의 변화에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당장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닌 원주민의 삶도 윤택해지고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경제의 대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 고소천사벽화마을에서 바라본 여수 앞바다. (사진=마재일 기자)

◇ 묵음 구역 설정·방문자 예약 교육시스템 마련 제시

부산시 감천문화마을과 흰여울문화마을도 고소천사벽화마을과 비슷한 폐해로 관광객과 주민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부산발전연구원이 지난 9월 17일 발표한 ‘부산시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을 방지하려면’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박경옥 연구위원은 오버투어리즘 폐해를 막기 위해 ▲방문자 교육 시스템 마련 ▲묵음 구역(Silent Zone) 설치 ▲책임관광을 유도하는 규제와 관광문화 구축 ▲지속가능한 모니터링 등의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박 위원은 “관광지 내 골목길을 다른 색으로 표시해 ‘묵음 구역’을 정하거나 ‘저소음 관광구역’을 설정해 관광객들의 정숙한 관광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감천문화마을과 흰여울문화마을의 특수성을 고려해 방문자 예약 교육시스템을 마련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그는 “관광객이 윤리적 규범을 지키면서 지역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일정한 보증금을 맡기는 관광지 방문예약제를 도입해 인원을 제한하거나 분산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했다.

관광지 출입제한 시간·구역을 정하는 등 책임관광 규제 방안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특히 무례한 관광객들에 대한 규제를 부산시와 경찰도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 고소천사벽화마을. (사진=마재일 기자)

◇ 감천문화마을, 카페·식당 등 주민이 직접 운영

감천문화마을은 관광객이 몰리면서 인기를 높아지자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등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구도심이 떠오르면 중산층 이상의 사람이 몰려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 발생하자 주민들은 ‘자생 방안’을 마련했다.

마을의 채소가게가 없어지자 주민협의회는 자체 수익금으로 트럭을 섭외한 것. 트럭은 이틀에 한 번 트럭에 각종 채소와 부식을 싣고 마을 이곳저곳을 다닌다. 또한, 카페·식당·게스트하우스 등을 주민이 직접 운영해 수익을 모아 복지사업도 자체적으로 진행한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이동을 돕는 ‘문화마을 행복버스’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한다. ‘감내 작은 목간’과 ‘감내 빨래방’ 등 필요한 서비스도 제공한다. 각종 사업을 추진하면서 100여 개의 일자리도 창출했다. 감천문화마을은 대표 먹거리 상품인 ‘감천달빛도넛’과 마을 캐릭터 상품을 출시하는 등 새로운 문화콘텐츠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 서울 북촌한옥마을 ‘관광허용시간제’ 도입

서울 북촌한옥마을은 관광허용시간제가 도입됐다.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 관광객의 통행을 제한하고 관광 허용 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제한했다. 일요일은 ‘골목길 쉬는 날’로 지정해 허용 시간대 외 관광객들의 마을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지킴이를 투입했다.

연간 2700만 명, 매일 7만 명가량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베니스에서는 일일 방문객을 제한하는 의무예약제를 추진 중이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관광객에게 시민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를 방문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 책임감에 관한 의식을 고조시키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 고소천사벽화마을 표지판. (사진=마재일 기자)

◇ 관광발전 경제적 편익 ‘공정성 확보’ 중요

지난 9월 19일 제주웰컴센터에서 ‘지속가능한 섬 관광을 위한 미래발전방향’을 주제로 열린 2018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한 제주 국제 컨퍼런스에서 심창섭 가천대 교수는 북촌마을의 사례를 제시하며 “오버투어리즘은 관광 수용력에 대한 진단 없이 관광객을 무방비 상태로 받아들인 양적 성장의 결과로 지역 관광수용력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심 교수는 이와 함께 “관광발전의 경제적 편익이 지역주민에게 얼마나 공정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평가해 공정성 확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제주일보>에 따르면 이날 오버투어리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현지 관광정책 관계자들이 참석해 각 지역의 과잉관광 사례와 해결 프로세스 등을 공유했다.

Giovanni Martini 베니스 시의회 의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연간 2700만 명, 매일 7만 명가량이 방문하는 과잉관광의 압력을 받으며 베니스 시민들이 관광객을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 침략자로 보는 경향까지 생겨 올해 6월에는 2000여 명의 시민이 운집한 격렬한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며 “관광 문제로 인해 시민들의 삶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시의회, 자치정부, 전문가, 대학교수 등이 머리를 맞대 방문객 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일일 방문객을 제한하는 의무예약제라는 솔루션을 도출해 추진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Sergi Mari 바르셀로나 관광국장은 공공기관·민간기업·시민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오버투어리즘 극복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과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공공과 민간기업 그리고 시민들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관광객에게 시민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를 방문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 책임감에 관한 의식을 고조시키는 캠페인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 고소천사벽화마을을 방문한 관광객들. (사진=마재일 기자)
▲ 고소천사벽화마을에서 바라본 여수 앞바다. (사진=마재일 기자)

◇ 주민 경제활동 기회 제공·일자리 창출…외지인과 주민 상생 방안도 필요

포르투갈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화려하던 대항해 시절인 16세기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다. 이중 동부에 위치한 가장 높은 언덕 ‘알파마’는 골목길에서 나타나는 탁 트인 바다 등 마을 경관이 고소천사벽화마을과 닮아 있다.

이 언덕에는 관광객의 필수 코스인 ‘두 솔 전망대’가 있는데 전망대 입장료가 우리나라 돈으로 약 1만 원이다. 비싸다는 지적도 있지만 입장을 위한 긴 줄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두 솔 전망대를 포함해 ‘산타 루치차 전망대’, ‘성 조르제 성’ 등 마을 전체를 볼 수 있다.

고소천사벽화마을을 입장료를 받자고 하면 섣부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받는 만큼 관광객과 주민에게 더 돌려주고, 특히 이 마을이 우리 지역의 소중한 공공재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꼭 입장료가 아니더라도 질적 관광 전환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만큼 관광객 늘리기에 집착한 기존 정책을 재점검하자는 의미도 있다. 물론 지금보다 더 독창성과 전문성을 갖추는 등 또 다른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2012년 LG화학이 고소천사벽화골목에 설치해 시에 기증한 전망대는 바로 앞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사실상 전망대 기능을 상실한 채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거나 쓰레기 투기장으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주민의 대부분인 노년층의 경제활동 기회 제공과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 골목 곳곳에서 주민들이 작은 좌판을 깔고 시원한 맥주나 음료, 주전부리를 팔 수 있게 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또한 외지인 사업자들에게는 주민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의무적으로 적용하고, 일자리를 원하는 주민들에게는 충분한 고객 서비스 교육을 하는 등 주민과 외지인들의 충돌이나 주민 소외현상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

천사벽화마을 골목 축제와 더불어 버스킹을 비롯한 소소한 문화이벤트를 개최해 방문객과 주민들을 위한 즐거운 분위기를 일부러 조성하고 관리할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 동의가 전제돼야 하고 주민 참여가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 2012년 LG화학이 고소천사벽화골목에 설치해 시에 기증한 전망대는 바로 앞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사실상 전망대 기능을 상실한 채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거나 쓰레기 투기장으로 전락했다.

◇ 여수시, 일방통행·거주자 전용주차 구역·주차장 설치 등 대책 마련

지난 9월 30일 교통 개선안에 대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여수시는 3일 보도자료를 내어 제일교회 주차장에서 한신아파트 입구 구간을 일방통행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보행로와 70여 면의 거주자 전용주차 구역도 설치키로 했다. 특히 주차문제 해결을 위해 200면 이상의 공영주차장을 조성키로 했다. 또 고지대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마을버스도 운행키로 했다. 시는 주차장 조성과 보행로 설치 등에 10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했다.

시가 마련한 대책이 근본적인 해법이 될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관광객들이 주민 사생활 보호는 물론이고 소음과 쓰레기 처리 등에 대한 세심한 주의와 배려가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벽화마을 입구 표지판에는 이곳은 주민들의 소중한 삶터이니 생활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늦은 시간에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우거나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안내하고 있으나 별 소용이 없는 실정이다.

여수시의회 송재향 의원은 여수가 유럽과 동남아 일부 국가의 경우와 같이 관광객 증가에 따른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며, 해양공원 등 특정 지역에만 몰리는 관광객을 화양지구와 소호지구 등 다른 지역으로 적절하게 분산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 의원은 관광객이 줄더라도 체류기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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